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개척교회가 되었든 대형교회가 되었든 교회마다 성경 구절을 기록한 현판이나 문패, 또는 걸개 형식의 현수막을 걸어놓고 아직도 회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것을 당부하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들어왔던 다양한 성경 구절 중 가장 많이 인용된 로고스가 아마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비단 교회의 홍보 문구 만이 아니라 기독교 대학교의 교훈으로도 줄곧 사용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진리를 알면 자유를 얻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이기에 이토록 광범위한 영역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인용되고 회자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과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되면 무엇이 ‘죄’이며 ‘사망’으로 가는 길인지 깨닫게 되고, 그 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를 얻게 된다는 말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참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간단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를 두뇌로만 깨닫는다면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엊그제 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했습니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유미정의 연주회였습니다. ‘주제와 변주곡’이라는 콘서트의 제목에 맞게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브람스 등의 다양한 변주곡을 훌륭하게 연주해냈습니다. 한 곡의 변주곡을 완성하는 데에도 숱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데 그 많은 변주곡을 음 하나 틀리지 않고 풀어내는 일은 장대를 버리고 최초로 외줄타기를 하는 ‘줕타기 고수’의 아슬아슬한 스릴과도 같이 보였습니다.
‘와 어쩌면 저렇게 연주를 잘할까?’
옆에서 같이 감상하던 관객들의 탄성과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유미정씨의 손가락은 자유로웠습니다. 그 어떤 부분에서도 테크닉 하나 막힘없이 술술 흘러갔습니다. 김영랑의 싯구처럼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 같았고,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적시는 물결’ 같았습니다. 호흡에 소리를 얹는 성악의 발성처럼 호흡을 따라 그의 가슴을 타고 내려온 음의 기운은 피아노로 간단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유미정 교수의 연주를 보면서 불현듯 성경 말씀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지만 연주가 중반쯤 접어 들었을 때 갑자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뇌리 속에 화살처럼 박혔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주자와 일면식도 없지만, 지금의 연주를 하기까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약(다음 음을 빠르게 치는 주법)과 글리산도(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급속한 음계에 의해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주법)를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 것이며, 동일한 힘으로 10여번 이상 연타해야 하는 주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수 없이 머리를 쥐어짜며 연습했을 것입니다. 기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음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죠.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간단한 것 같지만 아르페지오(화음의 구성음이 분산되어 배치되는 주법)를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서 또 얼마나 열심을 다했겠습니까? 아 생각만 해도 전율이 느껴오고, 땀이 솟습니다.
그러나 유미정 교수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고 자유롭게 음악을 연출해냈습니다. 만약 그가 피아노를 악보로만 알고, 실제로 피아노 연주를 할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음악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요? 이 음악을 진정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혹은 중간에 연주가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고, 쉬운 부분만 연주했다면 그때는 어땠을까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연주했겠죠.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는 이 엄청난 바리에이션(변주)을 완성하기 위해 어려운 부분, 힘든 부분도 끝내 완성했기에 이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2절’에 앞서 29절에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또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함이 따를 때 진정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요, 그제야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쉬울까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마귀가 유혹하는 물질과 미혹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의 어려운 부분을 피해 쉬운 길로만 간다면 아름다운 음악을 표현해 낼 수 없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을 저버린다면 결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중국 명대(明代) 중기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이 제창한 명제 중 지식과 행위에 관해 설명한 '지행합일'의 정신이 있습니다. 주자(朱子)나 육상산(陸象山) 등이 주장한 ‘선지후행(先知後行)’설에 대한 반대 개념이지만 ‘알면 행해야 한다’는 사상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에 비하면 미미한 고전 학자에 불과한 왕양명의 지행합일 명제는 실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하신 말씀임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표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쯤 알고 읊조린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피아니스트 유미정의 연주가 끝이 났습니다.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쇼팽의 이별, 그 이별을 연주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피아노 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자유로우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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