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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천년의 신앙으로 하루를 산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빛의 속도는 초속 29만7천6백Km다. 이러한 빛보다 빠른 속도의 물질이 있을까?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보다 빠른 개념을 ‘타키온(tachyon)’이라고 한다. 빛의 속도를 광속이라 했을 때, 타키온은 초광속인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론적으로는 훨씬 더 작은 시간의 단위를 ‘크로논’이라고 한다.

타키온과 크로논은 우리가 보는 빛보다 빠르며 지구상의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계산되는 나이를 전혀 먹지 않는 다른 세계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을 조금이나마 뒷받침 한다고 볼 수 있다.

타키온과 크로논
고대의 인도인들은 일초를 삼억 조각으로 나눔으로써 우리가 ‘지금’이라고 표현하는 순간을 계속 좁히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이론적으로는 훨씬 더 작은 시간의 단위, 곧 ‘시간 양자’(  ? 소립자, 미립자)인 ‘크로논’이 얘기되고 있다. 이 시간 양자의 수명은 측정 가능한 가장 작은 거리인 10-14cm를 우리의 우주에서 측정된 최고의 속력, 곧 초속 약 3십만Km의 광속으로 나누어서 산출한다. 이렇게 하면 물리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시간의 단위인 10-24초를 얻게 된다. 이렇게 가장 작은 시간 단위인 ‘지금’이라는 지점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빛의 입자, 즉 광자(??를 추월하는 개념으로써 ‘초광속’은 빛의 한계를 뛰어넘고 시공과 우주를 떠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시공으로부터 자유로운 구조로, 현대 물리학에서는 ‘초공간’(hyperspace)이라고 표현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 이론은 콜롬비아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제럴드 파인버그가 1967년에 광속보다 빠른 입자, 소위 말하는 타키온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시작됐다.

초공간의 경험
이런 초공간에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나이를 먹지 않게 될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많은 얘기 가운데, 우리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100년 도는 그 이상의 세월 후에 사라졌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현실 속에 나타났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종종 있다. 중요한 것은 사라졌던 기간 동안에서 그 사람의 지구의 나이를 초월, 즉 노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의 광야생활 가운데 단 한 벌의 옷과 신발을 가지고 생활했다. 그 옷과 신발은 해어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신29:5). 장정만 60만3천550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과 신발은 지구의 과학 용어를 빌리자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타키온과 크로논이라는 초공간 속에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원리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창세기, 특히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으로 므두셀라는 969세로 가장 장수한 사람이다. 이 외에도 아담 930세, 셋 912세, 에노스 905세, 게난 910세, 야렛 962세, 노아 950세로 역시 거의 천년의 삶을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당시 이들의 살았던 지구환경은 지금의 상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오염되지 않은(오존층이 파괴되지 않는 등)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성경적인 정확한 근거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천년 가까이 살기는 했지만 천년을 채우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시편90편4절에는 천년을 ‘밤의 한 경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천년이 안 되는 사람’이 예표 하는 것은 주께서 말씀하시는 온전한 하루의 신앙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그들의 나이를 통해 인생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의미하는 온전한 하루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루의 신앙은 타락으로 어둠인 인간이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어드릴 때 가능하다(요1:5, 눅17:22). 이 하루가 되지 못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성경은 “하루살이에게도 눌려 죽을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욥14:19). 창세기 5장의 인물 중에서 ‘에녹’만이 하나님이 하늘로 데려가셔서 이 세상에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창5:21-24). 이 세상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는 말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인해 승천했다. 세상의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초공간의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천년의 신앙으로 하루를 사는 성도
타키온과 크로논은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영원히 산다는 부활과 변화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론이다. 하나님은 보이는 빛을 통해서 영원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하셨다. 성경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타락한 인간이 부활과 변화의 소망을 갖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 신앙이 죽어서 부활이 아닌, 살아서 변화의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크로논과 타키온이라는 과학이론의 발견도 가능하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천년 같은 신앙으로 범사를 사는 하루의 성도가 되기를 하나님은 지금도 호소하고 계신다.

 참고 문헌 :
● 엄원식의 <구약성서의 수신학> (대전,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84)
● 토를라이프 보만의 <히브리적 사고와 그리스적 사고의 비교> 허혁 역
 (서울,분도출판사,1993)
● Hward Eves의 <수학사> (고대및 중세편),이문영 역(서울,경문사,1991)
● <성서백과대사전 Vol.6>  민영진 편(서울,성서교재간행사,1981)
● 배재민의 <새로운 형태의 구약연구> (서울,총신대출판부,1982)
● 존킹의 <수와신비주의>, 김창국 역(서울,열린책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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