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6
등록일

2018.11.24

pkblog_body174.jpg

시험 감독을 하러 낯선 학년 낯선 교실에 들어갔다. 분주한 교실을 정돈시키고 시험지를 배부하자 교실은 고요해진다. 교탁에 서서 보면 머리 숙인 까만 머리통들만 보인다. 돌이 굴러 가는지, 머리를 굴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반 몇 분은 집중된 기운에 숙연해질 정도다. 순간 문득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이상야릇하다. 분명 직장생활을 하던 나였는데, 나는 영어 선생님이 되어 중간고사 감독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의 10년을 직장에서 그 이후 7년을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보내던 시기였다. 그 이상한 자리에서 나는 특이한 학급 표어를 보았다.

 

“나도 쓸모가 있다.”


이 학급 교어를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왠지 큰 위안이 되는 글이었다. 맞아, 우리는 다 쓸모가 있어. 누가 꼭 말해주었으면 하는 글을, 이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볼 수 있다니, 이 학급은 왠지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쓸모가 있을 텐데...”


분주하던 일상이 모두 쓸려 내려가고 남은 것은 시간뿐인 계절이 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사회는 나를 무용지물로 보는 것 같은 시기였다. 내가 가장 바쁜 날은 오직 주일. 주일에만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빴다. 하나님만 나를 사용해주시는 구나. 기쁘면서도 울적한 느낌은 나를 자꾸 돌아보게 했다. 하나님 나를 왜 부르셨어요? 나를 왜 태어나게 하셨어요?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나를 어디다 쓰 실 건데요? 다 같은 질문이었다.


 

나에겐 타고난 재능 같은 건 없었다. 딱히 떠오르는 잘 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세상은 경력자를 뽑는데, 교회는 신입도 환영. 이런 나도 교회에서는 쓸모가 있었다. 노래도 못하는데 성가대에 뚝하니 세워준다. 악보의 콩나물을 보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옆 사람의 소리를 듣고 따라 부르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 서있다. 그래서 성가대가 좋았다. 나 같은 사람도 노래할 수 있게 해주다니.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를 한다니. 찬양이 시작할 때 마다 늘 먼저 소리를 낼까봐, 박치인 내가 얼마나 떠는지 아무도 모를 꺼다. 요셉 선교회 성가대에서 쓸모없는 자를 쓸모 있다 해주시는 은혜를 입고, 그에 용기를 얻어 지금은 실로 성가대에서 찬양을 한다. 이번에는 영어다. 영어 가사로 찬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사를 틀릴까봐 악보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인원은 왜 이리 적은지. 내가 노래 못하는 거 딱 티가 나는 인원이다. 어떤 날은 소프라노가 2명, 3명. 성가대 찬양의 마지막 소절은 언제나 저 높은 곳에서 내 마지막 호흡을 가져가려고 작정한 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 마지막 소절을 부르다 김빠진 소리도 내고, 삑사리도 내고 민망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으면 내 심장이 얼마나 쿵쿵 뛰는지 손도 함께 떨린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이시다. 잘 못하는 사람을 모아다 즐겨 사용하신다. 그래서 내가 드릴 수 있는 감사는 출석을 하는 거다. 허락하신 그 자리를, 나를 사용해주시는 그 자리에 서는 거. 그게 감사고 그게 기쁨이다. 그래... 난 뭘 그만두는 것도 잘 못하는구나. 쓸모없는 것 같은 나도 쓸모 있다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좋다. 그래서 나는 참평안지 기자로, 문화예술인선교회 봉사자로, 실로선교회 성가대로, 하캄 영어선생님으로 쓰임 받고 있다, 내년에는 5대교구 구역장이라는 새로운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5대 교구에서 “나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석을 다짐해본다.

 


우리를 쓸모 있다 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눈에는 우리 모두가 “여호와이레”의 사람들이지 않을까? 만세전에 쓰시려고 작정하여 때가 차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주신 아버지. 그래서 돌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고, 굴러가 보련다. 아버지! 저 굴러가요~



pkblog_body_ㅡ강명선.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6

# 170. 북한에 대한 생각 file

대통령 탄핵된 시기부터였을까, 나라에 대한 걱정이 멈추질 않는다. 최근에는 북한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백두산을 등정하는 장면이 매체를 통해 전해지며, 남북한의 관계가 급격하게 좋아지고 머지않아 평화가 찾아올 ...

 
2018-10-06 1433
5

# 171.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file

- 본 글은, 원어해석, 영해, 신학적 분석이 절대 아니며, 개인적인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 원로목사님께서 평소 설교 중,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5-39)'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시곤 ...

 
2018-10-13 1428
4

#172. 가짜 뉴스(Fake News) file

여든을 앞둔 아버지께서는 다양한 내용을 ‘카카오 톡(카톡)’으로 보내신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네요, 건강에 유의~’ 로 시작하는 아침인사와 그림은 기본이다. ‘움짤(움직이는 짤방의 줄임말, 움직이는 그림을 뜻함)’에서 유튜브 동영상까지 그 자료의 ...

 
2018-10-28 7515
3

# 173. 표현에 대하여 file

늦은 밤마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 들었던 회 차 중에 흥미로운 미션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해’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미션이었다. 의외로 우리는 가까운 주변 사람에게조차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작된 미션...

 
2018-11-10 2921
»

#174. 나도 쓸모가 있다 file

시험 감독을 하러 낯선 학년 낯선 교실에 들어갔다. 분주한 교실을 정돈시키고 시험지를 배부하자 교실은 고요해진다. 교탁에 서서 보면 머리 숙인 까만 머리통들만 보인다. 돌이 굴러 가는지, 머리를 굴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반 몇 분은 집중된 ...

 
2018-11-24 3432
1

#176. 그 책, 거울이 되다 file

예전에는 책은 깨끗하게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다 읽은 책은 책장 한 곳에 꽂아 두고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 채 먼지가 쌓이도록 방치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책은 그렇게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모름지기 책이라면 구석구석 읽는 이의 손때가 묻고 손길...

 
2018-12-22 2597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