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에 선 십자가
2007.03.31
요19:18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두 번도 아니고 단 한 번 불순종함으로 전 인류에 사망을 가져왔습니다(롬5:12).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조건 없이 인간을 이처럼 사랑하셔서(요3:16) 우리를 멸망의 자리에서 끌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밤낮 쉬지 않고 부지런히 생명의 음성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보내주셨지만, 이마가 금강석 같이 굳어지고 심령들이 돌같이 굳어져서(렘4:4)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긍휼의 음성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만인간의 구주가 되시는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데, 그분을 말씀 자체, 영원한 왕,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할 때, 어떤 방법으로 그분을 죽이게 되는지 성경에는 이미 예언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예수께서 십자가 나무에 달려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갈3:13, 행5:30). 마귀는 힘써 자기 일을 한 줄 알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고전15:3).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실 때, 좌우편에 강도가 달리고 예수님은 중앙에 달리셨습니다. 세상에 뜻 없는 소리가 없다고 할 때(고전14:10), 예수님께서 가운데 달리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그 뜻을 살펴보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신앙으로 성숙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중앙에 선 십자가의 의미
예수님께서 중앙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성경에 나타난 '중앙'의 뜻을 살펴봅니다(요5:39).
창세기에서 벌써, 예수님이 두 십자가 사이, 즉 가운데 달릴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3:8 말씀을 보면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잃어버린 첫 아담을 찾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께서 나무 사이에, 즉 중앙에 오셔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담이 나무 사이에 숨었으니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에 죄 지은 인간이 숨어 있는 나무 사이, 바로 그 장소까지 친히 찾아오셔서 죄를 처분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셔서 그 마음 중심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2. 가운데로 찾아오시는 예수님
만인간이 죄악에 빠짐으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죄악 세상에 오시는 것이지, 죄악 바깥에서 "나와라 나와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악 가운데 친히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슬픔을 당한 인간들 가운데 오셔서 죄인들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변호하시며 옹호하시고,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감당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 중심에 찾아오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슬픔과 괴로움과 죽음 밖에 없는 인간들의 겉에서 돌지 않고 그 가운데 뚫고 들어오셔서 그 모든 절망을 담당하시는 주님! 슬픔과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내 자신, 내 가정, 내 교회, 내 국가 민족에게 찾아오시되 가운데에 뚫고 오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성경을 봐야 그 뜻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좌우편 강도, 아니 그 강도들과 같은 오늘 우리들!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한 죄인'에게 '죄와 상관없는' 영원한 창조주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모조건의 사랑으로 죄인들 가운데 뚫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심령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무지한 인간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 형틀을 만들어 놓고 실물로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까?
'가운데' 속에 숨어 있는 신령한 영적 세계! 주님 당시 서기관, 유사, 제사장, 장로, 바리새인 등 믿는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가운데'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통 가운데, 중앙에 뚫고 오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살 길이 있다." 하시며 믿음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예수님께서 지금 내 중심에, 내 가운데 뚫고 오시는구나." 할 때에 해결될 것입니다.
3. 중앙을 찾는 신앙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중앙이 없는 죄악된 인간이 중앙을 찾아 가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요8:3을 볼 때,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를 가운데 세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자 모두 돌을 내려놓고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물으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중앙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살기등등하여 모여들었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돌을 내려놓고 가 버린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은 '가운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만이 '가운데'가 있는 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모든 것이 중앙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우편에서 이러쿵 좌편에서 저러쿵 해 봐야 인간의 무익한 말일 뿐입니다. 좌편강도는 십자가 위에 달린 상황에서조차도 주님을 비난했고, 우편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서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청을 드렸지만, 스스로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오직 가운데 계신 예수님만이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눅23:43).
예수님께서는 중앙에서 결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심이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말씀을 중앙에 모시고 결정하고 행하는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중앙에 선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요(롬5:8), 믿는 자들을 위한 의의 도장입니다. 중앙은 헌신하며 기도 드리는 자에게 능력으로 함께하시는 곳이며,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영원한 말씀이 평강으로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이 중앙을 오늘도 우리에게 안겨 주시려고 애쓰시는 하나님 앞에서 "주여, 나는 어디에 서리이까?" 묻는 성도가 됩시다. 중앙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끝까지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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