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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봉투가 없네, 마트 좀 다녀올래? 의자 옆에 바지랑 셔츠 다려놓았으니 넥타이랑 챙기고" 그는 그레이 컬러의 수트와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습니다. 마트에 갈 때는 어떤 타이가 어울릴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가 가장 아끼는 타이를 집어 듭니다. 시간을 들여 꼼꼼히 타이를 맨 후, 마트로 향합니다. (네, 과장입니다.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지는 않습니다. ㅎ)

오래전, 어릴 적부터 몇십 년간 생활해온 익숙한 곳을 떠나 오류동, 교회 근처로 이사 온 그는 자신에게 어떠한 오류가 있기에 오류동까지 오게 됐나 생각하며 인상만 팍팍 쓰고 다녔더랬습니다. 하지만 낯이 익은 교회 식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심지어는 생판 처음 뵙는 권사님들께 몇 번의 인사를 받고 식은땀을 흘렸던 그는 주변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돌발사태를 대비하며 항상 맘에 준비를 하고 다닙니다.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짓거나 인사말을 연습하기도 하고, 거리를 오고 가며 매너 있는 남자처럼 보이려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통 그런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은 그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온화하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맘에도 없는 미소를 흘리고 다니던 그는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는 권사님께 떡볶이 사러 간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 말을 더듬는, 햇볕 좋은 초여름의 6월, 쌍둥이자리의 소심한 A형의 피를 타고난 간이 작고 심약한 남자입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여름, 그는 슬리퍼(보통 '쓰레빠'라고 하며 '질질 끈다'라는 동사와 같이 쓰입니다만)는 꿈도 못 꾸고 반바지도 꾹 참고 다녔습니다. 종종 옛날이 좋았다고, 맘 편하게 골목골목을 누비던 그 옛날이 좋았다고, 축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입고 검을 질겅질겅 씹으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그때가 그는 솔직히 그립습니다. (아,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노래만은 정말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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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애굽에 행하신 십대 재앙 중 9번째 '흑암 재앙' 때에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 고센에는 광명이 비쳤습니다. 애굽 전체에 더듬을 만한 흑암이 덮여 애굽 사람들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했던 땅과는 구별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어쩌면 저와 여러분은 밝고 밝은 고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강제일교회 구속사 말씀을 가슴에 품고 생활하는 그곳이 광명한 고센 땅이겠지요. 
세상천지와는 구별된 고센에서 생활하는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너무 밝아 저의 이기적이고 거짓된 본성과 더러운 속성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구속사 말씀을 품고 교회 근방에 교회 직원이란 직분으로 생활하는 저는 항상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기쁨에 넘치는, 고센 땅에 사는 성도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모자란 저를, 세상의 운명이 끝에서 끝에 닿은 이 시점에 다시 불러주시고 직원으로 써주신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부디 밝디 밝은 이곳에서 항상 성실, 정직함으로 깨어있기를 진실로 소망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이 서있는 그곳은 고센입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바짝 긴장하십시오.
언제 어디서 뵐지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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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이 시대의 주인공 _ 이장식 file

6월은 현충일과 6. 25 한국전쟁, 6. 29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달로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지정된 호국보훈의 달이다. 고등부 한소리에서도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휘선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

 
2017-07-05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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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3일마다 가스불에 앉기 _ 지근욱 file

1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 차에서 원로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다. 설교 때마다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몇 가지 비유가 있다. 예전에는 '또 저 말씀하시는구나...' 하며 귓등으로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아래 말씀은 그중 하나다. "죄...

 
2016-01-16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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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십자가를 생각하며 _ 김형주 file

고난주간 속에는 예수님의 33년 전 생애가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약속받는 확실한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 죄악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하기 ...

 
2016-03-26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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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5분 만에 요리가 안 나오는 이유 _ 지근욱 file

냉장고를 열고 식재료를 고른 후, 15분 만에 뚝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요즘 즐겨 본다. 요리를 먹는 스타들은 한입 먹는 순간 신비로운 표정에 '엄지 척'이다. 대부분의 다른 먹방(먹는 방송)과의 차이점이라면 냉장고에 ...

 
2015-10-10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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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당신 생각 _ 강명선 file

당신 생각 가을에는 커피가 더 맛있어진다. 따듯한 커피를 마실 때 그 진향 향기도 함께 마시게 되어 커피의 맛을 두 배로 누리는 기분이다. 여름에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목과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대신 그 향기는 사라진다. 나름 커피 애호가인 나는 오...

