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에세이

HOME > 평강미디어 > 평강에세이
글 수 175
pkblog_body_33.jpg



냉장고를 열고 식재료를 고른 후, 15분 만에 뚝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요즘 즐겨 본다. 요리를 먹는 스타들은 한입 먹는 순간 신비로운 표정에 '엄지 척'이다. 대부분의 다른 먹방(먹는 방송)과의 차이점이라면 냉장고에 있는 평범한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15분도 안 걸린다는 것이다.
htm_2015031611517l800l807.jpg


나도 냉장고를 연다. 이리저리 살피며 요리 비슷한 걸 해보려는데,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다가 15분, 20분이 지나간다. 한 시간이 지나도 TV 속 셰프들의 15분 요리는 좇아가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갖은 식재료로 15분 안에 요리를 만드는 셰프가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학습과 숙련의 과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식재료를 4배속, 8배속으로 칼질하며 일정한 크기로 만들고, 마늘을 큰 칼로 내리찍으며 탕탕 빻아내고, 프라이팬 온도가 적정 온도로 달궈졌는지 온 감각 조직이 알고 있으며, 각종 양념과 식재료의 최상 배합 순서는 이미 체화(體化) 되어 있다. 소금을 한손 높이 흩뿌리는 허세는 그 고단한 배움의 과정을 거친 자들이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비단 요리뿐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성공 그 이면에는 부단한 노력과 도전,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과정들이 무수히 녹아 있다. 매번 줄을 서야 하는 맛집, 김연아의 트리플 러츠 점프, 대한민국의 세계경제 순위 11위도 과정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신앙생활도 5년, 10년, 20년... 연수가 더해 가는 크리스천에게는 새신자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설교 말씀을 꼼꼼히 녹취 수준으로 필기하는 기술, 교회 내 여러 기관을 두루 아는 인맥, 자랑스러운 구속사 사관학교 매달 개수 등은 믿음 생활이 오래되면서 주어진다. 하지만 외형적 부분 외에 정작 중요한 것은 믿음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이다. 빈부귀천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겸손, 말과 소문의 홍수 속에도 묵묵히 주어진 헌신과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믿음, 언제 어디서나 원로목사님이 생전에 권면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모든 삶의 처소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명품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구속사의 수많은 의인들의 삶은 성경에 짧게 기록되어 있다.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 승천했다는 구절, 악한 시대를 살았던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기까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는 구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 상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까지. 성경 한 구절 한 구절 앞에서, 얄팍한 잔머리와 무딘 신앙 양심을 가진 나는 꼼짝할 수 없다. 예수님을 닮고 싶고, 에녹처럼 변화되리라고, 노아처럼 방주를 예비한다고 말뿐이다. 연단의 과정과 경건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비전은 공허한 결과뿐이다.

냉장고를 열고 15분 안에 요리를 만들려면 요리 학원에서 기술도 배우고, 양파도 몇백 개씩 썰며 칼질에 익숙해지고, 가스 불에 손도 데이며 불과 친해지고, 각양 식재료, 조리기구 특성도 모두 파악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소금만 높이 흩뿌린다면 그것이 진짜 허세가 아닐까? 

내 신앙의 허세와 거품을 걷어낼 때, 지금의 신앙 현주소가 파악된다. 새벽예배 단을 쌓고, 온전한 주일성수를 위해 힘을 내야 한다. 읽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구속사시리즈 7독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늘 시작하는 경건의 연습과 연단의 과정을 통과할 때, 우리는 에녹처럼, 노아처럼, 예수님처럼 구속사의 한 페이지를 빛내는 주인공으로 천국을 차지한다. 원로목사님의 비유처럼 바나나 먹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바나나가 눈앞에 나타나는 세계, 15분이나 기다리지 않아도 내가 생각하면 바로 이루어지는 완전 영통(靈通)의 세계다. 천국 가는 길에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앞서 가신 예수님의 손을 잡고 내 믿음의 두 발로 묵묵히 걸어가는 방법뿐이다.

w.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55

#86. 에노스, 너무나 에노스적인 _ 하찬영 file

‘그렇다고 그가 수천억 대의 자산가가 되고 싶어 하거나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꿀 혁명적인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돈에 눈이 먼 탐욕스런 인간은 아니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자 하는 위대한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다. 이래저...

 
2016-11-08 397
54

#17. 울타리 _ 강명선 file

토요일 아침이다.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놀아야 한다. 자는 아들 깨워서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오류동 탐험을 나섰다. 작년 봄에 이사 왔지만 늘 집과 교회를 반복하다 보니 아직도 못 가봐 궁금한 곳이 많다. 자전거 길을 찾아 돌다가 빵집에 들...

 
2015-06-06 397
53

#144. +1_ 홍명진 file

1을 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단순히 수 계산에서의 1을 더하는 것 말고도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려면 24시간이 필요하고, 1월에서 2월로 넘어가려면 3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오는데도 12...

 
2018-01-24 396
52

#82. 은혜와 율법주의 _ 김형주 file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집에 가전제품이 저절로 작동하는가 하면, 사람도 없는 엘리베이터가 층층마다 멈추면서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계속합니다. 이런 진풍경이 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 하루 동안 세계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얼핏 들으면 괴담에나...

