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6
essay154_body.jpg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오래전 그때 그 시절, 영화가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더랬다. 당시에는 원하는 영화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동네 상가에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아니면 한국 주재 외국 문화원이나 소극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미개봉작이나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보곤 했다. 거의 매일 영화 생각만 하다 보니, 밑도 끝도 없이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는데, 작가 타이틀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영화 시나리오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각종 작법서와 워크숍에서 배운 것들은(오래 되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플롯 구성과 스토리 창작, 생동감 있는 캐릭터에 관한 내용이었다. ‘플롯 중심’의 시나리오와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라는 것이 있는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는 흥미진진한 플롯과 매력적인 이야기,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모두 담겨있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이론은 대충 알고 있고, 생각해 놓은 소재와 줄거리도 있으니, 이제는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정작 이게 제일 어려웠다. 일상의 수많은 감정 기복과 각종 경조사를 뒤로하고 책상 앞에 진득이 앉아 규칙적으로 꾸준히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정해진 분량만 쓰라고 시키면 과연 몇이나 지킬지 의문인데, 아마추어와 전업 작가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하는 흥행대박 영화들의 플롯을 찬찬히 뜯어 살펴보자면, 주인공이 어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고난과 끝없는 역경을 이겨내고, 심적 갈등을 승화시켜 끝끝내 쟁취하고 마침내 승리하는! 구조를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플롯을 짜 놓아야 극에 재미와 긴장감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훌륭한 지원과 아낌없는 배려 속에 일말의 고통과 내적 고민 없이 여자 올림픽 컬링 팀이 ‘덜컥’ 메달을 땄다면,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에게 온갖 고난과 시련을 가하는 반면, 주인공이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야하는 절실한 무엇을 플롯에 집어 넣어야한다. 역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보는 이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고, 우리의 주인공은 반짝반짝 빛이 날 것이다. 창작자는 자신의 캐릭터에게 최대한 어렵고 힘든 미션을 계속 던지는 반면, 주인공은 갖은 고생 끝에 간신히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팝콘을 끼고 앉아 아등바등 힘쓰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슬슬 감정이입도 되고, 과연 결말이 어떻게 될까 관심도 가지게 된다. 즉, 정신을 쏙 빼고 빠져드는 스토리가 된다는 말이다.


예상치 못했던 큰 시험이 닥치거나,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도 ‘천만 대박’을 미리 작정해두신 아버지께서 무한하신 아가페의 사랑으로 고된 시련과 시험이 가득한 플롯 안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 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떠밀리듯 가서 별별 고생은 다하겠지만 여호와이레의 큰 복을 허락해 주심으로 결국에는 성취하여 내 삶의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대대로 전수되기를 바라시는 섭리로 말이다. 지금은 버거워도 끝까지 참고, 마침내 이겨내어 성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구한 구속 역사 가운데 미리 작정해두신 ‘천천만만 대박’의 큰 복일 것이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위기 속의 주인공을 지켜보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안다. 여차저차해서 이겨내고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카리브에서 몰디브 한잔하자’, 힘내시라 모두들!


에세이소개HCY.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26

#149. 나와 당신의 슈퍼 히어로 file

‘2030 청년세대 15만 명이 직접 선정한 영웅들이 직접 멘토링을 한다’는 내용의 종편방송 커머셜을 호기심 기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쟁쟁한 인물(‘영웅’들이라 해야겠습니다만)들이 출연하는 포럼에서 그들의 성공스토리를 공유하고 피와 살이 되는...

 
2018-02-14 456
25

#150. 부끄럽지 않은 등재 file

어느 날 갑자기 영문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Congratulations on Your Acceptance into Who's Who in the World'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마르퀴즈 후즈 후’라는 곳인데, 나를 2018년도 인명사전에 등재하고자 노미네이트 했고 인명사전에 올리기 전...

 
2018-02-14 531
24

#151. 감사와 사명 file

사명使命, 부릴 사使 목숨 명命, 국어사전에서는 '맡겨진 임무'라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존재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는 단어인 셈입니다. 아마도 이 사명이 가장 중요시되는 직업은 ...

 
2018-02-25 685
23

#152. 본(本)이 되어야... file

구속사 시리즈 10권을 통해 사관학교를 등록하고 환경과 여건에 맞는 많은 반들을 수강하고 있다. 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을 통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아브라함의 생애, 복의 근원. 그것은, 본(本...

 
2018-03-03 668
22

#153. 하늘에 펼쳐진 약속 file

“주님께 나아가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모두 드러나네 마음의 소원들이 나의 뜻과 다르네 주님의 생각하심은 드넓은 광야로 인도하네 새로운 길 여시네 두려움 속에 한걸음 딛네 담대함 주시는 하나님 강한 손으로 주 날 붙드네 ...

