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6

pkblog_body_1.jpg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난히 예쁜 얼굴 때문에 마을에서 유명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듯 아역배우를 쏙 빼닮은 눈매와 흰 피부와 곱슬머리에 어울리는 다소 새침한 태도 때문에 누구나 아이를 만져보고 싶어 했고 한 번쯤 품에 안아보고 싶어 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애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진 것 자체가 너무 신비로웠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그 커다란 눈망울, 사람이 저렇게 예쁘게 타고날 수도 있구나.

그 시절 친구네 부모님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특용작물로 ‘오이’를 재배했고 수익성이 좋았다. 겨울이면 오이 수확이 끝난 비닐하우스의 폐비닐을 벗기는 작업을 했는데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을 위해 큼직한 드럼통에 폐비닐을 넣고 태워 난로를 대신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시골의 겨울 풍경이었다. 오이 재배로 농한기를 든든히 날 수 있는 젊은 농부들의 손길은 한껏 여유가 있었고 아이들은 그 주위에서 연도 날리고 썰매도 타고 불놀이도 했다. 그런 풍경 가운데 아이의 불길한 운명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사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난로처럼 쬐던 드럼통 속을 사남매 중 누군가 불꽃을 피우려고 막대기로 들쑤셨다고 했다. 그 바람에 불똥이 아이의 옷에 튀었는데 아이가 화염에 휩싸인 건 순식간이었다고 했다. 들리는 말은 그게 다였다.

아이가 그렇게 되고 친구네는 이듬해 봄, 마을을 떠났다. 빈 집은 꽤 오랫동안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 폐비닐이 벗겨지다 만 철골만 앙상하게 그날을 기억하는지 쓸쓸하게 남았다. 그 해 겨울방학 동안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죽음’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이의 눈망울, 웃음소리, 작은 손은 어디로 간 걸까. 살아서 뛰어놀고 사랑을 받았던 몸은 하루아침에 주검이 되었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남은 가족의 슬픔은? 엄마는 그런 걸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말라며 근심을 하셨고 또 다른 사람들은 표면적인 이야기만 했다. 어린 내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건 어떤 순리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며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였다. 어린 나에겐 꽤 큰 지진이었던 셈이다.

슬픔은 그랬다. 언제 어디서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생의 골목골목에서 잠복해 있다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인간으로 사는 이상 누구나 끝없이 겪어야 하는 삶의 전쟁에 어느 순간 객관적 관점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를 내려놓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만의 문제, 숙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는데 사람에게는 답이 없었다. ‘죽음’에 대한 첫 경험에서 파생된 슬픔이 은혜의 빛을 따라 평강제일교회 말씀 앞으로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겨 삶의 전폭적인 기준을 삼게 했을 것이다. 연약한 인간, 치명적인 약점들, 사람으로는 아무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 죄와 죽음에 관한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필연적인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산다는 것은 분명 개인의 몫은 아닌 듯하다. 믿음의 부여는 철저하게 그 주권을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믿음을 받아 지금 말씀 안에 함께 하는 우리 모두는 ‘큰 슬픔’의 풍랑을 겪고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서로 눈빛만 부딪쳐도 애틋하고 기운 없는 어깨만 바라봐도 가엾다. 다시 찾아 들어보는 원로 목사님의 기도 속에는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게 지켜달라는 기도가 애절하게 녹아있고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도 제목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슬픔은 결국 사랑이다. 슬픔을 겪지 않은 믿음의 선진은 아무도 없었고 고통 없는 구속사 시대는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 슬픔의 절정은 가장 큰 사랑이었고 인간이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명명백백 유일한 길이라는 표적이 되었다.     

슬픔은 말한다. 슬픔 자체에 빠지지 말고 슬픔이 가르치는 것을 붙잡으라고. 우리에게 슬픔의 대상이 된 분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열방이 춤추며 몰려온다, 은혜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이긴다, 생명 바쳐 일하면 교회가 두 배 부흥한다고. 우리는 춤추게 되어 있고 기쁨으로 띠를 띠게 되어 있고 승리하게 되어 있고 두 배 부흥하게 되어 있다. 그러려면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고 은혜의 세력에 연합해야 하고 생명 바칠 열심으로 충성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 슬픔 자체의 눈물과는 또 다른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겠다. 그날, 단 한 영혼도 낙오되지 않고 모든 슬픔의 베옷이 완전히 벗어지고 새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춤을 추도록.





essay03.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66

#176. 그 책, 거울이 되다 file

예전에는 책은 깨끗하게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다 읽은 책은 책장 한 곳에 꽂아 두고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 채 먼지가 쌓이도록 방치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책은 그렇게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모름지기 책이라면 구석구석 읽는 이의 손때가 묻고 손길...

 
2018-12-22 2597
165

#174. 나도 쓸모가 있다 file

시험 감독을 하러 낯선 학년 낯선 교실에 들어갔다. 분주한 교실을 정돈시키고 시험지를 배부하자 교실은 고요해진다. 교탁에 서서 보면 머리 숙인 까만 머리통들만 보인다. 돌이 굴러 가는지, 머리를 굴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반 몇 분은 집중된 ...

 
2018-11-24 3432
164

# 173. 표현에 대하여 file

늦은 밤마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 들었던 회 차 중에 흥미로운 미션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해’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미션이었다. 의외로 우리는 가까운 주변 사람에게조차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작된 미션...

