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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6.10.14

본문

눅10:25-37

본문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조용히 찾아와서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보통 인간은 생명을 보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투자를 하는데, 이 율법사는 불멸의 생명을 위해서 어떤 투자가 필요하느냐고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방 대답을 주시지 않고 율법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모세의 계명을 아주 재치 있게 한마디로 요약해서 답변을 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고 모세가 가르치지 않았습니까?"(눅10:20)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의 대답에 전적으로 동의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법칙은 투자 없는 소득은 없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업도 투자해야 이윤을 남길 수 있고, 교육도 투자해야 학력을 얻습니다. 시간과 노동력과 두뇌의 투자가 없이 성공한 자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인생이란 투자와 소득 사이를 왕래하는 역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영생을 위해 무엇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교회와 예수를 위해 얼마만큼 만족할 만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영의 세계에도 투자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믿은 것만큼, 심은 것만큼, 행한 것만큼의 결실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투자를 하되 어떠한 투자가 하나님 앞에 인정받게 되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 마음을 다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투자는 전심(全心)의 투자여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신앙을 '그리스도를 향한 확고한 응시(凝視)'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온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여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바늘 끝 하나 놓으려야 놓을 수 없는 빈틈없는 전심만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투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전심의 투자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교회의 기초가 되는 신앙을 고백했을 때, 그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예수님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목표를 변경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사람의 생각을 개입시킴으로써 전심의 투자를 하지 않은 결국이었습니다(마16:23).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한 자신을 한탄하며, 깨닫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나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고 했던 것입니다(벧전2:21).
마16:24의 "아무든지 나를 다라 오려거든"이라는 말씀을 원어 성경에 근거해서 엄밀히 번역하면 "누구든지 나의 뒤로 따라오려거든"이 됩니다. 매 맞아 피로 멍든 주님의 어깨, 갈기갈기 찢긴 육신을 통해 보이신 전심의 투자를 보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나의 명예, 나의 계획, 나의 이익, 나의 생각을 모두 다 벗어놓고,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어깨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따를 때만이 우리는 예수님의 전심의 투자를 이해하고 같은 투자를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그런 아픔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사역 당시처럼 자기 명예나 지위에 불이익이 생기면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지도 않고 변호도 안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생활로써 충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몇 대 째 예수 믿고,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과 구원은 각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분 따라 왔다갔다하는 신앙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빈틈없이 믿으면 유쾌함이 보장됩니다(행3:19). 전심의 투자가 있어야만 주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목숨을 다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투자는 전생(全生)의 투자여야 합니다. 하나님게서 맡기신 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과 직책은 언제나 우리 각자의 생명 위에 자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생의 투자입니다. 바울은 행20:24에서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위대한 고백을 통해 이런 전생의 투자를 우리에게 거울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신앙이 이교 사회, 그것도 심한 박해 속에서 어쩌면 그토록 빨리 성장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에 대해, 당시 로마의 유명한 법률학자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려봅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아 얼마 안 가서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평화스러운 얼굴로 희열이 넘치는 기독교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고도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죽은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태양열보다 더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터툴리안은 예수 앞에 굴복하여 회개하고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앞서 간 선배 목사님들, 성도들 가운데도 역시 나라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자기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 끝까지 복음을 증거한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한 투자는 바로 자기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가져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눅6:38).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외쳤습니다(고전15:31). 죽음으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순교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목숨을 다하는 투자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으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한다" 하는 요8:51 말씀을 꼭 믿으시고 전 생애를 투자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힘을 다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투자는 전력(全力)의 투자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힘을 다 투자해야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됩니다. 야구 경기에서 '전력투구'(全力投球)라는 말을 씁니다. 공을 하나 던져도 대강 대강이 아니라 힘과 정성을 다하는 투수의 정신 자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음악, 문학, 과학, 사업 등은 물론, 작은 직장에서의 일도 성공의 뒤에는 반드시 전력을 다한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인다고 '이만하면 됐지' 하는 사람은 얼마 안 가서 망하는 것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그건 안돼" 하면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을 다한다는 것은 몸을 직접 움직이는 투자를 의미합니다. 힘을 다해, 몸을 직접 움직여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 투자할 때 바로 그것이 헌신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2:14). 예수님의 일생은 봉사의 몸이라고 말씀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는 말로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을 십자가 위에 산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증거도, 신앙의 증거도 그 행위에 있습니다. 나의 손이 하나님의 손이 되고 나의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이 되어 전력을 다할 때, 우리는 진실로 주 앞에 산 제물로 자신을 바치는 거룩한 투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롬12:1).

하나님 앞에서는 양심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바빠서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 별로 투자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한다면, 소득 또한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돈벌이에 먼저 헌신하고 남은 시간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한 투자는 돈이 한 것이지 신앙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전심, 전생, 전력을 다한 투자가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 생활에 0점입니다. 자기 멋대로 믿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전폭적인 투자를 했던 사도 바울을 기억해 봅시다. 그는 "내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고전15:10). 신앙생활 시작한 이후로 주앞에 인도한 자가 얼마나 됩니까? 전도에 전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대상자가 설사 무슨 이익을 얻을까 해서 교회에 따라왔다해도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안 믿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는 마음으로 바꾸주실 줄 믿습니다. 그럴 때, "한 알의 밀이 땅에 묻혀 수백 배의 결실을 맺는 축복이 이어진다"고 요12:24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합시다. 생명을 다합시다. 힘을 다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원하는 소원대로 형통의 축복을 안겨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원천의 복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결심을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생활에 적용하여 큰 축복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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