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5
등록일

2015.09.06

untitled.png

녀석을 발견한 것은 교회 에담 식당 앞 주차장 부근이었다. 감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굴러떨어져 있던 그 녀석. 그 작고 앙증맞은 녀석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발걸음을 멈췄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그 철없는 녀석이 아직은 깨끗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어쩌라고. 아... 어쩌라고.' 작은 탄식이 나온다. '어쩌다가 떨어진 거니. 아버지 곁에 딱 붙어 있었어야지.' 그 작고 매끈한 초록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직 나무에 바짝 붙어있는 다른 초록 꼬마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너희는 주먹 꽉 쥐고 붙어 있어야 해, 가을이 올 때까지.' 걱정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다시 떼었다. 아무리 안타까워도 마지막 잎새를 그려 준 화가처럼 떨어진 그 녀석을 다시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바짝 붙어있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다. 올여름을 잘 버텨야 한다. 나의 여름은 그렇게 작은 긴장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그리고 이어진 여주 하계 대성회 '황금종을 울려라' 성경퀴즈대회 출전. 구속사 시리즈가 출간된 이후 매번 황금종 대회에 출전했기에 나에게는 익숙한 준비기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모습은 왜 이렇게 낯선지. 스스로 신앙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바짝 붙어서 살아있는 성도가 되고 싶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그 녀석처럼 굴러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출전한 거였는데, 나는 구속사 시리즈 예상 문제지를 앞에 두고 '이런 지엽적인 문제는 안 나와. 이건 전에 나왔던 문제야. 아... 이것까지 다 까먹은 거야?'라며 혼자 분노했다가 투덜거렸다가 책을 덮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며 동네 카페를 전전했다. 당시 기도제목은 '산 자'로 그 자리에 서는 것이었다. 문제를 몇 번까지 맞추는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런데 대회 당일, 나는 3번 문제에서 떨어졌다. 이게 웬일인가. 답이 무드셀라와 에녹인데 나는 에녹을 빼먹은 채 당당하게 답안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너무도 빨리 대기석으로 옮겨졌다. 그곳은 부활의 때까지 남아있는, '잠들어있는 자들의 자리'였다. 그곳에서도 문제를 계속 풀었다. 이미 탈락했는데 문제를 왜 푸느냐고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래도 주변에는 나처럼 그 자리에서 같이 문제를 푸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곳이 고립된 곳임을 깨달았다. 이상했다. 바로 옆 무대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살아남은 선수들의 긴장감, 그리고 앞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흥겨움 속에서, 우리는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들어있는 자들'이었다. 대회 중간중간 문제풀이도 있고 축하공연도 있었기에, 패자부활전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점점 살고 싶어졌다. 드디어 패자부활전의 문제가 나왔다. 듣는 순간 답을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거긴 내가 결혼한 성전 이름인데. 부활을 향한 초조한 카운트다운 가운데 나는 역대열왕가를 되뇌었다. 그리고 겨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산자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살아있다는 거구나. 부활보다는 변화가 천 배 좋다. 에녹 문제에서 떨어진 이유가 있었다.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시 115:17)

여름은 뜨거워야 하고, 땀을 흘려야 하고, 익어야 한다. 초록이 붉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래야 살 수 있다. 땅에 떨어지면 구속사의 진행과 완성과 성취의 순간에 함께 기뻐할 수 없다.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올여름은 나에게 바짝 붙어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 떠나간다. 고마워 여름아. 안녕!


95c2b5acfa5637bf80981beefe30d17c_TaRLTXVhQGHJyIVu14fsWx8fFQl.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55

#62. 이순신 장군도 천국에 갔을까? _ 김진영 file

※본 글은 특정인에 대해 모욕 또는 명예훼손 할 목적이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2016년이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고, 어느덧 평강제일교회에는 전도의 달이 찾아왔다. 매년 찾아오는 전도의 달이지만, 올해는 교회적으로 많...

 
2016-05-15 1279
154

#163. 추가시간 6분까지 ‘전력 믿음!’ file

‘역시 끝까지 가봐야 아는구나!’ 입을 벌리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27일,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이 피파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격파했던 그 때 말이다. 전반전에 실점하지 않은 것도 대단히 큰 성과라 생각했다. 독일에 승리할 확률 5%, ...

 
2018-07-07 1250
153

#11. 동행(同行), 그 마지막 모퉁이를 돌며 _ 송현석 file

굳어져버린 발뒤꿈치의 살이 이제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상처 속 피가 굳어지니 이내 검게 썩은 듯한 갈라진 자국으로 변한다. 사뭇 놀랐으나, 검은 양말의 솜털이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을 알아챈 후 애써 위안덩이로 삼는다. 얼마 전까지 그래...

 
2015-04-25 1229
152

#164. 먹고 사는 문제 file

다행히 사오정(45세 정년)은 넘겼지만, 오륙도(56세에 현역이면 도둑놈) 고개는 무사히 넘어갈지 걱정되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다니고 있지만, 평범한 중소기업이라 더 그렇다. 정년보장 철밥통, 강성노조가 근로자편에서 투쟁하는 회사, 처우는 좋...

 
2018-07-21 1218
151

#166. 신앙의 피드백 file

필자가 회사에서 연구하며 개발하고 있는 반도체 회로는 위상고정루프(Phase-locked loop)라는 것인데, 이는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회로이다. 10년간 연구하다 보면 끝을 볼 법도 하겠지만, 이 주제...

