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84
등록일

2020.09.07

본문

겔 28:20-24, 고후 12:1-10

제 20-36호
하나님 은혜의 찌르는 가시

겔 28:20-24, 고후 12:1-10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의 신비한 세계까지 체험할 정도로 은혜의 최고봉에 올랐던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라고 하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가졌던 환상과 계시의 자랑을 억누르시기 위하여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본문 고후 12:7에서는 이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밤낮으로 성도들을 참소하고 파괴하고 시험하는 자입니다. 성도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자신 속에 두셨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고통이요 아픔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를 통해 사도 바울의 교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모든 개인이나 국가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이나 환난을 가리켰고,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이 가졌던 경우처럼 ‘육체의 가시’를 가리켰습니다. 모든 사람은 가시가 없는 평안한 삶을 소망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인과 국가에게까지도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경우는,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주님을 부인했던 일을 기억하고 괴로웠던 가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순간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민 20:1-13). 

  엘리야 선지자에게도 연약한 가시가 있었습니다(왕상 19장). 더군다나 사무엘 선지자에게도 두 명의 자식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삼상 8:2-3 말씀을 볼 때, 요엘과 아비야 두 아들은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利)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창 15-16장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못했던 약점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는 하갈이라는 이방 여자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삭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가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개인뿐 아니라 어떤 조직 기관 안에도, 국가에도 가시를 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 33:55 말씀을 보면, “그 땅의 백성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면 그 남겨둔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신 국가적인 가시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인의 가시나 어떤 단체의 가시이든지, 당사자에게는 매우 괴로운 것입니다. 마음속의 고통도 어려운 것이지만, 육체의 가시도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가시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는,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이유를 깨닫고 그 뜻대로 합당한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시를 주시는 이유는 겸손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졌던 높은 학문과 많은 지식, 그리고 신비한 영적 체험이 그를 교만하게 할 수 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만을 꺾으시고자 육체의 가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였던 모세도 40년간이나 바로의 궁에서 애굽의 모든 지식에 통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족을 돕다가 죽이는 바람에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40년간 처가살이라고 하는 가시에 찔리면서 겸손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시를 주셔서 하나님의 종들을 겸손하게, 낮아지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 16:18), 인류가 최초로 지었던 죄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만의 문턱에서 믿음으로 이 가시를 택하여서 하나님 앞에 끝까지 온전하게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두로 왕은 정치에 성공한 위대한 왕으로서 모든 길에 완전한 듯했지만, 그의 허물은 파괴와 멸망을 불러왔습니다(겔 28:1-24). 그의 교만이 스스로 그를 망하게 했습니다. 두로 왕의 오만과 허욕을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나아가, 두로 왕과 함께 일어서고 눕고 걸어가던 나라 ‘시돈’도 두로 왕을 모방하다가 패망하게 되는 무서운 심판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시를 주신 이유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고후 12:10 말씀을 볼 때,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시에 찔려 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도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형제들의 미움의 가시로 애굽에 종으로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가시에 찔리고, 마침내 옥에 갇히는 가시에 찔리게 됐지만, 이러한 가시들을 통해 요셉은 그의 신앙인격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동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요셉은 온갖 가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결 론 : 성도에게 가시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픔과 쓰라림을 줍니다. 

  사도 바울도 그 아픔과 쓰라림으로 세 번씩이나 가시를 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 가시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주님의 가시관을 생각할 때 우리의 작은 가시의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같이 그의 ‘곤고’를 기뻐하는 믿음이 가시를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고후 12:10, 8:13). 끝으로, 가시를 피하려만 하지 말고, 오히려 그 가시를 정복하고, 가시로 자신을 성숙한 신앙의 인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가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진정으로 가시를 이길 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704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경륜 2009-12-14 5771
703 순례자의 걸음을 영원한 고향에 굳게 세우소서 2009-12-14 3453
702 유구한 역사 속에서 구속 언약의 한 음성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 연대를 생각하라" 2009-12-18 4890
701 하나님의 구속 경륜 속에서 필역된 솔로몬 성전 2009-12-18 5045
700 열왕들의 역사 속에 감추인 구속사적 경륜 2009-12-24 3872
699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백성에게 친히 보이신 임마누엘의 징조 2009-12-28 4378
698 소망을 굳게 붙잡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진하자 2010-01-18 3683
697 애석하게도 오늘밤을 놓친 어리석은 부자 2010-01-31 3583
696 벳새다 빈 들에서 때는 저물어 가도 주님만 계신다면 2010-01-31 4020
695 산 소망 속에 날마다 생동하며 부흥하는 교회 2010-02-16 3177
694 날마다 우리의 삶이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삶 2010-02-16 14211
693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빠진 왕들 - 왜 빠졌을까? 2010-02-21 5216
692 구속사적 경륜 속에 메시아가 오기까지 성별된 족보 2010-03-03 3876
691 불길처럼 타올랐던 애국애족의 민족혼, 3·1정신을 기억하자 2010-03-07 3196
690 복음에 빚진 자 2010-03-22 5681
689 내 한 몸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조국 독립을 도모하여 2010-04-03 2716
688 메시아적 왕으로서 영광의 입성 (평화의 왕, 겸손의 왕의 입성) 2010-04-03 3702
687 십자가와 부활은 영원한 산 소망의 승리 2010-04-12 3559
68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진수 2010-04-28 3314
685 세상에서 가장 고상(高尙)한 지식 2010-04-28 3636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