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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6


 이번에는 르네상스의 또 하나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그림을
소개하고자 한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다른 2명의 괴팍하고 무례한 천재화가들과는 다른 성품의 화가였다.
뛰어난 그림 실력과 겸손하고 친절한 성품을 겸비한 그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라파엘로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당시 추기경 비비에나는 자신의 조카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할 정도였고 당대의 미술사가 바자리는 그의 미술가 평전에서 라파엘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기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라파엘로는 1520년 자신의 생일날 3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라파엘로의 그림들 중에는
“성모자상”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잘 알려져 있다.
한 점, 한 점이 모두 다 그야말로 위대한 예술작품이지만
특히, <초원의 성모, 1505년 작), <대공의 성모, 1506년 작>,
<의자의 성모자, 1513년 작>등이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다.
라파엘로의 성모상은 복제판을 통해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새삼 감동을 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그의 성모자상은 참으로 명료하고 아름답다.
그의 작품들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단숨에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되나, 실은 이 같은 형상을 끌어내기 위해
화가는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거쳤다.

이 중<대공의 성모>는 단순성의 조화가 극치를 이룬다.
이 작품에는 마리아와 예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으며, 배경도 어둡게 처리되었다.
다소곳이 고개를 아래로 숙인, 어둠속으로 몰입되는 듯한
마리아의 얼굴, 자연스럽게 늘어트려진 옷자락 속에 싸인 신체의 입체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확고하고 애정 어린 자세 등 모든 것이 완벽한 균형의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 이것들을 약간만 변경해도 그것이 전체의 균형을 깨트리게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도에는 긴장감이라든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전혀 없다. 이 그림은 마치 이것 이외의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없으며 태초부터 그렇게 존재했었던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자연스럽고 단순한 그림에서 풍겨나오는 성스러움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이 그림에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로부터 배운 “스푸마토(Sfumato)”기법을 활용, 어둠 속에서 고요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는 마리아의 윤곽선을 선명하게 그리지 않고 흐릿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서 완전함의 기준으로 간주되어 왔고,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진실로 ‘고전적’이다. 이 작품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1)
 


또 다른 그림<의자의 성모자>는 라파엘로가
로마에서 명성을 날리던 1513년경에 제작한 것으로
현재 피렌체의 피티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의자의 성모자>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그림임에도(지름 71㎝) 불구하고 라파엘로의 수많은
성모자상 중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색상의 처리, 형태의 유희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딱딱한 사각형 액자에서 벗어나
톤도(Tondo)라고 불리는 둥근 액자에 담겨 있다.

이 둥근 캔버스 안에 화가는 성모자와 아기 요한의 모습을 멋지게 조화시켰다. 화면 가득히 인물이 차 있지만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천진난만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관람자를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다.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성모는 이제 아련한 여인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강한 여인이요, 한 아이의 보호자이다. 사실 인류를 위해 바쳐질 자식을 기르면서 강하지 않고서야 어찌 견디겠는가? 또한, 주지하듯이 예수는 남편 요셉의 아들이 아니지 않은가? 마리아 자신은 육신의 어머니로서 예수를 키웠겠지만 예수로 인해 어찌 남편과 관계에서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우리는 진실로 마리아의 모성애에 대해 감탄치 않을 수 없다.

성모자상 뒤에 세례자 아기요한이 자신을 상징하는 털옷을 입고 두 손을 모은 모습으로 등장함으로 화면에 공간감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훗날 겪어야 할 수난을 예고한다. 여기 등장한 세 인물은 가만히 앉아있음에도 그림의 모든 부분이 마치 나선형으로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 방향으로 붓질이 된 아기 예수의 노란 옷은 그 반대 방향으로 붓질된 마리아의 두건과 대조를 보이며 생동감을 더해준다.

색상의 처리 또한 놀라워서 화면 중심의 아기 예수가 입고 있는 황금빛 의상은 마리아가 어깨에 두른 초록색 숄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마리아의 붉은색 옷도 이에 뒤질세라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차갑고 따뜻한 느낌의 색상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화면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림의 주요 색상인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이 이보다 조화를 이룬 그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역동성이 느껴지는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정지되어 있는 것은 바로 전경(前景)에 있는 의자의 등받이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방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종류로 밝혀진 이 의자는 이들이 천상이 아닌 지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화면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정(靜) 가운데 동(動)을 표현하고 성스러움 가운데 세속의 미를 살려내는 라파엘로 예술의 정수(精髓)를 보는 듯하다. 너무나 사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표정으로 인해 당시의 사람들은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마리아의 출현을 직접 목격하고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믿었을 정도였다.
라파엘로의 그림실력에 대한 찬사는 그의 묘비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전략) 여기 저 라파엘로가 묻혀있느니 자연은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에게 정복당할까 두려워했고 그가 죽을 때 자기도 죽을까 두려워했다.2)


윤 경희(독립 큐레이터)

1)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예경, pp238-246.

2) 고종희,『명화로 읽는 성서』, 한길아트, pp9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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