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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9

본문

요 19:16-27

제 22-19호
십자가의 곁에는 누가 있었는가?

요 19:16-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마지막 순간에 그분의 곁에 누가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여자 넷과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던 예수님의 마지막치고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다섯 명이 함께한 것을 통해 성경의 다섯에 관한 의미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십자가 밑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하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라고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부르셨다면 그럴 만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러한 것을 성경으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다섯’은 천대와 멸시와 고통의 숫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은 연약한 여자 넷과,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사도 요한이 함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다섯’은 주로 괴로움과 천대와 멸시와 고통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쫓기고 숨어 다니는 상황에서 ‘다섯’이라는 숫자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들어갈 때, 흉년이 2년 지나고 앞으로도 5년이라는 끔찍한 흉년의 고통이 남아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45:1-8). 또한, 요셉의 형들이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갔을 때 그중 5명을 애굽위 바로 앞에 세웠습니다(창 47:1-13).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소돔·고모라 성을 구원하기 위해 50명 중에 다섯 명 부족함이 하나님의 멸하심의 조건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창 18:27-28).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물매 돌을 주워 들고 나갔는데, 그때 다윗이 집은 물매 돌의 숫자가 다섯입니다(삼상 17:40).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제사 드리는 번제단의 가로세로 규격이 각각 5규빗이었습니다(출 27:1 이하). 

 또한, 신약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성 우물가에 쉬고 계실 때 물을 길으러 나온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그 여자의 과거가 밝혀지는데, 그녀를 거쳐 간 남편이 다섯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남편 다섯은 한마디로 고통의 수가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이 다섯은 사도 바울에게 고통과 괴로움과 환난의 기간입니다. 거지 나사로 또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는데,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는 형제가 다섯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미련한 처녀들의 숫자 또한 다섯입니다(마 25:1-13). 끝으로 계 9장에서,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하는 전갈의 고통’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계 9:1-3). 

 이처럼 성경에서 다섯은 고통과 괴로움의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끝까지 지킨 이 다섯 사람은 주님의 고통을 함께 나눈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2. ‘여자여!’라는 호칭에는 철저한 사명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하시기 직전 밑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뜻을 알기 위해서는 3년 공생애 동안 어머니와 그의 친동생들이 보여 준 행동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중에도 이 가족들은 예수를 자신의 가족, 동기로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에 와서 사람을 시켜 ‘아들, 형, 오빠’를 불러 줄 것을 요구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셨습니다(마 12:46-50, 막 3:31-35).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친동생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요 7:1-10). 친동기이고 친어머니이지만, 뜻을 깨닫지 못할 때 오히려 가족이 뜻을 가로막는 방해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통한 체험을 한 예수님께서는 그때부터 동생들을 가리켜 ‘동생’, 어머니를 가리켜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뜻으로 볼 때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담의 후예로서, 죄악된 인류 중 하나일 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입니다. 영적으로 하면, 마리아 또한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이 비밀을 증거하기 위해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예수께서 한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온 인류의 구세주로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비로소 이 뜻을 깨달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 후에 120문도 가운데 포함돼서 열심히 기도하며 약속하신 때를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행 1:14 이하).


결 론 : 만인간의 죄를 걸머지고 이 땅에 오셔서 홀로 감당하신 주님의 심정을 믿음의 눈을 떠서 헤아릴 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다섯 명과 같이,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이 따른다 할지라도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하며, 믿음의 길을 지키는 승리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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