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5
등록일

2015.03.14

pkblog_body_m.jpg


겨울이 가는구나. 봄방학 말미에 그녀를 만나러 경복궁역을 향해 간다. 나와 함께 이곳 평강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녀를 이제 교회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녀가 나를 부르면 내가 간다. 늘 내 가방에는 머뭇머뭇 담아온 구속사 책이나 ‘참평안지’가 담겨있다. 그녀가 반길 선물은 아니지만 내가 아니면 그녀에게 전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아니까. 최근 서촌으로 이사한 그녀가 서울 성곽 길을 함께 걷자고 초대했다. 황사 낀 하늘 아래 우리 둘이는 청운동 언덕을 올랐다. 사설 경비가 지키는 고급 빌라의 출입문을 지나며 “저런 곳에 애를 버리잖아. 그리고 엄마가 골목에서 보고 있고”라며 아침 드라마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 언덕의 끝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었다.

_jeil2.jpg


1층 전시실에 들어가니 우연찮게도 관람객에게 구청 문화해설사가 윤동주 시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도 함께 이동하며 윤동주의 자화상이랑 시를 모티브로 한 제2전시관 배경에 대해 들었다. 항상 하늘을 바라본 우물처럼, 우리도 낡은 수도가압장 물탱크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느새 파아랗다. 그리고 제3 전시실. 어둡다. 차갑다. 윤동주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후쿠오카 형무소. 감옥 안이다. 영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시가 흐른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poem2.jpg


어둠 속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나는 이 시가 윤동주의 기도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1941년. 캄캄한 일제 식민지 시대. 25살의 여린 청년 하나가 어두운 세상 속에서 오롯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한다. 어느새 거짓말에 익숙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나. 감히 하늘 아래 한 점의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해 본 적이 있었나. 그의 맑은 기도문에 내 마음이 후벼 판 듯 헝클어진다. 왜일까.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아버지의 기도가 떠오른다.


기다림

내 눈자위가 붉기까지 
너를 위해 울었다.
밤잠 설치며 낙엽 쌓인
그 계곡에서 너를 위해 울었다 

무더운 여름, 한낮의 나른함에도
그 동산을 찾아
내 무릎 꿇어 너를 위해 간구했다.

깊은 겨울, 수북이 쌓인 눈 위에 앉아
눈덩이 녹아내리는 줄 모르는 채
네 영혼 위해 간구했다.

더위와 추위가 교차되고
붉음이 푸르름이 되고
푸름이 붉음이 될 때에도
뒤바뀌는 계절에 마음 매달아 둔 채
난 너를 기다려 안타까이 울었다.

내 여린 살갗에 깊이
골이 새겨지기까지
한해 또 한해 
이 한해를 넘기지 말아 달라고 
애태우며
너를 위해 간구했었다.


아버지의 눈물이 내 안에 흐른다. 죄가 더러운지도 무서운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서 살아간 나를 위해 울어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기도가 왜 그 순간 떠올랐을까. 병든 우리를 위한 기도였기 때문일까. 애초에 윤동주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라는 의미에서 시집 제목을 ‘병원’이라고 붙였는데, 출간 전에 ‘서시’를 새로 쓰고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바꾸었다고 한다. 올해 2월 17일은 윤동주 시인의 제70주기라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그 언덕을 내려왔다.

