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6
등록일

2015.09.06

untitled.png

녀석을 발견한 것은 교회 에담 식당 앞 주차장 부근이었다. 감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굴러떨어져 있던 그 녀석. 그 작고 앙증맞은 녀석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발걸음을 멈췄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그 철없는 녀석이 아직은 깨끗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어쩌라고. 아... 어쩌라고.' 작은 탄식이 나온다. '어쩌다가 떨어진 거니. 아버지 곁에 딱 붙어 있었어야지.' 그 작고 매끈한 초록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직 나무에 바짝 붙어있는 다른 초록 꼬마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너희는 주먹 꽉 쥐고 붙어 있어야 해, 가을이 올 때까지.' 걱정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다시 떼었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마지막 잎새를 그려 준 화가처럼 떨어진 그 녀석을 다시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바짝 붙어있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다. 올여름을 잘 버텨야 한다. 나의 여름은 그렇게 작은 긴장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그리고 이어진 여주 하계 대성회 '황금종을 울려라' 성경퀴즈대회 출전. 구속사 시리즈가 출간된 이후 매번 황금종 대회에 출전했기에 나에게는 익숙한 준비기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모습은 왜 이렇게 낯선지. 스스로 신앙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바짝 붙어서 살아있는 성도가 되고 싶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그 녀석처럼 굴러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출전한 거였는데, 나는 구속사 시리즈 예상 문제지를 앞에 두고 '이런 지엽적인 문제는 안 나와. 이건 전에 나왔던 문제야. 아... 이것까지 다 까먹은 거야?'라며 혼자 분노했다가 투덜거렸다가 책을 덮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며 동네 카페를 전전했다. 당시 기도제목은 '산 자'로 그 자리에 서는 것이었다. 문제를 몇 번까지 맞추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런데 대회 당일, 나는 3번 문제에서 떨어졌다. 이게 웬일인가. 답이 무드셀라와 에녹인데 나는 에녹을 빼먹은 채 당당하게 답안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너무도 빨리 대기석으로 옮겨졌다. 그곳은 부활의 때까지 남아있는, '잠들어있는 자들의 자리'였다. 그곳에서도 문제를 계속 풀었다. 이미 탈락했는데 문제를 왜 푸느냐고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래도 주변에는 나처럼 그 자리에서 같이 문제를 푸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곳이 고립된 곳임을 깨달았다. 이상했다. 바로 옆 무대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살아남은 선수들의 긴장감, 그리고 앞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흥겨움 속에서, 우리는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들어있는 자들'이었다. 대회 중간중간 문제풀이도 있고 축하공연도 있었기에, 패자부활전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점점 살고 싶어졌다. 드디어 패자부활전의 문제가 나왔다. 듣는 순간 답을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거긴 내가 결혼한 성전 이름인데. 부활을 향한 초조한 카운트다운 가운데 나는 역대열왕가를 되뇌었다. 그리고 겨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산자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살아있다는 거구나. 부활보다는 변화가 천 배 좋다. 에녹 문제에서 떨어진 이유가 있었다.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시 115:17)

여름은 뜨거워야 하고, 땀을 흘려야 하고, 익어야 한다. 초록이 붉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래야 살 수 있다. 땅에 떨어지면 구속사의 진행과 완성과 성취의 순간에 함께 기뻐할 수 없다.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올여름은 나에게 바짝 붙어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 떠나간다. 고마워 여름아. 안녕!


95c2b5acfa5637bf80981beefe30d17c_TaRLTXVhQGHJyIVu14fsWx8fFQl.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46

#154. ‘천만 대박’영화의 시나리오 file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오래전 그때 그 시절, 영화가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더랬다. 당시에는 원하는 영화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동네 상가에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아니면 ...

 
2018-03-24 612
145

#153. 하늘에 펼쳐진 약속 file

“주님께 나아가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모두 드러나네 마음의 소원들이 나의 뜻과 다르네 주님의 생각하심은 드넓은 광야로 인도하네 새로운 길 여시네 두려움 속에 한걸음 딛네 담대함 주시는 하나님 강한 손으로 주 날 붙드네 ...

 
2018-03-17 1297
144

#152. 본(本)이 되어야... file

구속사 시리즈 10권을 통해 사관학교를 등록하고 환경과 여건에 맞는 많은 반들을 수강하고 있다. 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을 통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아브라함의 생애, 복의 근원. 그것은, 본(本...

 
2018-03-03 667
143

#151. 감사와 사명 file

사명使命, 부릴 사使 목숨 명命, 국어사전에서는 '맡겨진 임무'라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존재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는 단어인 셈입니다. 아마도 이 사명이 가장 중요시되는 직업은 ...

 
2018-02-25 684
142

#150. 부끄럽지 않은 등재 file

어느 날 갑자기 영문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Congratulations on Your Acceptance into Who's Who in the World'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마르퀴즈 후즈 후’라는 곳인데, 나를 2018년도 인명사전에 등재하고자 노미네이트 했고 인명사전에 올리기 전...

