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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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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먹고사는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기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의 관심은 '배불리' 먹는 게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었다. 각종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음식 사진이 유난히 많다. 멋진 곳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이미 자랑거리가 된지 오래다. 유명한 연예인을 스타라고 부른다. 요즘은 잘 나가는 운동선수를 스타플레이어라고 하고 잘 나가는 요리사를 스타 셰프라 한다. 맛집을 소개하거나 요리 방법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요리사가 나와서 대결을 벌이기도 하고 정글에서 요리하고 숲 속에서 요리하고 바닷가에서 요리하는 TV 프로그램이 어느덧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필자도 먹는 거 정말 좋아한다. 지갑 속에 꿍쳐둔 비상금같이 가끔 들러서 맛을 음미하던 단골 식당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이 TV에 소개되고 두 시간을 줄을 서야 맛을 볼 수 있는 대박집으로 변한 이후 그 깊은 맛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움을 겪어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언제쯤 이 먹방의 쓰나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잘 먹고 있을까요?" '먹다'라는 단어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잘 먹는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음식을 먹다.
'음식이나 물 따위를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 국어사전의 정의다. 먹는다는 것은 들여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인풋(input) 즉 들어가는 게 있으면 아웃풋(output) 곧 나오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잘 먹으면 잘 배출해야 한다. 먹는 것으로 인해 탈이 나면 안 먹느니만 못하게 된다. 먹는 것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내보는 것까지 안전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자랑거리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화려한 먹는 행위에 이어지는 건강한 배출 행위까지 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먹는 건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다.
나이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먹어야만 하는 필수 input 요소이다. 나이를 먹으면 그에 따른 output 즉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 사람이 해마다 먹는 나이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정비례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숙한 아이나 철없는 어른을 대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먹는 만큼 나잇값을 해야 한다. 

마음을 먹다. 욕을 먹다. 
마음을 들여보내면 행동이 나온다. 선한 마음을 먹으면 선한 행동이, 악한 마음을 먹으면 악한 행동이 나온다. 악한 행동을 하면 연속동작으로 욕을 먹게 되어있다. 재미있는 건, 욕이라는 input이 똑같이 들어가도 어떤 이는 좋은 결과를 낳고 어떤 이는 그 행위가 악화된다는 것이다. 소는 물을 먹으면 우유를 만들고 뱀은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이 밖에도 우리말 '먹다'는 참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귀 먹다", "겁을 먹다", "뇌물을 먹다", "1등을 먹다", "한 골을 먹다", "일본이 조선을 먹다", "얼굴에 화장이 먹다", "사과에 벌레가 먹다", "내 차는 기름을 많이 먹는다", "노예처럼 부려먹다" 등등. 세상에는 먹을 게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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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대단히 값진 것을 먹어왔다. 그게 얼마나 영양가 높은 먹거리였는지 지난 1년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제 먹은 만큼 배출을 해야 할 터인데 무엇을 내어놓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니,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어떤 행동들을 output으로 내놓았는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이 자랑거리가 되려면 내가 하는 행동이 자랑스러워야 한다. 이제 당분간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일은 자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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