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5

pkblog_body_12.jpg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완전한 이해는 없고 따라서 완전한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가장 가깝게 이해하고 공감의 폭을 넓히는 데에는 직접, 간접적 체험이 가장 효과적이겠지요. 이를테면 타인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의 통증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내 몸의 일부를 가시에 찔려본 체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려볼 때 ‘정말 아프겠구나’ 하고 얼굴을 찌푸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고통이 나에게 전이되어 잠시나마 내가 타인이 되어 볼 수 있는 거겠지요. 
 
지난 초겨울부터 시작된 감기는 해를 넘겨 봄이 되어서야 나았네요. 독감도 아니고 폐렴도 아니라는데 유독 기침이 심했지요. 하도 낫지 않아 여러 내과를 전전하고 한약을 먹어보기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큰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고 처방을 받았지만 금방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하다 보니 성가대 연습도 힘들고 성가대 설 때마다 기침이 터질까 봐 걱정이 되더군요. 옛말에도 기침과 연애는 숨길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때는 이런 생각이 간절했지요. (이놈의)기침만 떨어지면 뭐든 하겠다, 라구요.

기침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말을 잇기도 어렵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기침을 하면서 무언가 더 주지 못해 안달복달하던, 폐에 남아 있는 마지막 진액 한 방울까지 동원하여 말씀을 토로하던 바로 그분 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예수님의 속 사정을 잘 이해하시는지, 십자가의 고통을 현장 체험처럼 전할 수 있는 것인지, 하나님의 ‘하’자만 들어가도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고 싶다고 저토록 애를 태우는지, 그 모습 그 목소리 생생하기만 합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다 해도 봄을 이길 수는 없듯이 연약한 기관지도 따뜻한 공기를 받아들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침은 잦아들었네요. 심폐를 튼튼하게 한다는 요가를 잠들기 전에 하는 습관을 들이고 면역력에 좋다는 것들을 챙겨 먹기 시작했지요. (이놈의)기침은 뚝 떨어졌는데 ‘뭐든 하겠다’던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듯 외면을 하는군요.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육체로 체험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고 더욱 가까운 이해라는 생각 말입니다. 배가 고파보고, 몸이 아파보고, 가시가 박혀보고, 피를 흘려봐야 알 수 있는 이해 말입니다.

타인의 고통이란 그렇습니다. 대못에 박히는 잔혹한 고통도 내 손톱 밑의 가시보다 못 합니다. 인류의(나의) 죄악을 대속하느라 짓뭉개진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과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처절한 고독은 너무나 자주 헌신짝처럼 내버려집니다. 보다 더 안락한 것을 욕망하느라 나는 너무나 쉽게 배신하고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섭섭하다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직도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면 이해한다면 그리고 믿는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속 사정을 헤아리고 고통과 고독이 전이되고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여 드리고자 노심초사해야 마땅하지만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타인으로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은 봄처럼 따뜻하고 향기롭고 인내력이 탁월합니다. 한 번도 나를 타인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이해했고 끝까지 사랑합니다. 비겁하고 저열한 나를 여전히 참아주시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침묵한다고 느낀 건 내가 예수님에 대하여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차갑다고 느낀 건 내가 예수님께 차갑게 대했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멀다고 느낀 건 내가 예수님을 멀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할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의 고통의 핏자국에 한 걸음 다가서서 따르렵니다.


40cf2e9ba669808d406ad4a358133451.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75

#01. 금순이를 찾아서 _ 지근욱 file

두 배는 최대한 많이 실으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 배는 자유와 생명의 땅에 도착했고, 다른 한 배는 깊은 바닷속으로 잠겼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세월호 이야기다. 먼저 1950년 12월 흥남 부두로 가 보자. 6.25...

 
2015-03-12 614
174

#02.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그 매력적 오답의 치명적 유혹 _ 송현석 file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셨나요? “합리적 의사 결정, 민주적 절차,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학문적 근거 제시, ... ” 말은 한참 어려워도 결국은 우리네 삶의 기준이 되고 많은 학문적 접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

 
2015-03-13 729
173

#03. 슬픔의 절정에 춤을 준비하는 사람들 _ 홍미례 file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

 
2015-03-13 644
172

#04. 두 배 _ 최주영 file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식이 지금보다 ‘두 배’로 속을 썩인다면 어떨까? 부모 중 열에 아홉은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

 
2015-03-13 576
171

#05. 사순절을 지키는 두 가지 모습 _ 홍봉준 file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금식을 기념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결정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고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킨 반면에 서...

 
2015-03-13 696
170

#06. 거짓말 그리고 봄 _ 강명선 file

겨울이 가는구나. 봄방학 말미에 그녀를 만나러 경복궁역을 향해 간다. 나와 함께 이곳 평강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녀를 이제 교회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녀가 나를 부르면 내가 간다. 늘 내 가방에는 머뭇머...