 
2018-11-10 2921
163

#172. 가짜 뉴스(Fake News) file

여든을 앞둔 아버지께서는 다양한 내용을 ‘카카오 톡(카톡)’으로 보내신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네요, 건강에 유의~’ 로 시작하는 아침인사와 그림은 기본이다. ‘움짤(움직이는 짤방의 줄임말, 움직이는 그림을 뜻함)’에서 유튜브 동영상까지 그 자료의 ...

 
2018-10-28 7515
162

# 171.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file

- 본 글은, 원어해석, 영해, 신학적 분석이 절대 아니며, 개인적인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 원로목사님께서 평소 설교 중,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5-39)'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시곤 ...

 
2018-10-13 1428
161

# 170. 북한에 대한 생각 file

대통령 탄핵된 시기부터였을까, 나라에 대한 걱정이 멈추질 않는다. 최근에는 북한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백두산을 등정하는 장면이 매체를 통해 전해지며, 남북한의 관계가 급격하게 좋아지고 머지않아 평화가 찾아올 ...

 
2018-10-06 1433
160

#169. 선교(宣敎, mission) file

선교(宣敎, mission) : 종교를 선전하여 널리 폄 '전도'와 비슷한 의미로, 주로 전도는 같은 언어/문화의 사람들에게 종교를 전파한다는 뜻이지만, 선교는 다른 언어/문화의 사람들에게 종교를 전파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올해만큼 이 '선교'라는...

 
2018-09-22 1477
159

#168. 信者의 내적 투쟁에 대하여 file

사도바울은 내적투쟁에 대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시해 주고 있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입니다. 로마서 7장을 통해 믿는 자의 내적 투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고 로마서7: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

 
2018-09-17 1612
158

#167. The Judas Tree file

가룟 유다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제자로 이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목매어 자살한 제자. 성경은 그가 스스로 목을 매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창자가 터져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길 유다가 나무에 목...

 
2018-09-01 2357
157

#166. 신앙의 피드백 file

필자가 회사에서 연구하며 개발하고 있는 반도체 회로는 위상고정루프(Phase-locked loop)라는 것인데, 이는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회로이다. 10년간 연구하다 보면 끝을 볼 법도 하겠지만, 이 주제...

 
2018-08-25 1223
156

#165. 방법의 차이, 고난 혹은 축복 file

우리 다같이 BC 1446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즘과 같은 폭염 속에 햇볕은 내리쬐고 모래먼지는 이는데, 부모며 자식이며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오래 살던 땅을 벗어나 이전에 사용했던 냉장고며, 전기밥솥이며, 옷과 책들을 가방에 넣고 수레를 끌며 사막 길...

 
2018-07-28 1309
155

#164. 먹고 사는 문제 file

다행히 사오정(45세 정년)은 넘겼지만, 오륙도(56세에 현역이면 도둑놈) 고개는 무사히 넘어갈지 걱정되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다니고 있지만, 평범한 중소기업이라 더 그렇다. 정년보장 철밥통, 강성노조가 근로자편에서 투쟁하는 회사, 처우는 좋...

 
2018-07-21 1228
154

#163. 추가시간 6분까지 ‘전력 믿음!’ file

‘역시 끝까지 가봐야 아는구나!’ 입을 벌리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27일,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이 피파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격파했던 그 때 말이다. 전반전에 실점하지 않은 것도 대단히 큰 성과라 생각했다. 독일에 승리할 확률 5%, ...

 
2018-07-07 1263
153

#162. '인내(忍耐)'를 가르칩시다. file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가정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채 학교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교사더러 인성교육을 기대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배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들이 넘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

 
2018-07-02 1195
152

#161.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file

“너는 성경이 왜 좋니?” 뜬금없는 질문에 저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머뭇 얼버무리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도대체 성경이 왜 좋으냐?’는 오래전 그 날 뜬금없었던 그 질문은 여태껏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따라서 확신을 ...

 
2018-06-23 1390
151

#159. 천천만만 당신의 매력 file

참 이상한 사람이다. 당신은 한 명인데 당신에게 매료된 사람이 천천만만이다. 당신을 직접 만나본 사람도 당신의 글만 읽은 사람도 당신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당신에게 매료된다. 당신의 외모는 접근하기 쉬운 인상도 아니었고, 당신의 목소...

 
2018-05-26 1710
150

#158.염려가 위로가 되고 file

‘파라칼레오’는 히브리어로 ‘위로’라는 단어이다, ‘곁에서 이름을 부르다’라는 뜻이고,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위로를 해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다. 문득, ‘위로’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

 
2018-05-12 1559
149

#157. 갑(甲)질의 역사 file

“또 그랬네, 그거 집안 내력(DNA)인가 봐.” 한진그룹 세 자녀들의 갑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파장이 컸다. 최근 막내딸인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 중 대행사 직원에게 고성과 함께 물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8-04-28 1219
148

#156. 이길 밖에는 대안이 없어요? file

살아가다 보면, 선택의 기로가 심심치 않게 주어집니다. 혈압이 높으니 카페인을 줄여야 하는데 몽롱한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빈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선택이고, 종합 검진을 받고, 아찔한 숫자들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자, 운...

 
2018-04-14 589
147

#155. 습관은 반복이다! 경건을 연습하라! file

‘아차! 밤늦게 군것질 안하기로 했었지...’ 결심한 것이 생각났을 때 나는 이미 초코파이 두 개에, 고구마 한 개, 하루 견과 3일치에다 사탕을 5개나 까먹고, 과자 봉지가 반 이상 줄고 있을 쯤 이었다. 시간은 밤 10시가 훨씬 넘어 11시가 다되어가고 있는데...

 
2018-04-02 1090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