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6

pkblog_body_14.jpg


5월은 일 년 중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다. 어린이로부터 시작해서 부모와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사람의 성장과 가르침에 관련된 날들이다. 그중에서 스승의 날은 그 의미와 가치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스승은 변치 않는 우리 삶의 중심이요 사회의 기둥임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선생님의 가르침이 없다면 오늘날의 나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의 열매는 결코 없었을 테니까.

 

공자의 제자 안연은 자기의 스승인 공자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느꼈다.

선생님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아만 가고 뚫고 들어갈수록 더욱 단단해 보인다. 바라보니 어느 틈에 앞에서 손짓하더니 문득 뒤에서 채찍질하시네. 선생님은 차근차근 배우는 사람을 이끌어가는구나

  점점 더 높아져가고 더욱 단단해지는 존재! 이어서 안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 나의 모든 재주를 다 쏟아부었지만 나의 눈앞에 우뚝 서 계시는 듯하다. 또 힘을 내서 따라가고자 하지만 어찌해볼 길이 보이지 않네제자가 어릴 때는 앞에서손짓하며 따라오라고 본을 보이시고, 어느 정도 지식의 터전을 닦은 후에는 조용히 뒤에서지켜보다가 잘못된 길로 빠질 때는 채찍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 스승이다.

스승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라는 본래 물과 같이 흐르다”, “겨누다, 가리키다라는 뜻이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진리는 스승을 통해 학생에게 물이 흐르듯 전수되는 것이다. 또한 궁수가 화살을 쏘기 위해 과녁을 겨누는 것과 같이 학문의 목표,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주고 인도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무리 탁월한 자라 할지라도 부모의 양육과 스승의 가르침 없이 홀로 자라갈 수가 없다.

 

tis1st.jpg

 

 

그럼에도 스승의 은택을 망각하고 간혹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잊은 듯스스로 앞서가려는 제자들이 있다. 이제 이만하면 나도 스승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자만심의 발로다. 하지만 그러한 자만은 반드시 실패의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 했던 그 꽃이란 짧은 시처럼 사람은 잘 나갈 때는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실패하고 내려올 때에야 꽃이 자신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 꽃은 사랑하는 가족일 수도 있고, 경쟁자일 수도 있다. 혹은 시장에서 호객하는 장사꾼이나, 효조(孝鳥)로 알려진 까마귀 한 마리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아픔을 겪고서야 스승의 가르침이 떠오르게 되는 부족한 제자의 모습을 고은 시인의 에서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한 제자를 가리켜 뒤에서 스승의 말소리를 듣는 자로 표현하였다(30:21).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고 일러 주시는 스승의 말소리는 왜 뒤에서들리는 걸까? 긍정적으로 보면, 뒤에서 제자의 모습을 지켜보다 중요한 순간에 개입하여 권면해 주시는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느 순간 제자가 스승을 밀치고 앞서 나가버릴 때 스승은 자연스레 뒤로 밀려나고 만다. ‘뒤에서라는 공간적인 표현은 이런 씁쓸함이 묻어 있다. 시간적으로는 어떤 일을 그르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과거 스승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것을 지적해 주는 표현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싫었지만, 내가 커서 부모가 되면 자식의 모습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어렸을 때 늘 듣던 부모님의 말소리를 뒤늦게 떠올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면서도 스승은 숨기지 않으셨다(30:20). 환난과 고생이 없는 풍요와 평안보다 스승이 없는 상황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임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에 아무리 큰 환난과 고생이 주어진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스승이 되어 정로’(正路)를 일러 주시면 이를 능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승의 헌신과 가치를 단테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당신은 등불을 뒤로 들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현명하게 만드는,

                 어둠 속의 외로운 여행자이셨지요” (연옥편, 2267-69)

 

제자를 위해 진리의 등불을 뒤로 비추어 주시는 스승의 배려와 사랑.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러한 스승의 사랑과 가르침 덕이다. 제자들에게는 사랑과 진리의 등불을 환히 비춰주시고, 홀로 캄캄한 십자가 무덤 속을 외로이 여행하신 예수님에게서 참 스승의 모습을 본다.

 

예기(禮記) 학기(學記) 편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나온다. 직역하면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일이 서로 돕는다라는 뜻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어려움을 알게 된다라는 통찰에서 나온 교훈이다. 성경에서도 배우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라마드는 강조형(피엘형)으로 쓰이면 모음이 리메드로 바뀌면서 뜻도 가르치다로 변형된다. ,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지적 성장과정에 상호작용을 한다고 본 것이다. 교학상장의 원리이다.

 

우리에게 참된 선생님’(19:15, 9:38)이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귓전에서 들리고 있지는 않는가? 선생님을 내 인생의 앞에 모시는 것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스승이 가리키는 정로’(正路)를 행하는 것, 교학상장의 이치를 깨닫고 가르침으로써 배우고, 배움으로써 더 성숙하게 가르치는 길이 뒷전에 있던 스승을 앞에 모시는 방법이다. 큰 스승을 떠나보내고 나니 역시 뒤에서들리는 그분의 목소리에 눈물짓는다.



