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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6

흰 백합을 든 천사가 마리아의 처소를 찾았다. 피에트라 세레나를 갂아서 세운 뒷 벽이 수태고지의 행복한 배경이다. 네모꼴의 규칙적인 바닥 격자가 공간적 원근을 암시한다. 북구 도시 풍경이 피렌체 시의 전경을 대신해서 너른 원경을 차지했다. 천사는 날개를 접지 못했다. 왼쪽 발을 내밀고 성급히 무릎을 꿇었지만 왼발의 자세는 다급한 움직임을 지탱하기에 어중간하다.

마리아는 상체를 크게 휘둘러서 몸을 뒤로 젖힌다. 하체와 상체, 상체와 머리에 각각 입체적인 S 형태가 그려진다. 적어도 인체의 움직임에서만은 후기 고딕의 조형 문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손바닥을 노출한 채 두 팔을 앞으로 뻗은 마리아의 자세는 거부 또는 부정의 의미로 읽힐 수 있지만, 보티첼리는 여기에 다른 뜻을 담았다. 화가는 앞서 그린<프리마베라>의 한복판에 등장하는 베누스의 자세와 손짓에서도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취하는 손짓의 의미도 '반가운 영접'이다. 마리아는 천사의 출현에 놀라움을 표현하는 대신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순종의 의사를 밝히는 셈이다.

그림의 소실선들은 보는 이의 시점에 대응하는 화면 위의 한 점으로 일제히 수렴한다. 보티첼리는 선형 원근법을 설득력 있게 실행한다. 삼차원적 공간을 이차원의 그림 평면 위에 옮겨 내는 일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가 회피할 수없는 숙제와 같았다. 수학과 기하학의 권위를 빌려서 회화를 자유 예술의 지위에 올리려는 열망이 원근법적 회화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보티첼리가 그린<수태고지>를 두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천사가 마리아를 방 바깥으로 쫓아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혹평했다. 혀 없는 붓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화가는 말 못하는 벙어리의 손짓과 표정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했던 레오나르도는 천사와 마리아의 과장된 동작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보티첼리,<수태고지>,1489년,150X156cm,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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