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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르치노가 그린 피에타는 한 뼘 반 높이에 불과하다. 경배화에 적합한 크기다. 마리아와 요한이 사라지고 두 천사가 등장했다. 흰 수의를 감싼 예수의 육신이 그림 전면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빛은 오른쪽 위에서 안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진다. 달빛일까? 창백한 빛줄기는 함부로 구겨진 육신의 지체를 어둠의 칼날로 썰어 낸다. 예수는 육신의 고통을 벗었다. 그의 수족을 고정했던 못 자국과 창날 상처도 아물었다. 구에르치노의 온유한 붓은 자연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한다.

시신의 슬픈 풍경을 내려다보는 붉은 옷의 천사와 눈물을 훔치는 파란 옷의 천사는 코끝이 붉다. 눈시울과 귀 끝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검푸른 기운이 웅성대는 밤하늘은 경배화를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속에 전개되는 애수의 풍경이다. 천사의 피에타는 예수가 겪었던 수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마리아가 배제된 예수의 주검이란 십자가 책형, 강하, 입관, 매장, 부활, 승천으로 연결되는 수난과 구원의 줄거리 어디에서도 설 곳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사가 마리아를 대신해서 예수의 시신을 부축하거나 애도하는 '천사의 피에타'는 전혀 다른 제의적 전승에서 비롯한다. 예수의 희생을 두고 제단에 바쳐지는 어린양의 제물과 동일시하는 우의적 사고가 천사 피에타 탄생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미사의 우의에 수난의 애도를 뒤섞은 것은 예술적 상상력이다.

▶ 구에르치노,(천사의 피에타>, 1617-1618년무렵, 36.8x44.4cm, 국립 미술관,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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