49d996ecc366a852641620449aa999c2.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26

#21.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아빠의 정년퇴직을 기념하며) _ 박다애 file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어릴 적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고 엉엉 울면서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군인 하지 말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 전쟁이 난다면 50년대 전쟁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

 
2015-07-04 800
125

#09. 게으른 파수꾼, 추억의 발걸음을 걷다 _ 송인호 file

길을 나서볼 때입니다. 어느덧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모이고, 시간이 되었습니다. 충전이 잘 된 LED 랜턴과 손에 달라붙는 알루미늄 방망이 하나를 집어 들고 말입니다. 첫 행선지는 내 맘대로 정한 순서대로 예전 회계실 건물입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

 
2015-04-04 799
124

#02.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그 매력적 오답의 치명적 유혹 _ 송현석 file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셨나요? “합리적 의사 결정, 민주적 절차,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학문적 근거 제시, ... ” 말은 한참 어려워도 결국은 우리네 삶의 기준이 되고 많은 학문적 접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

 
2015-03-13 793
123

#07. 신앙의 성과 지표 _ 김태훈 file

CEO 모임에 가보면 그 모임의 성격에 따라 주고받는 질문도 다르다. 유명 경제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포럼이나 조찬모임의 경우 규모가 큰 기업들의 CEO들이 많이 참석하는 만큼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는 경영 키워드에 대한 논의가 많다. “대표님 ...

 
2015-03-21 782
122

#39. 인생의 한 분기점을 넘는다는 것 _ 맹지애 file

인생에는 몇 가지 큰 분기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예를 들면 수능, 취업, 결혼 등과 같은 중대한 사건들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큰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비로소 우리는 성장합니...

 
2015-11-22 776
121

#05. 사순절을 지키는 두 가지 모습 _ 홍봉준 file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금식을 기념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결정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고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킨 반면에 서...

 
2015-03-13 766
120

#102. 거절 못하는 병 때문에 _ 정유진 file

아뿔싸, 또 코가 꿰었다! 평강 에세이 집필진을 해달란다. 안된다고 했어야 되는데. 글 쓰는 실력 없다고 거절했어야 되는데. 차마 말을 못하고 그냥 수락해버렸다. 매번 원고 마감일에 임박해서 안 되는 글 쓰느라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속으로 끙끙 앓다가 ...

 
2017-03-03 751
119

#87. 휘선,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뒤를 따르는 첫발걸음 _ 박다애 file

8월이면 매 년 돌아오는 청년1부 헵시바 정기총회가 이번 연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39대 임원단을 마무리하며 잠시 바빴던 교회생활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4부 청년연합예배...

 
2016-11-14 742
118

#151. 감사와 사명 file

사명使命, 부릴 사使 목숨 명命, 국어사전에서는 '맡겨진 임무'라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존재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는 단어인 셈입니다. 아마도 이 사명이 가장 중요시되는 직업은 ...

 
2018-02-25 733
»

#14. 뒤에서 들리는 스승의 목소리 _ 홍봉준 file

5월은 일 년 중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다. 어린이로부터 시작해서 부모와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사람의 성장과 가르침에 관련된 날들이다. 그중에서 스승의 날은 그 의미와 가치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스승은 변치 않는 우리 ...

 
2015-05-16 724
116

#109. 네 아이의 엄마 _ 이승옥 file

저는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이 한 문장만 읽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머머, 힘들겠다.’ ‘어떻게 키운데?’ ‘지금은 힘들어도 크고 나면 좋아.’ 그리고 위에 딸이 셋이고 막내가 아들이다 보니, 또 이렇게...

 
2017-04-25 715
115

#70. 말씀의 아버지와 함께한 21년 간의 동시대 _ 박다애 file

음악의 아버지 바흐,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과 사회에 큰 공헌을 세운 사람을 ‘대가’라고 합니다. (대가(大家)[대ː가] [명사] 1.전문분야에서 뛰어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 동시대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후손...

 
2016-07-10 715
114

#152. 본(本)이 되어야... file

구속사 시리즈 10권을 통해 사관학교를 등록하고 환경과 여건에 맞는 많은 반들을 수강하고 있다. 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을 통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아브라함의 생애, 복의 근원. 그것은, 본(本...

 
2018-03-03 706
113

#135. 담백한 마무리 _ 김진영 file

차가운 바람 속에서 2017년도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점차 가까워짐을 인지하게 된다.‘올해는 정말 다르다’라는 결심과 승리의 수 ‘17’이라는 설렘을 갖고 세웠던 2017년도 신년 목표를 펼쳐 보니 새삼스럽게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간...

 
2017-10-30 699
112

#03. 슬픔의 절정에 춤을 준비하는 사람들 _ 홍미례 file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

 
2015-03-13 699
111

#48. 온전한 주일 성수 _ 김태훈 file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처음 며칠은 시차가 맞지 않아 고생하기도 하고, 체류 기간이 길어져 몸이 현지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즈음이면 집 밥이 몹시 그리워지기도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다 보니 ...

 
2016-01-30 695
110

#45. 좌충우돌 오류동 정착기 _ 하찬영 file

"쓰레기 봉투가 없네, 마트 좀 다녀올래? 의자 옆에 바지랑 셔츠 다려놓았으니 넥타이랑 챙기고" 그는 그레이 컬러의 수트와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습니다. 마트에 갈 때는 어떤 타이가 어울릴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가 가장 아끼는 타이를 집어 듭니다. 시...

 
2016-01-09 693
109

#57. 재수 없다 _ 송인호 file

그간 너무 내가 게을렀다. 예전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녔다는데, 어느새 이 교회를 바라보노라면, 고양이가 되어 버린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간 이단으로 몰아쳐서 짭짤한 듯 하다가도 몇 년전 12월 17일, 결정적으로 패퇴하지 ...

 
2016-04-10 690
108

#100. 십자가 사랑에 관한 고찰 _ 김영호 file

2017년, 신년감사예배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 다가왔습니다. 2017년 올 한 해를 표현해본다면 신앙 지표인 ‘십자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승현 목사님께서 십자가 사랑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씀하실 때 십자가...

 
2017-02-16 686
107

#73. 집중과 몰입의 애티튜드 _ 하찬영 file

사명감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해야 한다는, 나 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꽤 오래전 일인데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워크샵(영화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약 6개월 코스였는데 비용이 ...

 
2016-07-31 681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08345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