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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미지아니노의 성모는 자연 관찰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신의 우미를 으뜸 가치로 삼는 신플라톤주의의 뼈대에 살을 붙였다. 미학의 사상이 자연의 모방을 앞질렀다. 천품의 '타고난'아름다움이 예술의 '가꾸는'아름다움을 눌렀다.

미리아의 오른손은 검지와 중지를 벌리고 있다.  '베누스 푸디카', 곧 순결한 아름다움이 자신의 정체와 다르지 않다는 손짓이다. 바닥에 겹쳐 둔 두 개의 발방석 위에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길게 가로로 누운 아기 예수의 허리를 편안하게 받쳐 주려면 차라리 왼발을 올려놓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잠든 아기는 왼팔을 맥없이 늘어뜨렸으나 오른손은 어머니의 옷자락을 놓지 못한다.

마리아는 머리를 아래로 비스듬히 숙여서 아기를 내려다본다. 어깨 뒤로 늘어선 신전 기둥들은 다가올 예수 태형의 수난을 예고한다. 죽은 듯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성모의 옷자락이 바람 없이 나부낀다. 옷자락을 뒤흔드는 바람은 성모의 내면에 몰아치는 비극의 예감이다.

그림 왼쪽 상단에 붉고 푸른 휘장이 크게 젖혀져 있다. 예수 탄생의 미스터리가 한눈에 드러났다. 인물 구성의 평온한 균형을 비틀면서 다섯 천사가 그림 왼편에서 몰려든다. 천사들의 존재는 그림을 들여다보며 수수께끼의 실타래를 풀어 가는 보는 이의 심리적 반응을 순차적으로 선취한다. 천사가 든 은제 항아리는 아기를 잉태한 모태의 견고한 상징일까? 또는 가나의 혼인 잔치를 흥겹게 했던 기적의 포도주가 담겼을지 모른다.

배경 오른쪽에 늙은 예언자가 서 있다. 황량한 신전 앞마당에서 두루마리 예언서를 펼쳐 들고 머리를 돌려 외친다. 동정녀 잉태를 예언했던 이사야의 모습일까? 그와 마주 선 또 한 사람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발바닥에서 발목까지만 그려진 붓의 유령이다.

먼 지평선이 낮게 깔려 있다. 보는 이의 시점이 덩달아 낮아졌다. 그러나 원주 아래 네모난 받침돌들의 대각선 모서리를 연장해서 구해지는 시선 거리는 무한히 멀다. 이로써 보는 이의 시점은 시각이 닿을 수 없는 궁극너머까지 밀려났다. 그만 한 시선 거리에다 눈을 세우고 읽는다면 시각 피라미드의 어느 횡단면에도 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설자리가 없다. 화가는 인간과 자연을 보는 하나의 시점에다 무한과 신성을 보는 또 다른 시점을 보탰다. 한 그림에 두 개의 무한 원점이 들어섰다. 화가의 붓은 환영과 기적을 응시하는 시각의 위험한 극한에서 서성인다. 요절한 화가 파르미지아니노는 그림을 미완성을 남겨 두었다.

▶ 파르미지아니노,<목이 긴 마돈나>, 1534~1540년, 219x135cm,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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