 
2015-11-29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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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워라밸(Work & Life Balance) _ 박승현 file

해마다 이맘 때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거나 다가올 새해를 내다보는 다양한 단어가 등장한다. 올 해 ‘욜로(YOLO, You Only Life Once)’가 미디어에 꾸준히 등장했다면, 2018년 트렌드 전망에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

 
2017-12-26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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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에노스, 너무나 에노스적인 _ 하찬영 file

‘그렇다고 그가 수천억 대의 자산가가 되고 싶어 하거나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꿀 혁명적인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돈에 눈이 먼 탐욕스런 인간은 아니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자 하는 위대한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다. 이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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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my Father’s Church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교회. 구속사 운동의 교회 Oh, let me ne’er forget 절대로 잊지 않으렵니다. 아버지께서 이 교회를 위해 흘리신 피와 눈물과 땀을 That though the wrong seems oft so str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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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_ 하찬영 file

‘봄 가을 없이 밤바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어느 시인의 고백이 떠오르는 지금, 저 역시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에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감 기한을 훌쩍 넘긴 지금 급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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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우리에게 친숙한 '70'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오는 광복절이다. 정부는 하루 전날을 임시 공휴일로까지 지정하며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가적인 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광복 후 걸어온 70년의 발자취가 세계사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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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지난해보다도 더 심한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민들이 하루하루 지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 현행 전기 요금 누진제 때문에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도 제대로 켜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에어컨을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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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Hold me, Mold me, Make me, Fill me _ 원재웅 file

Hold me, Mold me, Make me, Fill me 아주 오래전 우리 집 거실 장식장에 조그만 사기그릇이 하나 있었다. 도자기라고 하기에는 그 모양이 현대적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벤티 사이즈의 머그잔과 비슷한 형태의 그릇이었다. 보통 도자기에 글이나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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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울타리 _ 강명선 file

토요일 아침이다.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놀아야 한다. 자는 아들 깨워서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오류동 탐험을 나섰다. 작년 봄에 이사 왔지만 늘 집과 교회를 반복하다 보니 아직도 못 가봐 궁금한 곳이 많다. 자전거 길을 찾아 돌다가 빵집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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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5년이라는 길의 끝자락에서 _ 김범열 file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걸고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2015년 새 달력을 벽에 걸고 설레던 것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올해의 달력도 12월 마지막 한 장 밖에는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보내며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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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다 보면 간혹 상대방이 어떤 의중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느낌으로도 모르겠고, 제스처로도 파악이 안되고, 말로 표현하다 보면 더욱더 아련해집니다. 이는 대화하는 상대방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자세히 일러주어도 ...

 
2015-10-31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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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수련회의 추억 _ 박승현 file

요즘은 놀 거리, 볼거리가 많아졌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수련회(성경학교)는 일 년 내내 기다리는 행사 중 하나였다.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아~아 진리의 성경 말씀, 배우러 가자“를 외치며 말죽거리(지금의 양재)에서 78-1번 ...

 
2016-07-24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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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 해의 2/3 분기점을 지나는 천국 가는 나그네길에서 _ 박다애 file

잠잠했던 비염인데 알레르기가 다시 들끓어 올랐다. 가려운 눈을 비비니 열이 나고, 흐르는 콧물을 연신 닦아내느라 코밑이 허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절이 바뀌거나 기온차가 갑자기 커질 때면 으레 겪는 통과의례 같은 현상이다. 하늘이 높아졌고, 내가 ...

 
2015-10-03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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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조합의 창의성 _ 최주영 file

이 세 가지 물건들은 사람의 손안에 쏙 들어오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호모 에렉투스가 100만 년 넘게 사용했다고 알려진 손도끼입니다. 그 이전 원시인류의 최첨단 도구는 돌망치였지만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발명된 ...

 
2015-08-01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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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기대와 실행 _ 김진영 file

어느덧 2017년도 상반기가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2017년도라는 축구 경기의 전반전은 끝나고, 하프 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183일째인 7월 2일도 지났으니, 이제는 후반전만 남은 것이다. 부모를 통해 평강제일교회에 다니게 되고...

 
2017-07-12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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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_ 강명선 file

우리 아빠는 참 복도 많다. 아내를 잘 만났다. 별로 잘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아빠를 끔찍이도 챙긴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은데 환갑이 지난 지금도 아빠 곁에 있다. 옆에 꼭 붙어있다. 7남...

 
2017-10-27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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