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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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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9:9-12, 마 21:1-11, 요 12:12-19

제 20-14호
나귀 타신 예수

슥 9:9-12, 마 21:1-11, 요 12:12-19


  사람의 죄는 세상의 아무리 좋은 비누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고, 그 뼈를 밀가루같이 갈아서 공중에 날린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처럼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이 땅에 오셨으며, 고난주간 첫째 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로마 장군들처럼 군마(軍馬)가 아니라,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영의 눈을 떠서 이러한 예수님을 살펴볼 때 그분이 어깨에 걸머지신 나의 죄악의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으며,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표적의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1. 가장 천하고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상징입니다. 


  고난주간 첫째 날, 예수님께서 주일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온 성이 소동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때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를 ‘나사렛 사람’, ‘목수의 아들’로 멸시하여 불렀음을 볼 수 있습니다(요 1:46, 6:42, 7:52). 이 말은 예수에 대하여 멸시하고 경멸하는 말입니다. 그는 메시아나 구원자가 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참된 겸손과 낮아짐의 본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당시 로마 병정들처럼 군마(軍馬)가 아니라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심으로써 참된 겸손과 낮아짐의 원리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일찍이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나 스바냐 선지자도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슥 9:9, 습 3:14-16). 여기에서 예수님은 공의로우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고, 세상 욕심은 조금도 없으실 뿐 아니라 마음이 텅텅 비어 있는 분으로, 온유와 겸손과 사랑이 충만하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습니까?(빌 2:6-8)  

  말(馬)은 강한 힘의 상징입니다. 권력과 군사력을 상징합니다(신 17:16, 왕상 10:28). 그러나 나귀는 군사용이 아닙니다. 성경을 볼 때 밭을 가는 데, 즉 노동에 소용되던 것이 나귀입니다(신 22:10). 그래서 나귀는 겸손한 미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는 비천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써 이 땅에 군림하기 위해,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김과 겸손의 본을 행함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고후 8:9, 6:10).


2.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임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성 사람들은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를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만 알고 있을 때, 사도 요한은 그분에 대해 평화의 왕으로, 은혜의 왕으로 증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 12:12-16 말씀을 볼 때, 사도 요한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증거함으로써 나귀 타고 오시는 그분은 결코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할 초라한 존재가 아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평화의 왕이 되셨습니까? 이는 낮아짐과 섬김을 통해 참된 평화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당시 예수를 환호하며 추종하던 무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로마의 군사들을 무찌르고 새로운 정권을 세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의 방법으로 평화가 옴을 말씀하셨습니다. 

  서로를 섬기고,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자기를 완전히 비우라! 자신을 낮추는 방법으로써만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며 사랑의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써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지만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낮아질 때로 낮아지신 예수님! 남들은 ‘목수의 아들’이다, ‘나사렛 사람’이다 경멸하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나약하고 한심하고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기사와 이적을 통해 로마를 평정하고 왕으로 당당하게 예루살렘에 앉아 통치할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망 자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2-45)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낮아짐과 겸손의 본을 보이심으로써 인류에게 참된 평화의 길을 열어 주시고, 평화의 왕이 되셨던 것입니다.


결 론 : 이사야 선지자는 사 2:4, 11:6-9 말씀을 볼 때, 칼과 창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평화의 세상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사 2:4)

  이러한 평화의 세계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겸손과 낮아짐의 모범을 보이셨던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흉악한 짐승들, 잔인한 무기들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가장 먼저 성전을 청결하셨던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가운데 우리 마음의 모든 흉포와 죄악을 깨끗하게 비우고 청결케 함으로, 나귀 타고 오신 주님을 온전히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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