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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6

이방인 첫 세례지로서의 역사적이 일이 일어났던 곳이 가이사랴였다.
가이사랴에 주둔한 로마군 100명을 지휘하는 장교였던 백부장 고넬료는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로부터 예수에 관한 말씀을 직접 듣기 위해서 베드로를 가이사랴로 모셔오게 했고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함께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경청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의 말이 끝났을 때 그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로 일치되었다.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그들에게 베드로는 세례를 주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기독교는 본래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도 유대인 여인의 몸을 통해 탄생했고, 그의 제자들도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처음에 예수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유대인이 아닌 로마 제국 장교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기독교는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는 범세계적인 종교로 전환하게 되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안의 항구였다. 오늘날 이스라엘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하이파에서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37km 내려가면 가이사랴와 만나게 된다. 가이사랴는 지중해안에 있던 다른 항구들과는 달리 항구로서는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 탄생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에 의해 가이사랴는 항구로 개발되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 Caesar)’는 헤롯 왕에게 가이사랴 지역을 하사했다. 건축광이었던 헤롯은 감격하여 그곳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 항구를 건설하였다. 헤롯은 파도가 심한 이 지역에 길이 600m와 300m의 방파제 두 개를 만들었다. 파도가 심한 해안에 그렇게 큰 방파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현재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헤롯은 항구에 연결하여 큰 도시를 건설하였다. 막대한 돈과 인력을 동원한 끝에 10년 만에 거대한 항구도시가 완성되었다. 헤롯은 새 도시의 이름을 로마 황제 가이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가이사랴(Caesarea)’라고 지었다.


가이사랴는 시장터 아고라(Agora)와 경기장, 야외 원형극장, 로마식 공중목욕탕을 구비, 당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대도시였다.
가이사랴가 완성된 후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 제국은 그 곳을 유대 지방의 행정 수도로 삼았다. 로마에서 파송한 총독관저와 행정본부가 이 도시에 들어섰다. 로마 제국시대에 가이사랴는 유대 지역의 정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가이사랴는 십자군 때(서기 1099~1291년)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가이사랴는 해상로를 통해 유럽에서 성지로 온 십자군을 맞아들이는 관문이 되었다. 십자군은 가이사랴에 거대한 요새를 건설했고, 그 유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나자(1291년), 십자군의 아성이었던 가이사랴도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중해안에서 가장 번성하던 항구도시에서 망각의 도시가 되어버린 가이사랴는 600년 이상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고고학자들에 의해 과거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복원작업이 끝난 가이사랴의 유적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야외 원형극장이다. 현재 이곳은 예술가들의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매년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국제적인 규모로 ‘이스라엘 음악제’가 열린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 바이올린의 대가 아이작 스턴, 명지휘자 주빈 메타와 같은 세계 정상의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연주하였다. 2,000년 전에 건설된 로마식 야외 원형극장에서 지중해의 석양을 바라보며 세계적인 거장들의 연주를 듣는 것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 된다.

가이사랴 유적 가운데 장관은 로마식 수로(水路)다. 가이사랴에는 먹을 물을 공급하는 샘이 전혀 없다. 그래서 이 도시를 건설할 때, 12km 떨어진 갈멜 산줄기의 샘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만들었다. 실로 대역사(大役事)가 아닐 수 없다. 이 수로의 일부가 위용을 자랑하며 지금도 서 있다.
고고학자들은 가이사랴 발굴 때 놀랄 만한 유물과 유적을 많이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돌에 글자가 새겨진 기념비이다. 비에는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예수를 재판했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가이사랴에 주재했었다는 증거다.
가이사랴가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곳이 사도 바울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세 번째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그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지만 가이사랴의 기독교인들은 울면서 바울을 만류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틀림없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고난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만류하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나는 감옥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죽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고, 염려했던 대로 유대인들에게 잡혀 큰 수난을 겪었다.
결국 바울은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2년 동안 그 곳의 감옥에 감금되었다.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을 보낸 후,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황제의 재판을 요구했다. 바울은 죄인의 몸으로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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