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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2

스토머의 그림에서는 예수가 오른쪽에서 등장한다. 그림읽기의 방향을 거스르는 갑작스러운 출현이다. 사도들의 반응도 의외롭다. 기적을 목도한 제자들의 표정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는 요한 20장의 기록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누가 24장과도 다르다. 누가는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고 기록했다.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을 품은 그들에게 예수는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 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하시며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

토마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신경 쓰지 않는다. 세명의 자제는 대개 의심-확신-신앙의 심리적 변화의 세 단계를 하나씩 맡게 마련이지만, 스토머가 발탁한 배역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이들은 부활 기적의 놀라운 증거보다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투르기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의심하는 토마가 검지와 중지를 곧게 펴서 상처를 후비자 예수는 두 팔을 벌리고 상체를 뒤로 젖힌다. 고통의 반사 동작이다. 손등이 드러나지 않아서 못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두 손의 표정을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읽어도 좋다. 토마를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은 인자스런 애정과 따뜻한 긍휼로 넘친다. 토마의 손가락이 예수의 창상 아래 그림자를 드릴운다. 롱기누스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창으로 찔렀을 때 핏물의 흔적이 같은 모양으로 남았을 것이다.

스토머는 제자들의 표정을 어둡게 처리하고 예수를 화면 무대의 주역으로 부각시켰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예수의 얼굴이 어둠에 묻히고 제자들의 얼굴에 집중광이 뿌려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해결이다. 카라바조가 제자들의 심리적 반사의 편향을 표현했다면, 스토머의 관심은 부활 기적의 설득력 있는 증언에 있다. 두 화가 모두 어둠의 배경 위로 선택된 소재들을 빛의 끌로 새겨 올리는 회화적 양감 기법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같은 길을 걷는다.

토마가 등을 돌리고 있다.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불신과 신앙 사이를 오가는 토마의 인간적 방황은 보는 이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왼쪽에 서 있는 제자는 옆구리 상처를 보지 않는다. 토마는 예수의 육신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주시하면서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배경 어둠 속에 숨은 또 다른 제자는 그림 밖을 내다본다.

예수의 옆구리 창상을 더듬는 토마의 손길은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의심을 버리고 고백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 마티아스 스토머,<의심하는 토마>,1614년 이후, 125x99cm,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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