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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5

본문

행 9:1-18

제 22-17호
암흑의 사흘 길

행 9:1-18


 오늘 본문은, 스데반의 순교 후에도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빛의 포로가 되어 쓰러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울을 빛의 포로로 붙잡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꺾으셨던 사울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행 9:6), 이를 위해 도울 자를 예비해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도움의 손길은, 인간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사흘간의 캄캄한 흑암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사울이 걸었던 암흑의 사흘 길은 어떤 길일까요?


1. 암흑의 사흘 길은 사울을 새롭게 세워 주는 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불한당 같은 사울을 꺾으신 것은 ‘공의’에 해당한다면, 그를 바울로 새롭게 세워 주신 것은 그분의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빛의 포로가 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 엎드러졌다가 다시 일어났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고 건강하던 청년 사울이 한순간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야 걸을 수가 있었다면, 당사자가 받았을 충격과 당혹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행 9:9은 전혀 예상 밖의 사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라는 사실입니다. 그를 돕기 위해 주님께서 이미 ‘아나니아’를 예비해 두셨다면(행 9:10,18) 즉시 나타나 곤경에 처한 사울을 도와야 할 텐데, 사흘 동안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사흘 동안이나 일체 침묵하셨습니까? 왜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처절한 고통과 고독 속에 홀로 내버려 두셨습니까?

 그것은 사울을 새로 세워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기 위해서 바울을 찢으시고 깨뜨리셨습니다. 바울의 거만과 교만을 완전히 파괴하시고자, 암흑의 사흘 길을 걷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흘 동안 그에게 내미셨던 도움의 손길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홀로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으로 인해, 사울은 자신을 홀연히 휘감았던 빛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그릇된 과거를 뉘우치고, 자신이 가야 할 참된 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흘이 있었기에 옛사람 사울은 죽고 새사람 바울로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2. 암흑의 사흘은 사단을 분리하는 기간입니다. 

 성경에서 3일은, 믿는 성도들로부터 사단을 분리하는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칠 때도 암흑 같은 사흘 길을 걸으면서 자신 속의 모든 사단을 분리하고 승리함으로써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창 22:1-4). 야곱 또한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려 할 때, 라반을 속이고 떠나는 사단 분리의 3일이 있었습니다(창 31:19-22).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 또한 430년 동안 애굽에서 고생하던 민족을 이끌고 애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 사단 분리의 3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애굽의 거주지로부터 3일 길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수 1:10-12, 3:2 말씀을 볼 때도, 요단강을 건너는 데에 3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요셉이 옥중에 갇혀 있을 때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는데, 그들의 꿈에 공통으로 3가지와 3광주리가 나오는데 이것은 3일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3일이 지나서 하나는 복직하게 되고, 다른 하나는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도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무덤 속에서 3일 동안 전도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벧전 3:18-20). 그러므로 사흘 동안 거두신 주님의 손길, 사흘에 걸친 주님의 침묵이야말로 사울을 영적 바울, 믿음의 성인으로 발돋움시켜 주기 위한 영적 발판이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3. 사흘간 주님의 침묵은 사울을 향한 사랑의 응답입니다.

 사흘간 침묵하셨던 주님, 그러나 그 기간에 주님은 가장 확실하게 사울을 돕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그를 향한 더욱 분명한 응답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요나를 큰 물고기 뱃속에 3일씩이나 가두신 것도 요나를 뜨겁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흘 동안 그 절망의 심연 속에 갇혀서, 요나는 자신의 실상과 인생의 실체를 봤습니다. 무엇을 끊고 어디로 돌아서야 하는지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 사흘로 인해, 요나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영적 성인으로 바로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흘에 걸친 요나에 대한 침묵은 침묵이 아니라, 요나의 전 생애에 걸쳐 가장 큰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더욱 확실하게 돕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다 처분해 주시기 위해, 괴로움과 한숨과 고통 가운데 잠시 침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상의 피맺힌 절규에까지도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신의 독생자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실 때 당신의 손을 거두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흘 동안 손을 거두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온 인류의 어둠의 권세와 싸워 승리하심으로 구원자, 부활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시고 침묵하시던 그 사흘은 실제로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발판이요 매듭이었던 것입니다.


결 론 : 사울처럼 사흘 동안이나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고통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요나처럼, 무덤에 갇히신 예수님처럼 홀로 절망과 고통의 감옥 속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절망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거두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시기 위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돕고 계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가장 큰 응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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