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79
등록일

2020.09.07

본문

겔 28:20-24, 고후 12:1-10

제 20-36호
하나님 은혜의 찌르는 가시

겔 28:20-24, 고후 12:1-10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의 신비한 세계까지 체험할 정도로 은혜의 최고봉에 올랐던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라고 하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가졌던 환상과 계시의 자랑을 억누르시기 위하여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본문 고후 12:7에서는 이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밤낮으로 성도들을 참소하고 파괴하고 시험하는 자입니다. 성도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자신 속에 두셨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고통이요 아픔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의 교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모든 개인이나 국가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이나 환난을 가리켰고,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이 가졌던 경우처럼 ‘육체의 가시’를 가리켰습니다. 모든 사람은 가시가 없는 평안한 삶을 소망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인과 국가에게까지도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경우는,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주님을 부인했던 일을 기억하고 괴로웠던 가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순간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민 20:1-13). 

  엘리야 선지자에게도 연약한 가시가 있었습니다(왕상 19장). 더군다나 사무엘 선지자에게도 두 명의 자식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삼상 8:2-3 말씀을 볼 때, 요엘과 아비야 두 아들은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利)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창 15-16장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못했던 약점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는 하갈이라는 이방 여자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삭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가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개인뿐 아니라 어떤 조직 기관 안에도, 국가에도 가시를 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 33:55 말씀을 보면, “그 땅의 백성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면 그 남겨둔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신 국가적인 가시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인의 가시나 어떤 단체의 가시이든지, 당사자에게는 매우 괴로운 것입니다. 마음속의 고통도 어려운 것이지만, 육체의 가시도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가시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는,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이유를 깨닫고 그 뜻대로 합당한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시를 주시는 이유는 겸손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졌던 높은 학문과 많은 지식, 그리고 신비한 영적 체험이 그를 교만하게 할 수 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만을 꺾으시고자 육체의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였던 모세도 40년간이나 바로의 궁에서 애굽의 모든 지식에 통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족을 돕다가 죽이는 바람에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40년간 처가살이라고 하는 가시에 찔리면서 겸손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시를 주셔서 하나님의 종들을 겸손하게, 낮아지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 16:18), 인류가 최초로 지었던 죄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만의 문턱에서 믿음으로 이 가시를 택하여서 하나님 앞에 끝까지 온전하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두로 왕은 정치에 성공한 위대한 왕으로서 모든 길에 완전한 듯했지만, 그의 허물은 파괴와 멸망을 불러왔습니다(겔 28:1-24). 그의 교만이 스스로 그를 망하게 했습니다. 두로 왕의 오만과 허욕을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나아가, 두로 왕과 함께 일어서고 눕고 걸어가던 나라 ‘시돈’도 두로 왕을 모방하다가 패망하게 되는 무서운 심판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시를 주신 이유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고후 12:10 말씀을 볼 때,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시에 찔려 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도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형제들의 미움의 가시로 애굽에 종으로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가시에 찔리고, 마침내 옥에 갇히는 가시에 찔리게 됐지만, 이러한 가시들을 통해 요셉은 그의 신앙인격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동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요셉은 온갖 가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결 론 : 성도에게 가시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픔과 쓰라림을 줍니다. 

  사도 바울도 그 아픔과 쓰라림으로 세 번씩이나 가시를 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 가시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주님의 가시관을 생각할 때 우리의 작은 가시의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같이 그의 ‘곤고’를 기뻐하는 믿음이 가시를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고후 12:10, 8:13). 끝으로, 가시를 피하려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 가시를 정복하고, 가시로 자신을 성숙한 신앙의 인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가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진정으로 가시를 이길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679 공포의 밤은 지나가고 file 2022-04-18 378
678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 file 2022-04-12 365
67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file 2022-04-04 470
676 불 같은 시험은 나의 산 소망과 큰 기쁨이라 file 2022-03-28 455
675 호떡 한 개와 한 개의 우산이면 그만 file 2022-03-21 368
674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file 2022-03-14 812
673 가시나무 세상이지만 file 2022-03-07 460
672 2022년도에는 믿음으로 가능을 찾아 소망을 이루자 file 2022-02-28 359
671 바다가 갈라짐은 어찜이뇨? file 2022-02-21 508
670 마지막 때의 선한 청지기 file 2022-02-14 502
669 나의 나 된 신앙을 점검해 보는 시간 file 2022-02-08 476
668 우리는 어느 편에 속해 있느냐 file 2022-02-03 428
667 금년 한 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로 살아가자 file 2022-01-24 375
666 금년 한 해의 생애는 성경을 많이 읽고, 전도하는 한 해 file 2022-01-17 354
665 감사가 차고 넘치는 삶을 살자 file 2022-01-10 645
664 금년 한 해 새 일에 축복하신 하나님 file 2022-01-03 418
663 주인이 돌아와서 우리에게 셈을 하라 하시면 file 2021-12-27 444
662 인생, 그 겨울이 다가오는데 file 2021-12-20 485
661 인생은 가도 하나님은 여전히 file 2021-12-13 425
660 나의 나 된 신앙을 점검해 보는 시간 file 2021-12-06 464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Abraham’s Message]

[구속사소식]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