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6

pkblog_body_hong.jpg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금식을 기념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결정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고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킨 반면에 서방교회는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현재의 형태로 사순절을 지키게 된 것은 그레고리우스 교황 때로서 재(灰)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40일 동안(주일 제외) 사순절을 지켰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이 절기를 매우 엄격하게 지켰는데 하루에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허용되었다. 9세기에 와서 이 제도가 약간 완화되었고, 13세기부터는 간단한 식사를 허용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사순절을 단식 기간으로 지키기보다는 구제와 경건 훈련으로 더 유효하게 지키게 되었다.

문제는 사순절의 의미를 깨닫고 기쁨으로 지키기보다는 고된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다 보니 오히려 많은 폐단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3~7일 전, 사람들은 미리 마음껏 고기를 먹고 축제를 즐겼다. 브라질 등 대부분의 카톨릭 지역에서 행해지는 ‘카니발’(carnival; 사육제) 축제가 그것이다. 카니발은 라틴어 ‘carnevale’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기를 멀리한다는 뜻(‘carne + vale’, ‘Farewell, O Flesh’; 고기여 안녕!)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재의 수요일 직전 화요일은 ‘마르디 그라’(Mardi Gras) 즉 ‘기름진 화요일’이라 해서 역시 잔치를 벌인다. 마치 금식하기 위해 금식 전에 잔뜩 기름진 음식으로 포식하는 것과 같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로 인해 가장 음란하고 쾌락적인 카니발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경건의 과정을 ‘금기’로 여기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경건에는 ‘금기’(Do not)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하지 않던 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행위’(To do)도 포함한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충돌도 바로 이 경건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금기’의 날로 본 반면에 예수님은 생명을 구하는 ‘행위’의 날로 여겼다(마12:1-14).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안식일은 병 고치는 것(마12:10)도 행해서는 안 되는 금지의 날이었지만 예수님은 구덩이에 빠진 양의 생명을 건짐으로써 ‘선을 행하는 날’로 규정하셨다(마12:11-12). 안식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결국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십계명에도 경건의 모습은 두 가지 형태로 기록되었다. ‘To Do’의 계명은 제4-5계명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계명이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계명들은 금지(Do not)에 관한 내용이다. 분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중요한 것은 양면성이다. 이 둘의 적절한 균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경건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중 ‘금지’에 관한 부분을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아마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금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순절에 무엇을 금할지 ‘금기 목록’을 만들어 경건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행위 목록’(To Do List)도 만들어 의미 있게 보내자. 더 많은 기도와 성경 읽기,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며 예배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경건한 사순절 준수의 참 모습이리라.






essay05.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6

#06. 거짓말 그리고 봄 _ 강명선 file

겨울이 가는구나. 봄방학 말미에 그녀를 만나러 경복궁역을 향해 간다. 나와 함께 이곳 평강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그녀를 이제 교회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녀가 나를 부르면 내가 간다. 늘 내 가방에는 머뭇머...

 
2015-03-14 756
»

#05. 사순절을 지키는 두 가지 모습 _ 홍봉준 file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금식을 기념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A.D. 325)에서 결정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고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킨 반면에 서...

 
2015-03-13 698
4

#04. 두 배 _ 최주영 file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식이 지금보다 ‘두 배’로 속을 썩인다면 어떨까? 부모 중 열에 아홉은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

 
2015-03-13 578
3

#03. 슬픔의 절정에 춤을 준비하는 사람들 _ 홍미례 file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

 
2015-03-13 646
2

#02.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그 매력적 오답의 치명적 유혹 _ 송현석 file

비상식과 상식의 경계 -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셨나요? “합리적 의사 결정, 민주적 절차,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학문적 근거 제시, ... ” 말은 한참 어려워도 결국은 우리네 삶의 기준이 되고 많은 학문적 접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

 
2015-03-13 731
1

#01. 금순이를 찾아서 _ 지근욱 file

두 배는 최대한 많이 실으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 배는 자유와 생명의 땅에 도착했고, 다른 한 배는 깊은 바닷속으로 잠겼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세월호 이야기다. 먼저 1950년 12월 흥남 부두로 가 보자. 6.25...

 
2015-03-12 616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Abraham’s Message]

[구속사소식]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