 
2018-08-25 1213
150

#157. 갑(甲)질의 역사 file

“또 그랬네, 그거 집안 내력(DNA)인가 봐.” 한진그룹 세 자녀들의 갑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파장이 컸다. 최근 막내딸인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 중 대행사 직원에게 고성과 함께 물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8-04-28 1206
149

#162. '인내(忍耐)'를 가르칩시다. file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가정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채 학교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교사더러 인성교육을 기대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배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들이 넘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

 
2018-07-02 1180
148

#66.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의 의미 _ 김정규 file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개척교회가 되었든 대형교회가 되었든 교회마다 성경 구절을 기록한 현판이나 문패, 또는 걸개 형식의 현수막을 걸어놓고 아직도 회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2016-06-12 1101
147

#10. 분노 조절 장애 _ 지근욱 file

욱! 하는 성격 종종은 아니지만 아주 드물게(?) 나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와이프에게 핀잔을 듣는다. 특정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 마주하면 버럭 화를 낸다. ‘아차!’하지만, 이미 주변 상황은 불편해져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노하기를 더디 하라...

 
2015-04-18 1099
146

#155. 습관은 반복이다! 경건을 연습하라! file

‘아차! 밤늦게 군것질 안하기로 했었지...’ 결심한 것이 생각났을 때 나는 이미 초코파이 두 개에, 고구마 한 개, 하루 견과 3일치에다 사탕을 5개나 까먹고, 과자 봉지가 반 이상 줄고 있을 쯤 이었다. 시간은 밤 10시가 훨씬 넘어 11시가 다되어가고 있는데...

 
2018-04-02 1074
145

#30. 포기하면 편해 _ 김범열 file

"아저씨, 아직 멀었어요? 저 늦었는데 내비 찍고 가시죠?" "내가 이 동네 지리는 잘 안다니까. 내비 보다 내가 나아요!" 간혹 택시를 타 보면, 멀쩡하게만 잘 달려있는 내비게이션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 기사님들이 있습니다. 운전 경력이 오랜 택시 ...

 
2015-09-18 986
144

#77. 지리산 기도처를 다녀오며 _ 김태훈 file

“총무님, 도착하셨나요?” “예, 저는 좀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어디쯤 오셨어요?” “지금 두 정거장 정도 남았는데 혹시 시간 안에 도착 못하면 버스 못 떠나게 꽉 잡고 계세요” “네 걱정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천천히 오시라고는 ...

 
2016-09-05 901
143

#61. 어머니의 기도 _ 박남선 file

새벽 어스름이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게 저의 하루는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고백 소리를 들으며 시작됩니다. 따뜻한 아침상을 정성스레 차려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표현도 없이 식사를 마치고 무심히 자리에...

 
2016-05-08 866
142

#08. 인생 최후의 오디션 _ 원재웅 file

최근 화제에 오르고 있는 영화 ‘위플래쉬’는 천재 드러머를 갈망하는 학생 앤드류와, 그의 광기가 폭발할 때까지 몰아치는 폭군 플렛처 교수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올해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과 음향상, 편집상 등 무려 3개 부문을 석...

 
2015-03-28 823
141

#119. 거절 감정 _ 박남선 file

8개월 이상 준비한 프로젝트가 결국 상사로부터 최종 반려를 당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생겨난 실망감으로, 그와 유사한 프로젝트라면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짝사랑하던 이성 친구에게 고백을 했지만, 그 결과 이성 친구까지 잃어...

 
2017-07-05 815
140

#54. 막힌 담을 허물고 _ 홍봉준 file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방이 담으로 꽉 막힌, 교도소 담장과 감방 사이를 구분 짓는 벽들로 둘러싸인 것 같은 이 땅의 삶이란! 그것은 간단하게 ‘답답하다’, ‘갑갑하다’ 정도로 표현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알고 보면 엄청난 폭력이요 억압이다. 다...

 
2016-03-20 805
139

#06. 거짓말 그리고 봄 _ 강명선 file

겨울이 가는구나. 봄방학 말미에 그녀를 만나러 경복궁역을 향해 간다. 나와 함께 이곳 평강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녀를 이제 교회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녀가 나를 부르면 내가 간다. 늘 내 가방에는 머뭇머...

 
2015-03-14 753
138

#16.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까 _ 맹지애 file

시대가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가슴 뛰는 꿈을 꾸고 어른들은 그 꿈을 응원하던, 말 그대로 ‘꿈’만 같던 시기가 흘러가버렸습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업을 얻고, 좋은 직업을 얻어야 편...

 
2015-05-30 751
137

#09. 게으른 파수꾼, 추억의 발걸음을 걷다 _ 송인호 file

길을 나서볼 때입니다. 어느덧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모이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충전이 잘 된 LED 랜턴과 손에 달라붙는 알루미늄 방망이 하나를 집어 들고 말입니다. 첫 행선지는 내 맘대로 정한 순서대로 예전 회계실 건물입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

 
2015-04-04 746
136

# 131. 수영을 통해 깨달은 영혼의 숨쉬기 file

얼떨결에 등록하게 된 수영. 교역자에겐 사명이 생명인지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마땅한 게 없던 차에 누군가 수영을 권했다. 첫 시간부터 ‘와 이런 신세계가 있구나’ 감탄을 했다. 일단 뭔가 새로운...

 
2017-10-10 734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