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98
등록일

2006.08.06

아브라함의 손이 칼을 놓쳤다. 손끝을 떠나서 낙하하는 칼이 허공에 얼어붙었다. 칼날 가장자리에 이삭얼어붙은 살갗이 노란빛으로 어리었다. 칼을 떨구었으니 이삭의 목이 달아날 염려도 없어졌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장작더미에 누운 소년은 구원의 낌새를 알지 못한다.

칼날이 땅을 치기 전 짧은 정적의 순간이 목을 빼고 누운 이삭에게는 다시없을 영원처럼 아득했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배경과 주변 소재들을 어둠속에 밀어두었다. 그러나 공간을 모두 지워 버린 것은 아니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배경을 대신해서 공간을 직조한다. 평면에서 확장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배역들이 주고받는 행동과 반사 행동의 논리다.

이삭과 아브라함과 천사는 세 축으로 달리는 인물 구성의 뼈대를 구성한다. 매화 뿌리에서 줄기가, 줄기에서 다시 가지가 뻗어 나는 것처럼, 누운 이삭의 동세에서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의 동세에서 다시 천사의 몸뚱이가 이어진다. 이삭과 천사 사이를 잇는 아브라함은 중간 고리답게 허리를 접고 비틀었다.

이삭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촉지적이라면 아브라함과 천사의 관계는 시각적이다.
렘브란트는 숫양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나귀도, 하인들도 빼 두었다. 이삭의 눈꺼풀 위에 배반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죽음의 빛깔을 빌려서 그림 구석구석 어두운 그늘을 드리워 두었다.

이삭은 알몸이다. 어둠 속에서 이삭이 밝게 빛난다. 그의 몸을 훓어내리는 빛은 칼날의 번득임보다 차갑다. 두 팔을 결박당한 이삭은 두다리를 잔뜩 오므렸다. 독수리 발톱 같은 아버지의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을 감싸 누르는 순간 오금이 졸아붙었을 것이다. <독수리에게 붇들려 가는 가니메데스> 처럼 오줌을 질금거렸을지도 모르겠다.

▶ 렘브란트,<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635년,193.5x132.8cm,에르미타주,페터스부르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38 [성지순례]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성당 2006-08-10 3021
137 [성지순례] 니케아와 성 소피아 성당 2006-08-10 31136
136 [성지순례] 사마리아 상아궁전 2006-08-08 3730
135 [수의 상징] 성경에 나타난 히브리인의 산술법 2006-08-07 3965
» [성화읽기] 렘브란트의 아브라함 2006-08-06 3792
133 [찬송가 해설] 내 평생에 가는 길 (470장) 2006-08-05 4632
132 [성지순례] 매달린 교회 (Hanging church) 2006-08-04 2372
131 [성지순례] 스콜라스티카수녀원 2006-08-04 3076
130 [성지순례] 아브라함과 이삭의 고향(시리아) 2006-08-04 4280
129 [성지순례] 아라랏 산 2006-08-04 4057
128 [성화읽기] 카라바조의 아브라함 2006-08-02 3867
127 [성지순례] 사도바울이 갇혔던 빌립보 감옥 2006-08-01 5011
126 [성지순례] 성 이레네성당 2006-07-26 3710
125 [성지순례] 성 계단성당(Scala Santa) 2006-07-25 3916
124 [성지순례] 다소의 사도바울 기념교회 2006-07-25 3991
123 [성지순례] 종려의 성읍 '여리고' 2006-07-23 4768
122 [성지순례] 모까땀 동굴교회 2006-07-18 3887
121 [성지순례] 베드로 동굴교회 2006-07-17 3701
120 [성지순례] 맛사다(Masada) 2006-07-17 30011
119 [성지순례] 루디아 기념교회 2006-07-17 4363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