케이블채널에서 방송 홍보와 마케팅 일을 하고 있을 때다. 직장생활 10년차. 아이를 낳고 서른이 넘어 시작한 신앙생활의 걸음마를 떼고 있던 무렵. 회사 영업비로 외근 나가서 기자도 만나고 업체 담당자를 만나 친목을 나눈다. 차 한 잔, 밥 한 끼 나누며 업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안다. 이 관계에 궁극적 목적이 있음을. 그래서 힘들었다. 특히 상대방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더 힘들었다. 최고의 홍보와 마케팅은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을 해주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업무와 생활 모든 면에서 힘든 시기였다. 나는 진실한 일을 하고 싶었다. 어느 날 여의도에서 집으로 퇴근하던 길에 꽉 막힌 도로에서 눈물이 터졌다. 더 이상 이 일이 하고 싶지 않다고. 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유일한 혼자만의 공간이던 내 자동차 안에서 펑펑 울며 기도했었다.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남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일이니까. 나는 내친김에 원로목사님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응답은 시편 107편 소원의 항구. 그렇게 나를 학교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나는 또 무디어져 가고 있었다. 그 굳어가는 마음을 흔들어준 한 편의 시를 만나고 나는 몇 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름 신앙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나. 마음에 먼지가 앉아도 먼 산을 보는 나. 방바닥만 쓸고 있는 나. 어려운 일 닥치면 울고불고 회개하겠지. 이런 내 마음을 보니 하늘을 무슨 낯으로 보나 한숨이 나오는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어쩜. 딱. 이 순간에. 한심한 딸을 위로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려주신다. 인생의 보따리를 풀고 그 안에 회개와 각성과 통회하는 마음을 담으라고. 그리고 봄을 기다리라고. 열 살 아들에게 서시를 들려준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시라고 알려준다. 아들이 더듬더듬 시를 읊는다. 그 소리에 내 마음이 맑아진다.





essay06.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55

#107. 거지같은 인생 _ 김진영 file

“한국의 중산층 기준”에 대해서 듣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한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중산층의 기준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기준이 “①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②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③ 자동차는 2,000cc급 이상 중형...

 
2017-04-06 653
54

#45. 좌충우돌 오류동 정착기 _ 하찬영 file

"쓰레기 봉투가 없네, 마트 좀 다녀올래? 의자 옆에 바지랑 셔츠 다려놓았으니 넥타이랑 챙기고" 그는 그레이 컬러의 수트와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습니다. 마트에 갈 때는 어떤 타이가 어울릴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가 가장 아끼는 타이를 집어 듭니다. 시...

 
2016-01-09 659
53

#39. 인생의 한 분기점을 넘는다는 것 _ 맹지애 file

인생에는 몇 가지 큰 분기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예를 들면 수능, 취업, 결혼 등과 같은 중대한 사건들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큰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비로소 우리는 성장합니...

 
2015-11-22 666
52

#152. 본(本)이 되어야... file

구속사 시리즈 10권을 통해 사관학교를 등록하고 환경과 여건에 맞는 많은 반들을 수강하고 있다. 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을 통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아브라함의 생애, 복의 근원. 그것은, 본(本...

 
2018-03-03 666
51

#109. 네 아이의 엄마 _ 이승옥 file

저는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이 한 문장만 읽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머머, 힘들겠다.’ ‘어떻게 키운데?’ ‘지금은 힘들어도 크고 나면 좋아.’ 그리고 위에 딸이 셋이고 막내가 아들이다 보니, 또 이렇게...

 
2017-04-25 669
50

#151. 감사와 사명 file

사명使命, 부릴 사使 목숨 명命, 국어사전에서는 '맡겨진 임무'라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존재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는 단어인 셈입니다. 아마도 이 사명이 가장 중요시되는 직업은 ...

 
2018-02-25 684
49

#70. 말씀의 아버지와 함께한 21년 간의 동시대 _ 박다애 file

음악의 아버지 바흐,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과 사회에 큰 공헌을 세운 사람을 ‘대가’라고 합니다. (대가(大家)[대ː가] [명사] 1.전문분야에서 뛰어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 동시대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후손...

 
2016-07-10 687
48

#95. 오늘 하루 어땠나요? _ 이승옥 file

갑자기 누가 나에게 “오늘 하루 어땠나요?”라고 물으면... 난 뭐라고 답할까? 1. “그럭저럭이요.”- 정말 성의 없고 무책임한 말인 듯... 2. “어제랑 같아요.” - 오늘을 생각하기 싫은 게으른 대답인 듯... 3. “힘들었어요.” -...

