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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헵시바의 장안산 최초 등반기

 

 

버스는 헤드라이트가 바닥에 드리운 두 개의 부채꼴 빛만을 의지한 채 흑암 속을 내달렸다. 우리는 며칠 후에 있을 대선과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자 장안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도 어플을 켜보니, 어느새 대한민국의 남쪽 부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얇은 바람막이를 뚫는 쌀쌀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우리는 또래별로 줄을 지어 질서정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뒤로 길게 늘어진 줄은 마치 출애굽 장면을 연상케 했다.

장안산을 향하기 전, 우리는 나라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래서 간간이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와 곧 도래할 아침을 알리는 청아한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우리는 묵묵히 걸었다.

쉼 없이 올랐지만 정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계단에 반쯤 넋이 나갈 즈음, 탁 트인 하늘 아래 비탈진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배경으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 모두가 기진맥진해 볼멘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 우리 앞에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마지막 코스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지쳐서 더는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아 밧줄에 기대 서 있자, 뒤따르던 헵시바 선배들이 “힘내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참으로 든든한 순간이었다. 단지 산을 함께 오른다는 것을 넘어, 천국 본향과 구속사의 성취라는 공통 목표를 바라보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헵시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상에서는 미스바 망사 조끼를 걸친 성도님들이 웃으며 우리를 반기셨다. 다년간 산상기도회를 다니며 다져진 체력은 젊음도 가뿐히 이기는구나 생각했다. 무자비하게 부는 바람에 땀은 금세 차갑게 식었고, 이내 견디기 힘든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덜덜 떨며 우리는 성경을 펴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목사님께서 확성기를 통해 말씀을 전해 주셨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순간을 앞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말씀을 듣고 우리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회를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준비해 온 귀한 오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기도처로 향하기 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기운을 되찾은 우리는 두 또래씩 조를 이루어 기도처로 이동했다. 정상을 오르는 길보다 기도처로 향하는 길이 훨씬 험난했다. 앞서가던 친구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으나 다행히 금세 털고 다시 나아갔다. 길은 위험천만했고, ‘장애물 코스도 이보단 쉽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족히 40분은 걸린 듯했다. 기도처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협소했다. 살면서 본 적 없는 크기의 파리들이 날아다녔고, 언제 추웠냐는 듯 옷은 접착제를 바른 것 처럼 살갗에 들러붙었다. ‘얼마나 간절해야 이런 곳에서 47일 동안이나 기도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은혜 가운데 우리 모두는 무사히 하산했고, 각자 처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열렬히 기도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역사는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산의 내리막을 걷다가도 나아가다 보면 결국 오르막이 나타나고 정상에 이른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내년에는 믿음과 체력을 더 길러 지리산에도 도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글_윤루디아 헵시바, 사진_이호민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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