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5

pkblog_body_1.jpg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난히 예쁜 얼굴 때문에 마을에서 유명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듯 아역배우를 쏙 빼닮은 눈매와 흰 피부와 곱슬머리에 어울리는 다소 새침한 태도 때문에 누구나 아이를 만져보고 싶어 했고 한 번쯤 품에 안아보고 싶어 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애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진 것 자체가 너무 신비로웠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그 커다란 눈망울, 사람이 저렇게 예쁘게 타고날 수도 있구나.

그 시절 친구네 부모님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특용작물로 ‘오이’를 재배했고 수익성이 좋았다. 겨울이면 오이 수확이 끝난 비닐하우스의 폐비닐을 벗기는 작업을 했는데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을 위해 큼직한 드럼통에 폐비닐을 넣고 태워 난로를 대신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시골의 겨울 풍경이었다. 오이 재배로 농한기를 든든히 날 수 있는 젊은 농부들의 손길은 한껏 여유가 있었고 아이들은 그 주위에서 연도 날리고 썰매도 타고 불놀이도 했다. 그런 풍경 가운데 아이의 불길한 운명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사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난로처럼 쬐던 드럼통 속을 사남매 중 누군가 불꽃을 피우려고 막대기로 들쑤셨다고 했다. 그 바람에 불똥이 아이의 옷에 튀었는데 아이가 화염에 휩싸인 건 순식간이었다고 했다. 들리는 말은 그게 다였다.

아이가 그렇게 되고 친구네는 이듬해 봄, 마을을 떠났다. 빈 집은 꽤 오랫동안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 폐비닐이 벗겨지다 만 철골만 앙상하게 그날을 기억하는지 쓸쓸하게 남았다. 그 해 겨울방학 동안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죽음’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이의 눈망울, 웃음소리, 작은 손은 어디로 간 걸까. 살아서 뛰어놀고 사랑을 받았던 몸은 하루아침에 주검이 되었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남은 가족의 슬픔은? 엄마는 그런 걸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말라며 근심을 하셨고 또 다른 사람들은 표면적인 이야기만 했다. 어린 내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건 어떤 순리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며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였다. 어린 나에겐 꽤 큰 지진이었던 셈이다.

슬픔은 그랬다. 언제 어디서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생의 골목골목에서 잠복해 있다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인간으로 사는 이상 누구나 끝없이 겪어야 하는 삶의 전쟁에 어느 순간 객관적 관점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를 내려놓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만의 문제, 숙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는데 사람에게는 답이 없었다. ‘죽음’에 대한 첫 경험에서 파생된 슬픔이 은혜의 빛을 따라 평강제일교회 말씀 앞으로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겨 삶의 전폭적인 기준을 삼게 했을 것이다. 연약한 인간, 치명적인 약점들, 사람으로는 아무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 죄와 죽음에 관한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필연적인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산다는 것은 분명 개인의 몫은 아닌 듯하다. 믿음의 부여는 철저하게 그 주권을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믿음을 받아 지금 말씀 안에 함께 하는 우리 모두는 ‘큰 슬픔’의 풍랑을 겪고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서로 눈빛만 부딪쳐도 애틋하고 기운 없는 어깨만 바라봐도 가엾다. 다시 찾아 들어보는 원로 목사님의 기도 속에는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게 지켜달라는 기도가 애절하게 녹아있고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도 제목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슬픔은 결국 사랑이다. 슬픔을 겪지 않은 믿음의 선진은 아무도 없었고 고통 없는 구속사 시대는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 슬픔의 절정은 가장 큰 사랑이었고 인간이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명명백백 유일한 길이라는 표적이 되었다.     

슬픔은 말한다. 슬픔 자체에 빠지지 말고 슬픔이 가르치는 것을 붙잡으라고. 우리에게 슬픔의 대상이 된 분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열방이 춤추며 몰려온다, 은혜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이긴다, 생명 바쳐 일하면 교회가 두 배 부흥한다고. 우리는 춤추게 되어 있고 기쁨으로 띠를 띠게 되어 있고 승리하게 되어 있고 두 배 부흥하게 되어 있다. 그러려면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고 은혜의 세력에 연합해야 하고 생명 바칠 열심으로 충성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 슬픔 자체의 눈물과는 또 다른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겠다. 그날,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고 모든 슬픔의 베옷이 완전히 벗어지고 새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춤을 추도록.





essay03.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75

#99.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_ 박승현 file

‘많아지면 달라진다’의 저자 클레이 셔키(Clay Shirky)의 말에 따르면, 인터넷으로 연결된 전 세계 20억 명의 여가 시간을 합치면 약 1조 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시간의 대부분을 TV를 시청하는데 낭비하였지만, 인터넷과 S...

 
2017-02-16 339
174

#94. 그래도, 희망! _ 홍미례 file

2016년이 떠납니다. 2016년은 이제 돌아오지 않습니다. 더불어 2016년 모든 시간은 2017년의 뒤로 숨습니다. 그렇다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필연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는 오늘의 자화상...

 
2017-01-08 368
173

#130. 바라봄의 기쁨 _ 서재원 file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화려함, 때로는 소박함, 그리고 보는 것으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눈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기관 중 하나 입니다. 하루라도 눈을 뜰 수 없다...

 
2017-10-10 374
172

#101. 시작이라는 선물 _ 서재원 file

어느덧 2017년 1월이 모두 지나고 2월의 중간에 도착했습니다. 2017년, 어떤 시작을 하셨나요?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을 뒤집었습니다. 어느덧 20대가 되어 처음 보낸 지난 2016년, 그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합니다. 돌아보니 2016...

