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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르치노는 '그날 밤'의 일을 동굴 밖으로 끄집어냈다. 롯이 달빛을 희롱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술기운이 달아오릉자 윗옷을 벗어던졌다.

그에게 어제는 있었으나 내일은 없다. 두 딸은 남았으나 아내는 없다. 롯의 등 뒤에서 하얗게 빛나는 소금기둥이 소돔과 고모라의 미련을 떨치지 못한 아내의 기억이다.

붉은 치마를 걸친 첫딸은 왼손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행동을 거들면서 오른손으로 아버지의 옷자락을 끌어 내린다. 롯의 왼팔에 힘이 빠지고, 돌침대에 상체를 눕히는 순간 그의 아랫도리가 노출될 것이다.

첫딸의 자세는 최후의 심판날 심판관 예수를 올려다보며 인간의 구원을 간구하는 마리아의 자세를 닮았다. 나란히 접은 두 다리는 미켈란젤로가 그린<톤도 도니>의 마리아를 빌려 왔다.

구에르치노는 식탁 장면을 치워 버렸다. 빵과 과일이 수북하게 쌓인 풍성한 식탁 정물은 바로크의 감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네덜란드 서술체 회화의 수다한 상징 소재들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붓은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화한 심리 상태를 건져올리는 데 만족한다. 아버지와 두 딸이 이루는 인물 구성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첫딸이 권하는 술잔을 아버지가 기울이고, 둘째 딸은 술잔을 응시하며 술병 손잡이를 움켜쥔다.

첫딸은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고 둘째 딸은 술잔을 살핀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딸의 시선을 피하여 머리를 뒤로 젖혔다. 딸들이 '언제 들어와서 언제 나갔는지'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삼각 관계는 인물들의 삼각 구성에서 전제되었다. 적청황의 옷색깔은 구에르치노의 고전 감각이다. 고전적 색채 배열은 구성적 균형뿐 아니라 줄거리의 전개를 이끄는 동인이다. 아버지의 하체를 감싼 노랑은 육탐과 위험을, 첫딸이 걸친 빨강은 유혹과 열정을, 둘째 딸이 입은 파랑은 기다림과 이성을 의미한다.

롯은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허리가 분질러진 나무는 롯의 보잘것없는 운명과 다를 바 없다. 죽은 나무에 새 싹이 돋았다. 모압과 암몬족이 늙은 아비의 씨앗을 얻은 두 딸의 어린 뱃속에서 자라날 것이다.

▶ 구에르치노,<롯과 두 딸>, 1617년, 175x190cm, 산 로렌초 수도원, 엘 에스코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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