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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자 모세의 미디안에서 40년

애굽의 왕자로 성장한 모세. 그는 노예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애굽의 최고 학문과 기술(군사, 건축 등), 종교교육을 받았으며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행7:22). 또한 유아기에는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여호와에 대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모세는 장성하는 동안 수많은 고뇌와 갈등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바로공주 핫셉수트의 양아들이지만, 애굽인들에게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모세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갈급함이 강했을 것이다. 그의 지위가 높아지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면 할수록 자신의 민족 미래에 대한 고민은 나날로 커졌을 것이다. 더욱이 모세는 장년이 되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히브리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원해 줄 지도자라고 자각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출애굽기 2장 11절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와 사도행전 7장 23-25절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에서 잘 나타난다.

인간적 의지로 실패한 해방운동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의해 죽음의 강에서 살아난 모세는 탁월한 학술과 지혜, 언변과 지도력을 갖춘 존재로 장성했다. 그가 40세가 되던 때에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애굽의 왕자로 장성했던 그가 히브리 노예를 감독하는 감독관을 살해한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동족들은 오히려 애굽인에게 모세의 살인을 밀고하였다.
모세는 나름대로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도전했지만, 그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피했다. 핫셉수트의 섭정(攝政:임금을 대신하여 통치함)으로 통치 권력이 약한 투투모세 3세는 자신의 정적인 모세를 제거하는데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모세 입장에서는 애굽에서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권력적 배경에서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도모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살인행위를 '믿음'에 의한 것을 해석하고 있다(히11:24-26). 모세가 고귀한 왕자의 신분을 마다하고 학대받는 형제들을 위해 솔선해 나선 것은 믿음의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모세 입장에서는 좌절과 비탄 속에서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훈련의 기간'을 주셨던 것이다. 즉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권한과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훈련과 준비의 기간 40년
지금의 시나이 반도인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또는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그곳에서 40년간 칩거하였다. 지금처럼 민족 해방을 위한 게릴라전이나 테러, 투쟁 조직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망명자 모세는 40년간을 어떤 활동도 하지 않고 양치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방치되었던 40년의 세월은 모세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애굽 왕자로서의 자만심을 버리게 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광야생활에 적응하는 훈련의 기간이었다. 즉, 40년은 모세가 인간적 의지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훈련하는 '준비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모든 신앙적 훈련과 준비를 마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호렙 산(시내 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 사건은 모세에게 있어 소명을 바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40세에 애굽으로 도망쳐 나온 모세. 그 후 40년 만(80세)에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킨 그의 인생여정에서 40이란 숫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40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하는 숫자 중의 하나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40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으로 한 세대의 대략적인 기간을 의미하는데 사용되고, 인간의 생존 내지는 존속 면에서 긴 기간임을 나타낼 때 쓰였다. 또한 40일이나 40년은 중대한 사태가 계속되는 기간으로 시험과 준비, 회개, 징벌의 기간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역사의 구속에 있어서 중요한 새로운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
노아의 대홍수 때 비가 40일간 내렸고(창7:4), 다윗과 솔로몬은 각각 40년간 통치했고(삼하5:4, 왕상11:41),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40일이 지나면 심판이 내릴 것이라며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욘3:4). 예수도 40일간 광야에서 금식 기도하셨으며(막1:13), 부활 후 40일간 지상에 머무르셨다(행1:3).


특히 출애굽과 연관시켜서 볼 때 모세가 40세에 형제들을 돌아보고자 했고, 그 후 40년간 미디안에 숨어살다가 80세에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행7:30).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 시내 산에 있었고(출24:16), 가나안 정탐꾼들이 40일간 정탐했고(민13:25), 이스라엘 불신으로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다(민14:33).
모세에게 있어 미디안 광야 40년의 기간은 인간적 시각에서는 허송세월을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신앙적 입장에서는 애굽의 자만한 왕자에서 하나님이 쓰고자 하는 겸손한 종으로 탈바꿈시킨 '훈련의 기간', '준비의 기간' 이었다.

참고 문헌:
• 엄원식의 <구약성서의 수신학> (대전,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84)
• 토를라이프 보만의 <히브리적 사고와 그리스적 사고의 비교> 허혁 역(서울, 분도출판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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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백과대사전 Vol.6> 민영진 편(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1)
• 배재민의 <새로훈 형태의 구약연구> (서울, 총신대출판부, 1982)
• 존킹의 <수와 신비주의>, 김창국 역(서울, 열린책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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