 
2015-03-14 753
169

#07. 신앙의 성과 지표 _ 김태훈 file

CEO 모임에 가보면 그 모임의 성격에 따라 주고받는 질문도 다르다. 유명 경제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포럼이나 조찬모임의 경우 규모가 큰 기업들의 CEO들이 많이 참석하는 만큼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는 경영 키워드에 대한 논의가 많다. “대표님 ...

 
2015-03-21 714
168

#08. 인생 최후의 오디션 _ 원재웅 file

최근 화제에 오르고 있는 영화 ‘위플래쉬’는 천재 드러머를 갈망하는 학생 앤드류와, 그의 광기가 폭발할 때까지 몰아치는 폭군 플렛처 교수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올해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과 음향상, 편집상 등 무려 3개 부문을 석...

 
2015-03-28 823
167

#09. 게으른 파수꾼, 추억의 발걸음을 걷다 _ 송인호 file

길을 나서볼 때입니다. 어느덧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모이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충전이 잘 된 LED 랜턴과 손에 달라붙는 알루미늄 방망이 하나를 집어 들고 말입니다. 첫 행선지는 내 맘대로 정한 순서대로 예전 회계실 건물입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

 
2015-04-04 746
166

#10. 분노 조절 장애 _ 지근욱 file

욱! 하는 성격 종종은 아니지만 아주 드물게(?) 나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와이프에게 핀잔을 듣는다. 특정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 마주하면 버럭 화를 낸다. ‘아차!’하지만, 이미 주변 상황은 불편해져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노하기를 더디 하라...

 
2015-04-18 1099
165

#11. 동행(同行), 그 마지막 모퉁이를 돌며 _ 송현석 file

굳어져버린 발뒤꿈치의 살이 이제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상처 속 피가 굳어지니 이내 검게 썩은 듯한 갈라진 자국으로 변한다. 사뭇 놀랐으나, 검은 양말의 솜털이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을 알아챈 후 애써 위안덩이로 삼는다. 얼마 전까지 그래...

 
2015-04-25 1229
»

#12. 타인의 고통에 한 걸음 다가서기 _ 홍미례 file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완전한 이해는 없고 따라서 완전한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가장 가깝게 이해하고 공감의 폭을 넓히는 데에는 직접, 간접적 체험이 가장 효과적이겠지요. 이를테면 타인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의 통...

 
2015-05-02 597
163

#13. 불멸 _ 최주영 file

5월입니다. 영어 이름인 ‘May’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부의 수호신, 봄과 성장의 신, 모든 식물의 성장을 담당하는 여신 마이아(Mai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피천득은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괴...

 
2015-05-09 543
162

#14. 뒤에서 들리는 스승의 목소리 _ 홍봉준 file

5월은 일 년 중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다. 어린이로부터 시작해서 부모와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사람의 성장과 가르침에 관련된 날들이다. 그중에서 스승의 날은 그 의미와 가치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스승은 변치 않는 우리 ...

 
2015-05-16 646
161

#15. 신앙의 건강을 위한 균형 있는 식단 _ 김태훈 file

건강식품 유통업을 하는 지인을 만났는데 평소와 달리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가짜 백수오 사건으로 업계가 비상이라고 한다. 5월은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어 통상 일 년 중 건강식품의 판매가 가장 활발해야 하는 시점인데 사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2015-05-23 466
160

#16.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까 _ 맹지애 file

시대가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가슴 뛰는 꿈을 꾸고 어른들은 그 꿈을 응원하던, 말 그대로 ‘꿈’만 같던 시기가 흘러가버렸습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업을 얻고, 좋은 직업을 얻어야 편...

 
2015-05-30 751
159

#17. 울타리 _ 강명선 file

토요일 아침이다.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놀아야 한다. 자는 아들 깨워서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오류동 탐험을 나섰다. 작년 봄에 이사 왔지만 늘 집과 교회를 반복하다 보니 아직도 못 가봐 궁금한 곳이 많다. 자전거 길을 찾아 돌다가 빵집에 들...

 
2015-06-06 505
158

#18. 유작(遺作) _ 원재웅 file

1. 1685년 독일 중부 아이제나흐에 사는 요한 암브로지우스의 집안에 여덟 번째 아들이 태어난다. 아버지 요한은 거리의 악사였기에 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며 자라난다. 아홉 살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가난한 큰형의 집에 얹혀살며 음악 공부...

 
2015-06-13 549
157

#19. 위험불감증 _ 김범열 file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의료진과 방역 당국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로 붐벼야 할 시내 유명 백화...

 
2015-06-20 470
156

#20. King of Mask Singers _ 송인호 file

"복면가왕"이란 프로죠.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 하는데, 이 정도로 음악성이 있는데, 난 아직 잊힐 때가 아닌데, 난 너무 저평가 되었는데... 이런 출연자들을 모아 모아 가면을 씌우고 노래로 순위를 정하는 오락 프로그램입니다. 가면을 쓴 가...

 
2015-06-27 570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