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8
눅9:18-27
여러분은 눅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둘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피하고 둘 다 갖기를 원하여 “죽기 전에는 부자가 되고 싶고, 죽은 뒤에는 나사로가 되고 싶다”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1. 첫 번째 요구 : “만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라”
본문 23절을 헬라어로 보면 ‘만일’(헬라어 ‘에이’)이라는 조건접속사를 써서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24-25절에도 역시 ‘~ 때문에, 그러므로’ 등을 뜻하는 헬라어 인과접속사 ‘가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23절에서 “만일 나를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24-25절에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 즉 십자가를 지고 좇아와야 하는 이유를 점점 그 강도를 높여 설명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부분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첫 번째 수난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마16:13-23, 막8:27-33). 그런데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가운데 누가복음에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십자가를 만류하였을 때 예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베드로를 책망하시는 장면이 생략되었습니다. 이는 누가가 첫 번째 수난예고를 기록하고 곧바로 ‘제자의 도’에 관한 가르침을 강조하여 기록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23절에서 “나를 믿으려면, 나를 존경한다면, 나를 인정한다면...” 등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구체적인 행동’을 전제로 하는 동사를 네 번(따라오다, 좇다, 지다, 부인하다)이나 강조했습니다. ‘따라오다’, ‘좇다’는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매우 결연한 모습으로 따르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좇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속해서 확고부동하게 그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막9:38, 마4:22, 19:27).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원어에는 ‘거절하라, 포기하라’는 뜻으로,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제자가 되는 첫 번째 관문은 단 한 번에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매일매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영적 싸움을 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결단력이 없는 자는 일평생 성전 마당만 밟고 왔다갔다 할 뿐, 마당 너머 성전 안의 생명의 능력을 절대 맛볼 수 없습니다(사1:11-12). 마25:42-45에서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를 공양(헬라어 디아코네오, 필요를 채우다)치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후 심판의 비유로, 예수의 필요, 예수의 요구를 채우지 않는 것이 심판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필요와 요구를 채우는 사람은 곧 어려운 짐, 힘든 십자가를 지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2. 두 번째 요구 : “만일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경우, 선택이 더욱 어렵습니다. 물건의 매매행위는 주고받는 것이 분명하지만, 내 생명을 내버린다면 이는 돌아올 보상을 계산해 놓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 것만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이 얼마나 어렵고 모험적인 신앙을 요구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16-22, 막10:17-22, 눅18:18-23). 그가 이 말씀을 선택하면 그는 자신의 소유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원리는 ‘잃으면 구원을 받는다’, ‘버리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너희 생명을 버리면” 이러한 표현은 옛날 왕을 위하여 생명과 충성을 바치는 군인의 충정에서 연상되었습니다. 회사나 사업, 국가 등 우리의 충성을 요구하는 곳은 많으나, 그러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충성은 ‘오직 예수’께 대한 충성뿐인 것입니다. 과학자 뉴턴은 인생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종류가 인생을 도피하는 안일주의의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눈치를 슬슬 보면서 힘든 일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요나같이 안정을 추구하며 쉽고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또한 건강과 경제적 안전을 도모하느라, 교회는 어떻게 되든 상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부모나 처자식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면 주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0:37). 두 번째 종류는 달려가는 말의 목에 매달리려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열심히는 살지만 그저 끌려가고 있을 뿐이므로 그에게는 고상한 목적과 목표가 없습니다. 세 번째 종류의 사람은 우주의 창조자에게 자기 인생을 던지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오직 충성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3. 세 번째 요구 :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예수의 ‘만일’이라는 강력한 선택의 요구는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유익이 없다’(25절)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기 자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상실’은 곧 허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중한 자기 생명을 보존하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철저히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는 것으로만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자기를 빼앗긴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나의 혼을 빼앗는 것이 많다는 의미로, 이처럼 우리는 가끔씩 사단의 흥정에 넘어가서 자신을 너무 쉽게 매도하곤 합니다. 성경의 기본적 인간관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목적을 받은 자들로,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빼앗기지 않도록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해야 합니다(26절).
결론 : 우리가 평생 교회를 위해서 아무리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한다고 해도 주님의 십자가 피에 비하면 그것은 작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이 시간에 우리에게 세 번씩이나 ‘만일’을 묻고 계십니다. 하늘땅보다, 우주 만물보다 우리가 가장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각자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기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힘쓰는 성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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