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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범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때’(히브리어 ‘에트’)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고, ‘기한’(기회, 히브리어 ‘제만’)은 인간이 ‘때’를 붙잡아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에 의지해 살면서 만드는 것입니다.

 

1. ‘때’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고, ‘기한(기회)’은 인간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6:1-2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면서, 약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사49:8)을 인용하여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때를 놓치면 평생 받지 못해, 후회하게 될 것에 대한 경계입니다. 은혜 주실 때 받아서 그것에 의지한 기도에는 응답해주시지만, 은혜 주실 때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외면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일생동안 ‘때’를 주기 위해 ‘기회’를 주시는데, 그것을 놓친 사람은 “내가 바보같이 왜 그런 기회를 놓쳤을까” 하면서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기회’는 한자로 ‘기계 기(機), 모을 회(會)’, 영어로는 ‘찬스(chance)’로, ‘어떤 일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알맞은 시기나 경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먼저 각자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하신 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인정해 주십니다(고후6:1).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면, 정하신 ‘때’를 위한 ‘기회’를 주실 때 절대 그 찬스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때’를 준비하셔서 인간에게 주면, 그 ‘때’를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게끔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기회’를 붙잡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사명입니다. ‘때’는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타나는 역사, 또한 그 안에서 전개되는 사건으로, 남은 알 수 없으며 오직 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각자 자신의 ‘때’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회’는 현재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의 시간으로 사건을 믿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 인간은 하나님의 ‘때’를 ‘기회’로 붙잡아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야 합니다. 

  ‘때’(에트)는 자연적 시간이나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한 법칙 안에서 인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한 역사의 한복판에 감춰진 현상이었다가 마침내 인간의 시각 안에 들어와 나타난 사건으로, 인간은 그것을 ‘기회’(제만)를 가지고 절대적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맛비 곧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내리리라” 약속하셨습니다(렘5:24, 겔34:26). ‘때’의 사전적 의미는 ‘시간의 어떤 점이나 부분, 그 당시, 어떤 경우’ 등이며, 성경에서는 첫 번째로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곧 천지창조 후 일곱째 날이 이를 때(창2:2),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때(출7:5),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오신 때(갈4:4), 가나 혼인집에서 포도주를 만드신 때(요2:4),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행1:7), 천 년이 하루 같은 주님의 때(벧후3:8, 시90:4), 심판의 때(벧전4:17), 세세토록 영원한 때(계11:15, 22:5) 등입니다. 두 번째는 ‘하루를 구분한 때’ 곧 새벽(수6:15), 저녁(창1:5), 아침(막1:35), 낮(느8:3), 밤중(출12:29) 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60:22에서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이라 하셨는데, 여기 ‘때’는 ‘무엇을 하기에 다시 없이 좋은 절호의 기회, 효과적인 때’로, 이 예언의 말씀과 은혜를 받고 깨달아 마음속에 끝까지 간직하면,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어떤 환란에도 요동치 않는 참신앙가가 됩니다. 신32:35에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라는 말씀은 때와 기회를 줬는데도 붙잡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이름을 제해 심판 때에 불 못에 던져 보수(報讎)하신다는 것입니다(계20:15). 그러나 ‘기회’(제만)라는 것은 인간이 마련하는 시간이요, 자기가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채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기회’(기한)를 뜻하는 히브리어 ‘제만’은 정해진 시간, 약속된 시간, 구체적이고 상세한 시간입니다. 정리하면, ‘때’는 질적 시간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기회’는 양적 시간으로 인간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때’를 말씀을 통해 깨닫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곧 ‘때’와 ‘기한(기회)’ 이 두 시간이 일치될 때 비로소 역사는 창조되고 문화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때’를 주셨는데도 이 ‘때’를 ‘기회’로 삼지 않으면 인간의 역사는 허사가 되며, 또한 하나님이 ‘때’를 주시지 않았는데 인간이 아무리 ‘기회’로 삼으려 노력을 해도 결국은 허사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각각 자기의 집에는 빠르면서도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며, 성전을 건축하라고 주신 ‘때’를 ‘기회’로 만들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다가 땅에 산물이 그치고 한재(旱災)가 임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학1:2, 9-11). 성전 건축은 뒷전에 두고 쓸데없이 세상 것에만 정을 붙이고 그것들을 ‘기회’로 삼고 있으니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은 ‘때’를 따라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외가 없었습니다(렘5:24). 요셉이 받은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이란 바로 이슬과 비, 생수의 복을 의미합니다(창49:25). 인간이 아무리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농사를 짓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때’가 맞게 이른 비와 늦은 비, 또 바람을 주시지 않으면 곡식이 결실하지 않습니다.

 

3. 우리가 믿으면 ‘기회’가 되지만, 믿지 못하면 ‘때’와 ‘기회’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사울 왕에게 쫓김을 당하며 약세에 있던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로, 엔게디 굴에서 다윗이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었는데, 그것조차도 마음이 찔려하였습니다(삼상24:1-7). 두 번째로, 십 황무지에서 다윗의 충신 아비새가 진 가운데 누워 자는 사울을 죽이려 할 때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는 말로 만류하였습니다(삼상26:2-12). 이처럼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때’가 아님을 알고 그 일을 포기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원수 갚는 것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응답을 받은 후로는 사울을 미워하지도, 죽이려고도 않고 대신 사울에게 자신을 쫓지 말 것을 호소했습니다(삼상24:9-15, 26:10, 18-24). 다윗이 자기 명예심에 도취된 자였다면 엔게디에서 사울을 죽여 더 빨리 왕위에 오르려 했겠지만, 그는 위대하고 현명한 지도자요 하나님을 두렵게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이었기에 역사의 흐름을 조급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울에게 10년을 쫓겨 다녀도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하면서 그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때’와 자기가 만든 ‘기회’가 일치될 때 새로운 역사가 탄생될 줄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며 기도하던 다윗은 마침내 왕이 되어 부강한 통일국가를 이뤘습니다. 이는 국력을 소모하며 다윗을 추격하던 중 블레셋의 침공을 당해 자신은 물론 세 아들이 한날에 죽는 비극을 당한 사울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열두 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은 하나님께서 왕위라는 좋은 ‘때’를 주셨으나, 그것을 좋은 ‘기회’로 삼지 못해 도리어 적의 손에 전사하는 나쁜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결론 : 성도 여러분,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고 모든 인간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때’는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므로 우리는 이 ‘때’를 은혜 받는 ‘기회’로 삼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의 대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때에 맞는 말’, ‘경우에 합당한 말’이 됨으로 모든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려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 죄 사함과 하늘의 기업을 얻는 역사가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잠15:23-24, 25:11, 행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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