 
2018-02-14 529
141

#149. 나와 당신의 슈퍼 히어로 file

‘2030 청년세대 15만 명이 직접 선정한 영웅들이 직접 멘토링을 한다’는 내용의 종편방송 커머셜을 호기심 기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쟁쟁한 인물(‘영웅’들이라 해야겠습니다만)들이 출연하는 포럼에서 그들의 성공스토리를 공유하고 피와 살이 되는...

 
2018-02-14 453
140

#148.'그뤠잇!' or '스튜핏!' file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세상이다. 대통령뿐인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자신을 따르는 계층을 지배하는 존재는 다양하다. 아이들에게 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가 있다. 요즘 초통령(초등학생 대통령)은 ‘워너원’,...

 
2018-02-14 453
139

#147. ‘기복신앙’ 극복법 file

‘서울투어’급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고 목이 꺾일 듯 졸며 다닌 여정을 한 지 수개월, 뒤늦게 30분이나 절약할 수 있는 버스 노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주 이용하는 유형의 버스가 아니어서 정말 몰랐다. 괜히 억울하기까지 했던 것은 필요 이상으로...

 
2018-02-03 587
138

#146. 하나님의 나라 file

“2018년은 별로예요. 왜냐하면 18이 있잖아요.” 새 해 첫 어린이예배에 참가한 꼬마가 선생님에게 한 말이었다. 지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럴 수 있겠다. 다른 사람들도 올 한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들 같은 핑계를 대겠구나. 나 역시 17이...

 
2018-01-30 551
137

#144. +1_ 홍명진 file

1을 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단순히 수 계산에서의 1을 더하는 것 말고도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려면 24시간이 필요하고, 1월에서 2월로 넘어가려면 3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오는데도 12...

 
2018-01-24 523
136

#143. 구속사 책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닦아보자 _ 정유진 file

“올해는 반드시 구속사 책을 완독 할거야!” 년 초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을 했었다. 승리의 해 2017년을 보람차게 살아보려는 새해 계획 중 하나인 것이다. 아무래도 혼자 끝까지 끌고 나가기에는 뒷심이 부족할 거 같아서 교구 전체에 선...

 
2017-12-26 579
135

#142. 워라밸(Work & Life Balance) _ 박승현 file

해마다 이맘 때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거나 다가올 새해를 내다보는 다양한 단어가 등장한다. 올 해 ‘욜로(YOLO, You Only Life Once)’가 미디어에 꾸준히 등장했다면, 2018년 트렌드 전망에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

 
2017-12-26 492
134

#141. 12월에 시작하기 좋은 책읽기 _ 이원재 file

학교 현장은 한 학년을 마무리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2차 지필평가(예전에는 기말고사라고 했음)가 곧 시작하고 방학 전까지 각종 행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3 수험생은 포항 ...

 
2017-12-26 419
133

#140. 신앙전수의 길 _ 김신웅 file

2017년 11월 17일, 평소와 같이 아침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 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친할머니의 임종 소식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슬픔이 찾아오면서 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20대 초반...

 
2017-12-26 454
132

#139. This is my Father's Church _ 송인호 file

This is my Father’s Church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교회. 구속사 운동의 교회 Oh, let me ne’er forget 절대로 잊지 않으렵니다. 아버지께서 이 교회를 위해 흘리신 피와 눈물과 땀을 That though the wrong seems oft so strong, ...

 
2017-12-01 495
131

#138. 말씀의 온도 _ 정유진 file

요즘 차고 뜨거운 정도를 나타내는 ‘온도’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언어의 온도, 사랑의 온도, 행동의 온도, 이별의 온도, 리더의 온도 등. ’잘 지내니?’라는 작은 안부 인사가 영하 10도라면, 이것을 안부로 들어야하는지, 감정적 공격으로 혹...

 
2017-12-01 520
130

#136. 내가 여기에 서있는 이유 _ 하찬영 file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우연히 저는 ‘위플래시’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라 틀어놓고 있다가 결국에는 끝까지 보고야 말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아무래도 이제는 그...

 
2017-12-01 386
129

#135. 담백한 마무리 _ 김진영 file

차가운 바람 속에서 2017년도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점차 가까워짐을 인지하게 된다.‘올해는 정말 다르다’라는 결심과 승리의 수 ‘17’이라는 설렘을 갖고 세웠던 2017년도 신년 목표를 펼쳐 보니 새삼스럽게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간...

 
2017-10-30 647
128

#134.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_ 강명선 file

우리 아빠는 참 복도 많다. 아내를 잘 만났다. 별로 잘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아빠를 끔찍이도 챙긴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은데 환갑이 지난 지금도 아빠 곁에 있다. 옆에 꼭 붙어있다. 7남...

 
2017-10-27 519
127

#133. 나를 살게 하는 것 _ 박남선 file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눈을 뜬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밀물처럼 우리의 뇌리와 마음에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는 것,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을 감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바로 근심과 걱정이다. 먼지보다 자그마한...

 
2017-10-20 622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Abraham’s Message]

[구속사소식]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