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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11.13

본문

출 15:22-27

제14-45호


‘마라’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쓰다’라는 뜻으로, ‘괴롭다’, ‘쓰리다’, ‘애닯다’ 등의 파생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이 이름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물을 얻지 못해 사흘이나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 이르러 물을 얻었지만 써서 먹지 못함으로 인해 지어진 이름입니다. 룻기에도 나오미는 ‘즐거움’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고 하였습니다(룻1:20). 이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여인의 슬픔과 괴로움을 ‘마라’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마라’와 같이 예기치 않게 부딪치는 고통의 쓴 뿌리가 많이 등장하지만 오늘 본문처럼 신령한 나뭇가지를 던져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1.‘마라'의 고통 뒤에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마라’와 같은 쓴물의 고통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고통을 통해 성도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믿음으로 감당함으로써 더더욱 귀한 신앙의 연단과 성장의 열매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히 12:11절 말씀에 보면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라의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친아들 삼기 위함입니다. 한자성어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말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라’의 고통을 주신 이유인 것입니다. 

신 8:2-3절 말씀을 볼 때 “너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연단하되 은처럼 하지 않고 고난의 풀무에서 택한 것과 같습니다(사48:10). 그 결과는 마라의 단련을 통해 정금같이 나아오는 것입니다(욥23:10). 이를 깨달았기에 욥은 ‘마라’가 온 몸을 공격하고 요동치는데도 태연자약하게 적신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2.‘마라'의 해결, 엎드려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사람이 고통에 처하게 됐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입니다. 모세는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 얘기도 안했습니다. 오직 엎드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마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나뭇가지’를 지시해 주셨고, 그것을 통해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라’의 해결은 오직 엎드려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마 21:22절이나 막 11:24절 말씀과 같이 기도하고 받은줄로 믿으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눅 18:1절에 항상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온 백성들이 모여 모세를 죽이려 했습니다. 원망의 소리가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거기에 맞서지 않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에 여러 가지 쓴 고통의 일들이 있지만 기도할 때 모세같이 신기한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도 모세는 바란 광야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 40일 동안 정탐하도록 시켰습니다. 40일 동안 정탐한 후에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만 빼고 나머지 열 사람은 ‘마라’의 보고를 드렸습니다. “우리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습니다”하며 쓴 맛을 백성들에게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원망하게 되었고, 원망으로 인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며 다 멸절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신2:13-15). 그러므로 우리 삶에 어려움과 고통이 임할수록, 마라같이 쓴물을 만날수록 더더욱 간절히 기도할 때, 오히려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3.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마라’를 치료해 주시는 분입니다.

출 15:26절 말씀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병과 영혼의 병과 생활의 병을 다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세상의 모든 질고와 인간의 모든 삶의 슬픔을 짊어지려 오신 것입니다(사53:4).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 개인과 직장과 나라에 마라 같은 쓴 것이 홍수같이 밀어닥친다 해도 모세처럼 엎드려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단 세상이 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땅’도 고치시는 분입니다(대하7:1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좌우편에 두 명의 강도도 함께 달렸습니다. 흉악한 죄인들이었지만 그중에 우편에 달린 강도는 회개하며 예수님께 자신을 맡길 때 낙원에 이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무덤에 계신 3일 동안 노아 때 죽은 영혼들에게 가서 전도하시다 3일 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마라같이 쓴 세상을 치료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치료의 역사, 권능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결론: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관심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속에 불신앙과 원망 따위를 빼내기 위해 ‘마라’를 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면 안 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생명나무 십자가가 함께하실 때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바뀐다는 것을 믿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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