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5
등록일

2016.03.20


pkblog_body_54.jpg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방이 담으로 꽉 막힌, 교도소 담장과 감방 사이를 구분 짓는 벽들로 둘러싸인 것 같은 이 땅의 삶이란! 그것은 간단하게 ‘답답하다’, ‘갑갑하다’ 정도로 표현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알고 보면 엄청난 폭력이요 억압이다. 다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물 밖 세상을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담을 담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삶의 경계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얼마나 시원스러운가?
28년간이나 동독과 서독을 구분 짓던 5m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괴물이 무너진 날, 1989년 11월 9일의 감격은 전 세계인에게 선사한 하나님의 축복의 이벤트였다. 그 무너진 장벽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모든 장벽은 언젠가는 무너진다.” 
그러나 거대한 장벽도 언젠가는 무너지지만 문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가 30년 가까이 돼가지만 여전히 동독과 서독 국민들의 마음에는 콘크리트 장벽이 있던 곳에 경제력의 격차와 편견이라는 담을 대신 쌓아가고 있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동독 출신을 바라보는 서독 출신들의 편견. “이기적이고 돈만 밝히는 속물”로 서독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독 사람들. 서로를 향해 이처럼 편견으로 비난할 때 각자에게 자신도 모르는 벽이 점점 높이 세워지는 것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맨 몸뚱어리 하나로 수천 년 켜켜이 쌓아 올린 분열과 편견과 증오의 담을 홀로 부수느라고. 얼마나 간절히, 얼마나 과감히 자신의 몸을 내리쳐 세상의 담을 허물려 하셨는지,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찢어지고 말았다. 2천 년 동안 절대 신성불가침 영역이었던 지성소가 열렸고, 영혼을 가두어 무지의 감옥으로 이끌던 육체를 깨뜨려 부활의 새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 사도바울은 이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엡 2:14-15)고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 주님에게 참으로 멋진 별칭을 붙여주었다. 화평케 하는 자요 화목의 사도, 예수 그리스도!
 
민족과 민족이 하나 되고 국가와 국가가 화해하며, 집단과 집단이 진정 화합하는 것도 사실은 나와 너의 화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하나님(너)과 나와의 하나됨의 관계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관계이며 구원으로 보았다.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인 ‘너’로 존중하지 않고 ‘그것’(it)으로 대하려 한다. 사람을 ‘그것’으로 대하는 자는 상대를 오로지 대상으로,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자다. 이들 사이에는 결코 허물 수 없는 강력하고도 견고한 담이 가로막고 있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그 수많은 차별과 학대와 억압과 파괴와 죽음을 가져온 원인이었다.

 

38선이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38선보다 더 견고하고 강력한 아집과 이기심과 욕망의 담을 발견한다. 38선으로도 모라랐는지 동서(영호남)로 갈라지고, 학연과 지연으로 갈라지고, 빈부의 정도에 따라 유유상종하며 수많은 담을 쌓고 선을 그으며 서로와 서로를 구분 짓고 편을 가르는 세상! 주님께서 ‘십자가’로 힘겹게 이루신 담장 없는 세상, ‘나와 그것’으로 갈라진 세상을 하나로 만드신 그 십자가의 위력, 당신의 육체를 과감히 던지신 그 용기와 희생을 우리는 어찌 이처럼 매몰차게 외면하고 있는가!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기름으로 반죽하여 ‘한 덩어리’로 하나님께 드렸던 소제를 생각해 보라. 나와 너 사이에 막힌 담이 있다면 어찌 한 덩어리 반죽이 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지극히 거룩한 그 소제물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막힌 담을 허물고 나 자신을 희생하여 ‘고운 가루’로 만들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사순절의 절정인 고난 주간을 앞두고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묵상하면서 세상의 그 거대한 편견과 교만과 탐욕의 벽에,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당신의 온몸이 으깨지고 바스러질 때까지 던져 담을 허무시는 그 처절한 모습을 발견한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막힌 담과 마주하시며, 십자가에 당신의 온몸을 내어맡기듯 오직 당신의 육체 하나로 무너뜨리는 주님을 본다. 

십자가의 망치로 내 속에 있는 담을 먼저 허물고, 말씀의 맷돌 들어 고운 가루 될 때까지 갈고 갈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형상으로 빚어지는 교회, 그런 평강제일교회는 담이 없는 교회다. 둘로 갈라섰던 서로가 이제 하나 되어 화목의 직분을 감당하는 교회, 그것이 사도바울이 그리고 있는 천국의 모습이요, 우리 주님이 영원히 왕 노릇하는 하나님 나라다.

 

 

ac348b7e523a7e6d1744c0fbecdacdb2.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55

#122. 학교에서 배운 한 가지 _ 하찬영 file

그랬던 것이다. 그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소위 말하는 미대 다닌 남자였다(이대 아니고 미대라고 그는 또 아재개그를 날렸다). 그는 그런 그의 타이틀이 나름 있어보인다며 은근히 만족해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디자인 전공에 대해 웬만하면 말하지 않으...

 
2017-08-09 415
54

#123. 10년 _ 이승옥 file

휴대폰이 갑자기 고장 났다. 새 휴대폰으로 바로 교체 후 앱에 싸이월드가 있는 것이 보인다. ‘어라? 이거 아직도 있네…. 아이디랑 비밀번호가 이거던가…, 어 맞네!’ 싸이월드 접속 후 그곳에서 나는 10년 전 그대로 간직된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

 
2017-08-12 604
53

#124.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_ 정유진 file

‘나비효과’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비효과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은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것까지 무한대의 ...

