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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무릎 위에 세웠다. 그림 밖을 내다보는 아기는 루벤스의 둘째아들 니콜라스의 용모를 빼 닮았다. 니콜라스가 1618년에 태어났으니, 그림의 탄생시기는 그 이듬해 이후로 잡는 것이 적절하다. 성모는 홀아비 화가의 두 번째 아내 헬레나 푸르망의 용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림이 그려진 것은 루벤스가 어린 아내 헬레나를 만나기전, 아니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미리 그려둔 그림 속의 성모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투사하고, 그 후에 똑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을 자연으로부터 구하여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어머니 자연이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회화예술을 모방하는 이상한 일이 플랑드르 바로크 화가의 붓에서 일어났다.

▶ 루벤스와 브뤼겔,<성모자와 화환을 든 천사들>, 1619~1620년, 185x210cm,고전회화관,뮌헨

성모자를 그린 그림이 벽에 달려 있다. 그 위에 못을 치고 화환을 매다는 천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그림 속의 그림에 가두어졌다. 검게 빛나는 액자틀이 그들의 존재 영역을 경계짓는다. 열한 명의 날개 달린 천사들이 화환을 들었다. 그림 속의 꽃은 꽃정물의 대가 브뤼겔의 솜씨다.

백합과 장미가 마리아를 경배한다. 백합은 성모의 순결과 탄생의 미스터리를, 장미는 사랑을 뜻한다. 원래 사랑의 신 베누스의 꽃이었던 장미는 기독교적 사랑으로 의미가 개종되어서 흰색 장미는 순수한 사랑을, 붉은색 장미는 열정적 사랑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장미 줄기에 박힌 가시가 가시 면류관을 만들었던 엉겅퀴 가시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종교적 순교를 뜻하기도 한다. 그 밖에 단순히 장식적 용도로 꽃병이나 꽃줄을 치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꽃잎 끝자락이 날카로운 카네이션은 십자가에 박힌 못을 닮아서 수난을 뜻한다. 카네이션의 라틴명 디안투스는'신의 꽃'이라는 뜻이다. 원래 그리스어에서 나온 아름다운 꽃말에 기대어'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밤에 피는 양귀비는 악의 꽃으로, 아침에 피는 나팔꽃은 선한 덕목의 꽃으로 해석되었다.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이 거의 예외없이 마리아와 예수의 상징 꽃이 되고, 넝쿨을 뻗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담장을 기는 딸기꽃,제비꽃,패모속 따위가 겸손의 미덕을 나타낸 것은 꽃잎이 때마추어 피고지는 일처럼 자연스럽다. 특히 애기똥풀처럼 눈병에 좋은 약꽃을 소경을 눈뜨게 하신 예수의 기적 이야기와 연관시키거나, 딸기꽃의 세 갈래 꽃받침의 형태를 두고 성삼위일체의 상징으로 읽는 것도 네덜란드 꽃 정물의 특징이다.

사철 피는 꽃들을 모은 것은 화가 브뤼겔의 재치다. 봄이 꽃을, 여름이 씨앗을, 가을이 열매를, 겨울이 구근을 통해서 표현되었던 정물 재현 전통이 성모자의 도상과 어울리면서 향기로운 종교적 의미가 덧붙었다. 지상에서 볼 수 없는 천국의 풍경,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예술의 재간, 조각가의 끌이 새기지 못할 붓의 솜씨로 그림속의 꽃다발을 해석해 둔다면 우리는 브뤼겔의 입가에 5월 연꽃처럼 번지는 미소를 볼 수 있을것이다.

브뤼겔은 쉬이 시들지 않는 꽃을 그렸다. 진주한 튤립 종 셈퍼 아우구스투스를 지상의 향기로운 광영에 얹어서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바쳤다. 성모자의 그림은 꽃다발로 말미암아 경배화가 되었다. 루벤스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림속의 그림에 가두었다. 예수는 눈길을 들어서 그림 밖의 관찰자를 응시한다. 꽃다발을 장식하는 수많은 꽃들이 기필코 시들고야 말 운명이라면, 그림밖의 보는 이라고 해서 운명의 빛깔이 다를 리 없다.

그림 앞에 꽃을 바치는 자는 시드는 꽃과 시들지 않은 꽃이 던지는 냉엄한 유비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림 속의 풍경과 그림속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신비롭게 현신한 아기 예수의 눈짓이 보는 이의 옷깃을 붙들어 그림 속에 펼쳐지는 비밀스런 시각의 향연으로 초대한다. 구원을 중개하는 '마리아 메디아트릭스'의 역할이 꽃다발을 받쳐 든 천사들에게 위임되었다. 저곳에서 부터 이곳으로 나타난그림, 곧 '이마고'의 형상이 천국을 훔친 화가 루벤스의 솜씨로 완성되었다.


▶ 피터 홀스테인2세,<셈퍼 아우구스투스>,17세기 중엽, 32.4x21.1cm,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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