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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3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침대에서 일어나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사무엘 하 11장이 전하는 다윗과 유부녀 바쎄바의 바람난 이야기는 신학자들에게 퍽 난감한 주제였다. 목자 시절 돌팔매로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이 충직한 부하를 무고하게 죽이고 과부를 아내로 취한 불의를 저지르다니 도무지 성군답지 않은 일이었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는 성서의 문맥에서 비켜서서 다윗 왕의 음행 대신 하나님의 죄사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윗을 욕망에 굴복하는 인간적 나약함의 사례로 보고, 죄인에게조차 한량없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인간은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냈다.

아우구스티누스, 세비야의 이시도루스 그리고 브루노는 다윗 왕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다윗을 구약의 예수로 보거나 바쎄바의 목욕을 '예수 세례'의 예형으로 해석하고 우리야는 악마와 동일시했다. 이로써 우리야를 사지로 몰아서 죽게 한 다윗의 행위가'구원사적으로'정당화되었다.

궁성 외벽 모퉁이에 맑은 샘물이 고였다. 샘물에 발을 담근 바쎄바는 궁정의 귀부인처럼 차려입었다. 그녀의 아랫배가 불룩하다고 해서 벌써 아기를 가진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팔 소매를 걷어붙인 하녀가 물을 떠서 정성스레 발을 문지르는 동안 바쎄바의 얼굴에는 고혹적인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자신의 미끈한 다리를 훔쳐보는 사내들의 더운 시선을 의식한 걸까?

크라나흐는 중세적 관점에 따라 성서를 읽었다. 바쎄바의 목욕은 '예수 세례'나 '교회로의 초대'가 아니라 '패덕의 사례', 곧 '엑셈플롬 말룸'으로 재해석되었다. 바쎄바는 자신의 몸뚱이를 함부로 드러내어서 어리숙한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무서운 악녀로 변신했다. 육탐에 빠져서 의롭고 바른 길을 내팽개치는 남자들로는 바쎄바에게 홀린 다윗 이외에 이방의 후궁들과 밤을 달구었던 솔로몬, 들릴라의 달콤한 품에 들었다가 두 눈을 앗긴 삼손, 필리스의 아래춤에 철학의 금자탑을 쑤셔박은 아리스토텔레스, 헤라의 휘둘림을 받아서 아내 데이 아네이라가 건넨 독 묻은 옷을 걸쳐 입고 장작불에 자신을 살라야 했던 헤라클레스가 화가들에 의해서 자주 그려졌다. 이 경우 그림의 줄거리는 경고와 조롱의 의미로 윤색되게 마련이다.

성벽 마루에 올라선 다윗이 수금을 탄다. 사울 왕의 광기를 진정시키려고 연주하던 수금이다. 다윗은 지금 꿈틀거리는 욕망의 광기를 다스리는 걸까? 왕의 옆자리를 지키는 한 수하가 침울한 표정으로 턱을 고인다. 따끔한 교훈 그림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 루카스 크라나흐,<바쎄바의 목욕>, 1526년, 36x24cm, 달렘 미술관,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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