 
2016-10-09 396
51

#36. 바벨 _ 최주영 file

대화를 하다 보면 간혹 상대방이 어떤 의중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느낌으로도 모르겠고, 제스처로도 파악이 안되고, 말로 표현하다 보면 더욱더 아련해집니다. 이는 대화하는 상대방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자세히 일러주어도 ...

 
2015-10-31 395
50

#79. Hold me, Mold me, Make me, Fill me _ 원재웅 file

Hold me, Mold me, Make me, Fill me 아주 오래전 우리 집 거실 장식장에 조그만 사기그릇이 하나 있었다. 도자기라고 하기에는 그 모양이 현대적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벤티 사이즈의 머그잔과 비슷한 형태의 그릇이었다. 보통 도자기에 글이나 그림이...

 
2016-09-18 393
49

#46. 3일마다 가스불에 앉기 _ 지근욱 file

1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 차에서 원로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는다. 설교 때마다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몇 가지 비유가 있다. 예전에는 '또 저 말씀하시는구나...' 하며 귓등으로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아래 말씀은 그중 하나다. "죄...

 
2016-01-16 389
48

#134.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_ 강명선 file

우리 아빠는 참 복도 많다. 아내를 잘 만났다. 별로 잘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엄마는 아빠를 끔찍이도 챙긴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은데 환갑이 지난 지금도 아빠 곁에 있다. 옆에 꼭 붙어있다. 7남...

 
2017-10-27 387
»

#33. 15분 만에 요리가 안 나오는 이유 _ 지근욱 file

냉장고를 열고 식재료를 고른 후, 15분 만에 뚝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요즘 즐겨 본다. 요리를 먹는 스타들은 한입 먹는 순간 신비로운 표정에 '엄지 척'이다. 대부분의 다른 먹방(먹는 방송)과의 차이점이라면 냉장고에 ...

 
2015-10-10 386
46

#84. 회고록 _ 송인호 file

회고록의 뜻이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다. 사전적 의미로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전적 의미에 앞서 파워링크라고 나오는 수많은 회고록 대행업체(작가)들의 명단이다. 전문가의 손길을 빌어 쓰...

 
2016-10-23 384
45

#121. 기대와 실행 _ 김진영 file

어느덧 2017년도 상반기가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2017년도라는 축구 경기의 전반전은 끝나고, 하프 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183일째인 7월 2일도 지났으니, 이제는 후반전만 남은 것이다. 부모를 통해 평강제일교회에 다니게 되고...

 
2017-07-12 383
44

#139. This is my Father's Church _ 송인호 file

This is my Father’s Church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교회. 구속사 운동의 교회 Oh, let me ne’er forget 절대로 잊지 않으렵니다. 아버지께서 이 교회를 위해 흘리신 피와 눈물과 땀을 That though the wrong seems oft so strong, ...

 
2017-12-01 376
43

#55. 십자가를 생각하며 _ 김형주 file

고난주간 속에는 예수님의 33년 전 생애가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약속받는 확실한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 죄악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하기 ...

 
2016-03-26 368
42

#29. 여름의 당부 _ 강명선 file

녀석을 발견한 것은 교회 에담 식당 앞 주차장 부근이었다. 감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굴러떨어져 있던 그 녀석. 그 작고 앙증맞은 녀석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발걸음을 멈췄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그 철...

 
2015-09-06 368
41

#127. 인생 2막을 시작하며 file

2017년, 어느덧 입추와 처서를 맞이하고 이제는 선선한 가을바람을 기다리는 때가 되었다. 올 해 벌써 많은 일들을 겪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에 헉! 하고 놀랄만한 사건은 바로 곧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어린것...

 
2017-08-30 366
40

#125. 노래하는 말 _ 송인호 file

죄를 짓고 붙잡혀 왕이 내리는 처벌을 받을 운명에 처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이 죄수는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 1년 안에 왕이 아끼는 말에게 노래를 가르치겠다는 약속으로 왕을 설득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

 
2017-08-16 366
39

#103. 사순절 그리고 갱신 _ 이장식 file

날씨가 풀리고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니 그제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엄동설한 얼어붙었던 대지는 녹고 마음도 녹아내리는 것 같이 열린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모든 만물이 눈을 뜨고 기...

 
2017-03-08 366
38

#112. 내 인생의 사물 _ 김신웅 file

어느 포근한 토요일 점심 무렵, FM 라디오를 – 채널 주파수는 104.5MHz – 들으며 교회에 가던 중이었다. 봄 개편을 맞아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 개그우먼 박지선 씨가 진행하는 ‘사물의 재발견’이 흘러나왔다. 이 날 코너에서는 여러 청취...

 
2017-05-12 365
37

#41. 먹다 _ 원재웅 file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기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의 관심은 '배불리' 먹는 게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었다. 각종 SNS에 올...

 
2015-12-05 364
36

#142. 워라밸(Work & Life Balance) _ 박승현 file

해마다 이맘 때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거나 다가올 새해를 내다보는 다양한 단어가 등장한다. 올 해 ‘욜로(YOLO, You Only Life Once)’가 미디어에 꾸준히 등장했다면, 2018년 트렌드 전망에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

 
2017-12-26 362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