 
2017-01-08 689
47

#05. 사순절을 지키는 두 가지 모습 _ 홍봉준 file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금식을 기념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결정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고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킨 반면에 서...

 
2015-03-13 696
46

#87. 휘선,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뒤를 따르는 첫발걸음 _ 박다애 file

8월이면 매 년 돌아오는 청년1부 헵시바 정기총회가 이번 연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39대 임원단을 마무리하며 잠시 바빴던 교회생활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4부 청년연합예배...

 
2016-11-14 698
45

#52. 청년이여 일어나라 _ 원재웅 file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온 국민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 이후로 고도성장을 해오던 우리 경제가 한꺼번에 휘청하면서 거리에는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였으며 많은 기업들이 ...

 
2016-02-27 701
44

#07. 신앙의 성과 지표 _ 김태훈 file

CEO 모임에 가보면 그 모임의 성격에 따라 주고받는 질문도 다르다. 유명 경제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포럼이나 조찬모임의 경우 규모가 큰 기업들의 CEO들이 많이 참석하는 만큼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는 경영 키워드에 대한 논의가 많다. “대표님 ...

 
2015-03-21 714
43

#21.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아빠의 정년퇴직을 기념하며) _ 박다애 file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어릴 적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고 엉엉 울면서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군인 하지 말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 전쟁이 난다면 50년대 전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

 
2015-07-04 721
42

#27. 칭찬과 감사 _ 김태훈 file

이번 달부터 사내 전산망 자유게시판에 '칭찬합시다'라는 방이 새로 개설되었다. 서로 칭찬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회사가 많이 바뀌었다는 성공사례를 들은 한 직원의 제안으로 시작하였는데 심심찮게 칭찬글과 댓글이 달리고 있다. 업무를 잘 처리한...

 
2015-08-22 728
41

#02.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그 매력적 오답의 치명적 유혹 _ 송현석 file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셨나요? “합리적 의사 결정, 민주적 절차,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학문적 근거 제시, ... ” 말은 한참 어려워도 결국은 우리네 삶의 기준이 되고 많은 학문적 접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

 
2015-03-13 729
40

# 131. 수영을 통해 깨달은 영혼의 숨쉬기 file

얼떨결에 등록하게 된 수영. 교역자에겐 사명이 생명인지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마땅한 게 없던 차에 누군가 수영을 권했다. 첫 시간부터 ‘와 이런 신세계가 있구나’ 감탄을 했다. 일단 뭔가 새로운...

 
2017-10-10 734
39

#09. 게으른 파수꾼, 추억의 발걸음을 걷다 _ 송인호 file

길을 나서볼 때입니다. 어느덧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모이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충전이 잘 된 LED 랜턴과 손에 달라붙는 알루미늄 방망이 하나를 집어 들고 말입니다. 첫 행선지는 내 맘대로 정한 순서대로 예전 회계실 건물입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

 
2015-04-04 746
38

#16.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까 _ 맹지애 file

시대가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가슴 뛰는 꿈을 꾸고 어른들은 그 꿈을 응원하던, 말 그대로 ‘꿈’만 같던 시기가 흘러가버렸습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업을 얻고, 좋은 직업을 얻어야 편...

 
2015-05-30 751
»

#06. 거짓말 그리고 봄 _ 강명선 file

겨울이 가는구나. 봄방학 말미에 그녀를 만나러 경복궁역을 향해 간다. 나와 함께 이곳 평강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녀를 이제 교회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녀가 나를 부르면 내가 간다. 늘 내 가방에는 머뭇머...

 
2015-03-14 753
36

#54. 막힌 담을 허물고 _ 홍봉준 file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방이 담으로 꽉 막힌, 교도소 담장과 감방 사이를 구분 짓는 벽들로 둘러싸인 것 같은 이 땅의 삶이란! 그것은 간단하게 ‘답답하다’, ‘갑갑하다’ 정도로 표현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알고 보면 엄청난 폭력이요 억압이다. 다...

 
2016-03-20 805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Abraham’s Message]

[구속사소식]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