 
2017-08-12 116293
52

#125. 노래하는 말 _ 송인호 file

죄를 짓고 붙잡혀 왕이 내리는 처벌을 받을 운명에 처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이 죄수는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 1년 안에 왕이 아끼는 말에게 노래를 가르치겠다는 약속으로 왕을 설득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

 
2017-08-16 469
51

#126. 고등부 교사 총무를 마치며 file

지난 8월 13일에 고등부 교사 총회가 열렸다. 1년 임기의 새로운 교사 총무를 선출하였다. 고등부는 고3 이전에 학생 임원 활동을 마무리하고 수험생 모드로 들어가기 때문에 교사 총무의 임기도 학생의 그것과 주기를 같이 한다. 임기를 마치면서 그 동...

 
2017-08-30 558
50

#127. 인생 2막을 시작하며 file

2017년, 어느덧 입추와 처서를 맞이하고 이제는 선선한 가을바람을 기다리는 때가 되었다. 올 해 벌써 많은 일들을 겪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에 헉! 하고 놀랄만한 사건은 바로 곧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어린것...

 
2017-08-30 454
49

#128.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_ 홍명진 file

일본의 소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 1995년판이 집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렇다 못해 아주 진한 갈색 페이지들과 광택은 이미 온데간데없는 탁한 표지였다. 책을 펼치면 딱 '오래된' 종...

 
2017-09-11 530
48

#12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 _ 김영호 file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익숙한 향기를 맡았습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옛날 시골집의 향기였습니다. 초등학교 방학 때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내려가서 한 달 내내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빌라와 ...

 
2017-09-19 465
47

#130. 바라봄의 기쁨 _ 서재원 file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화려함, 때로는 소박함, 그리고 보는 것으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눈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기관 중 하나 입니다. 하루라도 눈을 뜰 수 없다...

 
2017-10-10 374
46

# 131. 수영을 통해 깨달은 영혼의 숨쉬기 file

얼떨결에 등록하게 된 수영. 교역자에겐 사명이 생명인지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마땅한 게 없던 차에 누군가 수영을 권했다. 첫 시간부터 ‘와 이런 신세계가 있구나’ 감탄을 했다. 일단 뭔가 새로운...

 
2017-10-10 734
45

#132. 다음주에 또 보자 _ 이장식 file

어느덧 하늘은 높아지고 시원해진 가을바람이 분다. 그루터기 쉼터 앞 벤치에 앉아 문득 파란 가을 하늘을 보고 있자니 눈길을 끄는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올해도 꽃이 피더니 이렇게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구나. 그 과...

 
2017-10-10 542
44

#133. 나를 살게 하는 것 _ 박남선 file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눈을 뜬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밀물처럼 우리의 뇌리와 마음에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는 것,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을 감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바로 근심과 걱정이다. 먼지보다 자그마한...

 
2017-10-20 621
43

#134.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_ 강명선 file

우리 아빠는 참 복도 많다. 아내를 잘 만났다. 별로 잘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아빠를 끔찍이도 챙긴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은데 환갑이 지난 지금도 아빠 곁에 있다. 옆에 꼭 붙어있다. 7남...

 
2017-10-27 518
42

#135. 담백한 마무리 _ 김진영 file

차가운 바람 속에서 2017년도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점차 가까워짐을 인지하게 된다.‘올해는 정말 다르다’라는 결심과 승리의 수 ‘17’이라는 설렘을 갖고 세웠던 2017년도 신년 목표를 펼쳐 보니 새삼스럽게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간...

 
2017-10-30 647
41

#136. 내가 여기에 서있는 이유 _ 하찬영 file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우연히 저는 ‘위플래시’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라 틀어놓고 있다가 결국에는 끝까지 보고야 말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아무래도 이제는 그...

 
2017-12-01 386
40

#137. 감사 _ 이승옥 file

감사라는 뜻은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이라고 사전에 정의하고 있다.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설교 중 나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 중에 하나는 감사가 없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이다. 감사 없는 헌금, 감사 없...

 
2017-12-01 553
39

#138. 말씀의 온도 _ 정유진 file

요즘 차고 뜨거운 정도를 나타내는 ‘온도’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언어의 온도, 사랑의 온도, 행동의 온도, 이별의 온도, 리더의 온도 등. ’잘 지내니?’라는 작은 안부 인사가 영하 10도라면, 이것을 안부로 들어야하는지, 감정적 공격으로 혹...

 
2017-12-01 520
38

#139. This is my Father's Church _ 송인호 file

This is my Father’s Church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교회. 구속사 운동의 교회 Oh, let me ne’er forget 절대로 잊지 않으렵니다. 아버지께서 이 교회를 위해 흘리신 피와 눈물과 땀을 That though the wrong seems oft so strong, ...

 
2017-12-01 493
37

#140. 신앙전수의 길 _ 김신웅 file

2017년 11월 17일, 평소와 같이 아침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 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친할머니의 임종 소식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슬픔이 찾아오면서 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20대 초반...

 
2017-12-26 453
36

#141. 12월에 시작하기 좋은 책읽기 _ 이원재 file

학교 현장은 한 학년을 마무리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2차 지필평가(예전에는 기말고사라고 했음)가 곧 시작하고 방학 전까지 각종 행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3 수험생은 포항 ...

 
2017-12-26 417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