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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머리가 바위에 누웠다. 칼을 쥔 다윗이 골리앗을 내려다본다. 성서에는 다윗이 쓰러진 블레셋 장수에게 달려가 그자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했지만 화가는 승리의 장소를 한적한 산중턱 벼랑으로 옮겨 놓았다. 떨어진 목에서 핏물이 흘러 마른 흙을 적신다. 핏기 빠진 거인의 머리가 짝 잃은 멧돌처럼 뒹군다.

골리앗을 내려다보는 다윗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굳게 다문 입술은 증오를, 그러나 내려다보는 시선은 연민을 내비친다. 돌과 칼을 쥔 손은 정의와 전의를, 그러나 허리를 구부려 죽음을 응시하는 자세는 동정과 자비를 드러낸다. 골리앗과 대적했던 '볼이 붉은 잘생긴 어린아이'가 젠틸레스키의 그림에서 몰라보게 성숙해졌다.

반종교개혁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교회에 전시되는<다윗과 골리앗>의 주제를 종교 이념으로 포장했다.<아브라함과 이사악>,<유딧과 홀로페르네스> 등의 주제에서 약한 이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강한 적을 물리친다는 교리가<다윗과 골리앗>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여기서 이교족의 거인 골리앗은 바티칸의 권위를 위협하는 프로테스탄트를,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소년 다윗은 가톨릭을 의미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맞대결이나 어린 소년이 큰 칼로 거인의 어깨에서 머리를 끊어 내는 참혹한 장면들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잘린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어른스런 다윗의 도상이 흔해진 것도 중요한 변화다. 이때 골리앗을 바라보는 다윗의 시선은 연민과 증오의 이율배반적 감정을 드러낸다.

골리앗의 잘린머리도 두가지 유형으로 재현된다. 머리가 땅을 향해 엎어져 있으면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영원한 저주를, 하늘을 향해 돌려져 있으면 구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회개와 재개종의 실마리를 열어 둔 것이다.

젠틸레스키는 다윗을 어두운 벼랑 앞에 세워 두었다. 어른스런 그의 모습은 밀라노의 위협 앞에 피렌체의 자존심을 지켰던 미켈란젤로의 다윗처럼 당당하다. 불레셋의 위협이 사라졌으니 어두운 벼랑은 다윗의 장애가 되지못한다. 벼랑 틈 바구니에 힘겸게 뿌리내린 들풀이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밀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위협적 공세를 누르고 승리한 바티칸의 파란 생명력이 새로운 표상을 얻었다.

▶ 카라바조,<다윗과 골리앗>,1605-1606년, 125x100cm,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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