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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오래전 그때 그 시절, 영화가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더랬다. 당시에는 원하는 영화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동네 상가에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아니면 한국 주재 외국 문화원이나 소극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미개봉작이나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보곤 했다. 거의 매일 영화 생각만 하다 보니, 밑도 끝도 없이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는데, 작가 타이틀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영화 시나리오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각종 작법서와 워크숍에서 배운 것들은(오래 되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플롯 구성과 스토리 창작, 생동감 있는 캐릭터에 관한 내용이었다. ‘플롯 중심’의 시나리오와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라는 것이 있는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는 흥미진진한 플롯과 매력적인 이야기,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모두 담겨있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이론은 대충 알고 있고, 생각해 놓은 소재와 줄거리도 있으니, 이제는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정작 이게 제일 어려웠다. 일상의 수많은 감정 기복과 각종 경조사를 뒤로하고 책상 앞에 진득이 앉아 규칙적으로 꾸준히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정해진 분량만 쓰라고 시키면 과연 몇이나 지킬지 의문인데, 아마추어와 전업 작가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하는 흥행대박 영화들의 플롯을 찬찬히 뜯어 살펴보자면, 주인공이 어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고난과 끝없는 역경을 이겨내고, 심적 갈등을 승화시켜 끝끝내 쟁취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구조를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플롯을 짜 놓아야 극에 재미와 긴장감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훌륭한 지원과 아낌없는 배려 속에 일말의 고통과 내적 고민 없이 여자 올림픽 컬링 팀이 ‘덜컥’ 메달을 땄다면,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에게 온갖 고난과 시련을 가하는 반면, 주인공이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야하는 절실한 무엇을 플롯에 집어 넣어야한다. 역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보는 이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고, 우리의 주인공은 반짝반짝 빛이 날 것이다. 창작자는 자신의 캐릭터에게 최대한 어렵고 힘든 미션을 계속 던지는 반면, 주인공은 갖은 고생 끝에 간신히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팝콘을 끼고 앉아 아등바등 힘쓰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슬슬 감정이입도 되고, 과연 결말이 어떻게 될까 관심도 가지게 된다. 즉, 정신을 쏙 빼고 빠져드는 스토리가 된다는 말이다.


예상치 못했던 큰 시험이 닥치거나,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도 ‘천만 대박’을 미리 작정해두신 아버지께서 무한하신 아가페의 사랑으로 고된 시련과 시험이 가득한 플롯 안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 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떠밀리듯 가서 별별 고생은 다하겠지만 여호와이레의 큰 복을 허락해 주심으로 결국에는 성취하여 내 삶의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대대로 전수되기를 바라시는 섭리로 말이다. 지금은 버거워도 끝까지 참고, 마침내 이겨내어 성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구한 구속 역사 가운데 미리 작정해두신 ‘천천만만 대박’의 큰 복일 것이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위기 속의 주인공을 지켜보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안다. 여차저차해서 이겨내고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카리브에서 몰디브 한잔하자’, 힘내시라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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