 
2017-03-03 381
171

#136. 내가 여기에 서있는 이유 _ 하찬영 file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우연히 저는 ‘위플래시’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라 틀어놓고 있다가 결국에는 끝까지 보고야 말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아무래도 이제는 그...

 
2017-12-01 386
170

#105. 고3과 학부모를 위한 조언 _ 이원재 file

3월은 피곤한 달이다. 해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얼굴들을 보며 새로운 이름을 외워가며 그 아이들의 많은 것을 파악하려고 애쓰느라 시간에 쫓긴다. 보름이 지나도록 이름이 낯선 아이들, 그 티라도 내면 마음에 상처 입을까봐 수시로 사진을 ...

 
2017-03-30 396
169

#115. 우리 인생엔 지름길이 없다 _ 김영호 file

2017년 전도 축제가 5월 14일과 21일 양일간에 진행되었습니다. 바둑에는 복기란 말이 있습니다. 복기는 한 번 두고 난 바둑을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

 
2017-05-29 402
168

#106.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고찰 _ 강명선 file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한지 만 10년이 되었다. 이 본격적인이란 말은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공부하고 교회의 기관에 등록하여 봉사하면서 정기적인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드린 신앙생활의 기간이며...

 
2017-03-30 415
167

#122. 학교에서 배운 한 가지 _ 하찬영 file

그랬던 것이다. 그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소위 말하는 미대 다닌 남자였다(이대 아니고 미대라고 그는 또 아재개그를 날렸다). 그는 그런 그의 타이틀이 나름 있어보인다며 은근히 만족해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디자인 전공에 대해 웬만하면 말하지 않으...

 
2017-08-09 415
166

#141. 12월에 시작하기 좋은 책읽기 _ 이원재 file

학교 현장은 한 학년을 마무리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2차 지필평가(예전에는 기말고사라고 했음)가 곧 시작하고 방학 전까지 각종 행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3 수험생은 포항 ...

 
2017-12-26 417
165

#97. 청년이 되는 습관을 기르자 _ 송인호 file

'뇌를 늙게 만드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의 신앙을 더욱 청년처럼 만드는 방법을 간략하게 나눠보고자 한다. 1. 밤 9시 이후 식사하는 습관 – 잠잠히 기도하며 내일을 준비하자. 2. 험담하는 것 - 욕설이나 ...

 
2017-01-25 419
164

#85. 3대 영(靈)양소 _ 박승현 file

# 천고마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인데, 왜 내가 살이 찌고 있는지? 가을에는 식욕이 왕성해져 다이어트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여기에 식욕이 증가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적어져 기분 조절, 식욕, 수면 ...

 
2016-10-31 420
163

#110. 그래서 우리는 괜찮습니다 _ 정유진 file

요즘 나는 나를 배웁니다.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좋았던 것이 갑자기 싫어질 때, 어떤 감정을 처음 느꼈을 때 새로운 나를 경험합니다. 물론 오랜 시간 반복되는 생활습관과 행동, 생각의 패턴들도 내가 누군지 설명합니다. 나 자신...

 
2017-04-25 425
162

#113. 할머니니? _ 박승현 file

“할머니니?” 5월 초 황금연휴를 맞아 중학생인 아들은 단기방학이었다. 방학은 그냥 놀도록 놔두어야 하는 것인데, 학교에서는 무슨 과제를 주는지(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이 노는 꼴을 못 보는 듯). 그리고 아직까지 일부 과제는 부모의 몫이다. ...

 
2017-05-29 425
161

#56. 책이 지니는 세 가지 몫 _ 홍미례 file

책은 세 가지 몫을 가집니다. 저자의 몫과 독자의 몫,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책이 지니는 몫은 트라이앵글의 구조를 이룹니다. 책은 다양한 텍스트들의 총집합인데 그중에는 유일한 텍스트도 있습니다. 성경이 바로 그렇습...

 
2016-04-04 444
160

#88. 잊지 말고 기록하자 _ 이장식 file

기억합니다. 그러나 잊고 살고 있습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과 결심들, 부모님에 대한 소중함, 친구와의 우정, 하나님의 은혜 쉽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2010년 초겨울이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고 미국 생활 2...

 
2016-11-27 445
159

#116. 기회 _ 서재원 file

어느덧 우리는 2017년이라는 층의 중앙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우리가 2017년을 만났을 때 세웠던 계획들과 수많은 목표들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으신가요? 아직도 계획만, 혹은 포기한 것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수많은 계획...

 
2017-06-12 446
158

#89. 엄마 손은 약손 _ 지근욱 file

내가 어릴 적이라고 해봐야 1970년대, 그리 옛날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약이 증상별, 종류별, 메이커별로 다양하지도 흔하지도 않았다. 요즘처럼 밤에 아이가 아프면 자가용에 태워 가까운 응급실에 가던 시절도 아니다. 열이 오...

 
2016-11-27 448
157

#149. 나와 당신의 슈퍼 히어로 file

‘2030 청년세대 15만 명이 직접 선정한 영웅들이 직접 멘토링을 한다’는 내용의 종편방송 커머셜을 호기심 기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쟁쟁한 인물(‘영웅’들이라 해야겠습니다만)들이 출연하는 포럼에서 그들의 성공스토리를 공유하고 피와 살이 되는...

 
2018-02-14 451
156

#148.'그뤠잇!' or '스튜핏!' file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세상이다. 대통령뿐인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자신을 따르는 계층을 지배하는 존재는 다양하다. 아이들에게 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가 있다. 요즘 초통령(초등학생 대통령)은 ‘워너원’,...

 
2018-02-14 452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