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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19

본문

빌2:16-18

제 15-15호



빌립보서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기뻐하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옥중에 갇힌 상태에서도 사도바울은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의 기쁨은 세상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쁨입니다. 세상 기쁨은 물질이나 명예, 권세 등으로 인해 오는 기쁨이나 순간적이고 가변적인 기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누리고 있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은 이러한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을 통해 참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구원의 확신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사도바울의 기쁨은 구원받은 확신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복음, 십자가 복음, 부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샘솟듯 솟아나는 기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무소에 갇혀 있지만, 오히려 ‘내가 예수 안에 갇혀 있다’며 형무소를 주님의 품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일시적입니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대로 날아가는 먼지만도 못한 무익한 기쁨이 세상의 기쁨입니다(전 7:6).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큰 기쁨이 있다 해도 순식간에 슬픔으로 인해 한숨과 한탄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기쁨입니다. ‘헤헤~’ 웃다가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알고 확실히 체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구원받았다’ 믿어지기 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확신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게 됩니다. 밥을 먹으나, 굶으나 상관없이 일관된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의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롬 6:23절 말씀을 볼 때 아담의 후예인 인간은 모두 사형수입니다. 다 사형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영원한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참 성도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2. 주님을 사랑할 때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은 ‘먼저 사랑’입니다(요일 4:10,19).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와 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어디 가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에 감사 감격 하면서 얼마나 울었습니까?(렘 31:3)


민족들의 죄를 볼 때 당장 심판의 불을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선지자를 통해서 권고하시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깨닫고 눈물로 외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너무나 안타까와서 나 대신 나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사도바울은 롬 8:26절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요 3:16절 볼 때,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말씀만 들어도 얼마나 속에서 힘이 솟습니까?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다 해도 날개달린 새처럼 가볍게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변하거나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우리에 양이 없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다 할지라도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3. 산 소망을 맛본 자에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딛 3:7절 말씀을 보면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산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소망’이란 시간 속에 묻혀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 속에 묻혀 있는 소망도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이처럼 영원한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요 20:31). 또한 소망에는 상대적인 소망이 있는가 하면 절대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소망이 있는가 하면 하늘의 소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의 소망은 하늘의 소망입니다. 절대적이며 영원한 소망이기에 썩지 않고 망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맛보았기에 사도바울은 어떠한 환란과 핍박, 고난과 오해를 당한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허허 웃으면서 영원한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세계를 오가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산 소망의 축복을 함께 나눠주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옥중의 고통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기쁨, 언제나 감사, 언제나 만족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천한 자리에 처할 줄도 알고 존귀한 자리에 처할 줄도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저 영광스런 하늘의 소망이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꽉 차 있었던 것입니다.



결 론 : 성도의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는 그 차원이 틀립니다. 산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삶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망합니다. 순간순간 눈물과 한숨뿐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잠 10:28). 이러한 기쁨이 충만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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