 
2018-03-17 1299
»

#154. ‘천만 대박’영화의 시나리오 file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오래전 그때 그 시절, 영화가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더랬다. 당시에는 원하는 영화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동네 상가에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아니면 ...

 
2018-03-24 616
20

#155. 습관은 반복이다! 경건을 연습하라! file

‘아차! 밤늦게 군것질 안하기로 했었지...’ 결심한 것이 생각났을 때 나는 이미 초코파이 두 개에, 고구마 한 개, 하루 견과 3일치에다 사탕을 5개나 까먹고, 과자 봉지가 반 이상 줄고 있을 쯤 이었다. 시간은 밤 10시가 훨씬 넘어 11시가 다되어가고 있는데...

 
2018-04-02 1091
19

#156. 이길 밖에는 대안이 없어요? file

살아가다 보면, 선택의 기로가 심심치 않게 주어집니다. 혈압이 높으니 카페인을 줄여야 하는데 몽롱한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빈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선택이고, 종합 검진을 받고, 아찔한 숫자들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자, 운...

 
2018-04-14 589
18

#157. 갑(甲)질의 역사 file

“또 그랬네, 그거 집안 내력(DNA)인가 봐.” 한진그룹 세 자녀들의 갑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파장이 컸다. 최근 막내딸인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 중 대행사 직원에게 고성과 함께 물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8-04-28 1219
17

#158.염려가 위로가 되고 file

‘파라칼레오’는 히브리어로 ‘위로’라는 단어이다, ‘곁에서 이름을 부르다’라는 뜻이고,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위로를 해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다. 문득, ‘위로’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

 
2018-05-12 1560
16

#159. 천천만만 당신의 매력 file

참 이상한 사람이다. 당신은 한 명인데 당신에게 매료된 사람이 천천만만이다. 당신을 직접 만나본 사람도 당신의 글만 읽은 사람도 당신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당신에게 매료된다. 당신의 외모는 접근하기 쉬운 인상도 아니었고, 당신의 목소...

 
2018-05-26 1711
15

#161.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file

“너는 성경이 왜 좋니?” 뜬금없는 질문에 저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머뭇 얼버무리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도대체 성경이 왜 좋으냐?’는 오래전 그 날 뜬금없었던 그 질문은 여태껏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따라서 확신을 ...

 
2018-06-23 1391
14

#162. '인내(忍耐)'를 가르칩시다. file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가정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채 학교에 아이들을 맡겨 놓고 교사더러 인성교육을 기대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배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이들이 넘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

 
2018-07-02 1195
13

#163. 추가시간 6분까지 ‘전력 믿음!’ file

‘역시 끝까지 가봐야 아는구나!’ 입을 벌리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27일, 대한민국 축구 대표 팀이 피파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격파했던 그 때 말이다. 전반전에 실점하지 않은 것도 대단히 큰 성과라 생각했다. 독일에 승리할 확률 5%, ...

 
2018-07-07 1263
12

#164. 먹고 사는 문제 file

다행히 사오정(45세 정년)은 넘겼지만, 오륙도(56세에 현역이면 도둑놈) 고개는 무사히 넘어갈지 걱정되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다니고 있지만, 평범한 중소기업이라 더 그렇다. 정년보장 철밥통, 강성노조가 근로자편에서 투쟁하는 회사, 처우는 좋...

 
2018-07-21 1228
11

#165. 방법의 차이, 고난 혹은 축복 file

우리 다같이 BC 1446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즘과 같은 폭염 속에 햇볕은 내리쬐고 모래먼지는 이는데, 부모며 자식이며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오래 살던 땅을 벗어나 이전에 사용했던 냉장고며, 전기밥솥이며, 옷과 책들을 가방에 넣고 수레를 끌며 사막 길...

 
2018-07-28 1309
10

#166. 신앙의 피드백 file

필자가 회사에서 연구하며 개발하고 있는 반도체 회로는 위상고정루프(Phase-locked loop)라는 것인데, 이는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회로이다. 10년간 연구하다 보면 끝을 볼 법도 하겠지만, 이 주제...

 
2018-08-25 1223
9

#167. The Judas Tree file

가룟 유다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제자로 이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목매어 자살한 제자. 성경은 그가 스스로 목을 매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창자가 터져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길 유다가 나무에 목...

 
2018-09-01 2358
8

#168. 信者의 내적 투쟁에 대하여 file

사도바울은 내적투쟁에 대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시해 주고 있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입니다. 로마서 7장을 통해 믿는 자의 내적 투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고 로마서7: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

 
2018-09-17 1612
7

#169. 선교(宣敎, mission) file

선교(宣敎, mission) : 종교를 선전하여 널리 폄 '전도'와 비슷한 의미로, 주로 전도는 같은 언어/문화의 사람들에게 종교를 전파한다는 뜻이지만, 선교는 다른 언어/문화의 사람들에게 종교를 전파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올해만큼 이 '선교'라는...

 
2018-09-22 1477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