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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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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1-5

(제25-34호)

바른 신앙

욥 1:1-5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신앙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믿는 성격이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신앙의 중심을 지식에 두면, 합리주의의 신앙이 됩니다. 또한, 신앙의 중심을 감정에 둔다면,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면 욥은 신앙의 바탕을 어디에 두었을까요? 바른 신앙에 두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욥의 바른 신앙이란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욥은 신앙의 중심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욥 1:5을 볼 때, “그 잔칫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아들들이 ‘마음으로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싶어 염려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이 아니면, 하나님께 계속 죄를 짓습니다. 욥은 아들들이 하나님을 외형적으로 섬기는 따위의 신앙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의 신앙에 대해서 마 15:8을 볼 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음에 없는 신앙은 가짜이며, 전부 다 속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신앙은 눈치 보는 신앙이며, 양심대로 살지 않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행 23:1을 볼 때,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의 중심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롬 1:9을 볼 때,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에 없는 예배 드리고 마음에 없는 봉사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입니다.


2. 욥은 신앙의 좌표를 ‘불변’에 두었습니다.

욥은 신앙의 변덕쟁이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변치 않는 모습으로 살려고 하였습니다, 욥 1:5을 볼 때,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욥은 아들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봐 번제를 드렸는데, 욥의 마음이 ‘항상 이러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욥은 스스로 하나님을 마음에서부터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들도 배반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욥의 불변하는 마음의 결론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욥 1:22을 볼 때,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앙이 완성되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푯대를 항상 좇아가는 신앙이었습니다(빌 3:12-14). 이러한 사도 바울의 신앙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변’의 신앙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앙을 ‘불변’에 두지 않는 것은 변덕쟁이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중심을 ‘불변’에 두면, 다니엘처럼 어떤 어려운 신앙생활의 여건 속에서도 항상 ‘불변’에 마음을 갖게 됩니다. 단 6:16을 볼 때,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3. 욥은 신앙을 ‘적신(赤身)’에 두었습니다.

욥 1:21을 볼 때,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인생은 이 땅에 벌거숭이로 왔다가 벌거숭이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아무리 부자로 살았어도, 죽을 때는 속옷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신앙의 중심을 ‘적신’에 둔다면, 아무리 작은 일을 해도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왔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작은 일에 충성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적신’ 신앙에 두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불만이 없고, 찬송이 있을 따름입니다. 합 3:17-18을 볼 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당시에 무화과나무 열매는 식량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어려웠는지, 당시의 식량의 필수품과 같았던 무화과나무 열매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적신’ 신앙에 두고 감사 생활을 하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살길이 있으며, 영적인 부자로 살아갑니다.


결론. 욥의 신앙은 ‘부정(否定)’이 아니라 ‘긍정(肯定)’에 두었습니다.

욥이 신앙을 ‘부정’이 아니라 ‘긍정’에 두었다는 것은 욥 1:22을 볼 때,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욥은 10남매를 모두 잃어버렸으며(욥 1:2, 18-19), 온몸에 악창이 났습니다(욥 2:7). 이때, 욥의 아내는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욥 2:10을 볼 때,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욥의 신앙은 너무나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악조건에도 입술로 죄짓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언제나 실수가 있고, 악의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절대로 실수나 악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정적인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생활 가운데 증명하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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