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존귀에 처하나
2006.09.03
롬8:12-25,시49:12-20
오늘 본문 시49:20에서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은 우주 만물의 주인공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창1:26-30). 그런데, 만물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존귀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심지어는 헛되이 피조물을 경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는 것은 곧 인간의 본래 위치를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회복사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의 존귀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우주 만물의 주인 된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우주 만물은 질서가 정연하게 지어졌습니다(창1:1-31, 고전14:33,40). 하나님께서는 먼저 공간을 짓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지어진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만물을 주시면서 그것을 다스리고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무대라고 할 때, 하나님은 총감독이고 사람은 주연 배우입니다. 그리고 만물들은 엑스트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이 피조물의 노예가 되어,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가장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롬8:19-20). 그런데 도리어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들어 복 달라고 빌 뿐 아니라 집 안에 짐승을 기르면서 온 정성을 들이고, 소망 없는 물질에 의지해서 그것이 생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롬1:21-23)?
성경은 탐심, 욕심이 곧 우상숭배이며,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골3:5, 딤전6:10). 돈은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 창고를 짓고 가득가득 채워 두었지만 하나님께는 너무나도 인색했던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밤에 내 영혼으로 도로 찾아 오겠다”고 말씀하십니다(눅12:16-21).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 재물은 뜬구름일 뿐인데 어째서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려 하느냐고 하셨습니다(호8:7). 그리고 세금 포탈하지 말고 이중장부 쓰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낼 거 다 내고 떼어먹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부어 주시면 되는데, 믿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쌓아 둔 재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까지 모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벌어 쌓아 두어도 누리지 못하는 재물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전6:1-2). 안 먹고 안 입고 너무 아끼다가 죽은 다음에 나무로 된 관 하나에 들어가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의 연수가 많아지면서, 남보다 잘 믿고 열심히 한다고 우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래, 너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하자. 그러면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느냐?” 라고 물어 보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하는 동요의 가사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고전15:49 말씀처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 사단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에 서지 못하고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 거짓말쟁이입니다(요8:44).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마귀의 계략에 속아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요일2:15-17). 사단은 인간을 죄 짓게 하고 마음대로 끌고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인간을 찌르고 고발합니다. 죄의 결말은 죽음인 것입니다.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모든 가치관을 흔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찌그러뜨리고 구멍을 내어 쓸모없게 만듭니다. 가치관이 흔들리니,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왜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이는 도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고백했습니다(롬7:11, 1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탄식하면서, “선한 마음이 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않는 죄가 나와서 전부 일을 그르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해결을 받기 위해 금식기도하고 울면서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러나 곧 이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신다”고 말씀합니다(롬8:1-2).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엡4:24).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병든 자에게 “낫고자 원하느냐?” 물으시고, “주여, 낫고자 원합니다!” 하면 “안심하라! 내 말로 네 죄 사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죄를 사해 주시는 순간, 죄가 붙어있지 못하고 육신도 강건하게 된 것입니다(요15:3). 인간은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만인간을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순간, 그 세 가지 죄를 단번에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성령으로 깨달아야 될 텐데, 인간의 생각으로 ‘과연 단번에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산속에 들어가 고행을 한다고 해서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종교는 무덤이 있지만, 기독교는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어,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소망인 것입니다(롬8:24-25).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시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딤전6:11-12).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갈5:16,22-25).
로마의 격언 가운데 “신앙이 없는 사람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망아지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남을 해롭게 합니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인간들로 인해 죄악으로 얼룩진 이 세상을 보세요, 참으로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본래 존귀한 인간으로 회복되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며 평생 마음을 쏟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서 권면을 하시면 감사히 여기고 받아들여야 될 텐데 “내 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 일이나 잘 해” 이런 소리나 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사1:2-3). 사람이 듣지 않으니까 천지를 불러서 증인을 삼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떠난 자식을 기다리듯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눅15장). 아버지 집에 있어야만 아버지의 형상으로 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그 나라 갈 때까지, 죄가 침투하여 마음에 거하지 못하도록 항상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고(딤전6:17),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를 쌓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당대와 자식들을 통해서 열매를 따먹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복 있는 자가 되어서(시2:12), 신앙의 터전 위에 집을 지어 그 안에 들어가 영광을 누리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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