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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보르도네는 바쎄바의 목욕장면을 대낮의 밝은 햇살 아래 재현했다. 그림 구성은 명료하다. 분수대를 샘터로 알고 목욕을 준비하는 바쎄바와 그녀를 시중하는 두 여인이 구성의 전면을 차지한다. 잎과 열매가 무성한 레몬 나무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의 목욕 잠연을 보는 이의 은밀한 즐거움으로 만든다. 이로써 그림을 보는 이와 다윗은 훔쳐보기의 공범이 되었다.

분수턱에 걸터 앉은 바쎄바가 눈부신 알몸을 드러낸다. 여인의 둥근 젖가슴과 둔부는 파란 레몬 열매처럼 암파이지게 영글었다. 알몸의 여인이 하체와 상체의 방향을 바꾸고, 왼팔을 들어서 가슴을 감추었다. 허벅지를 밀착하고 두 다리를 넓게 벌린자세는 낯선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림을 들여다보는 이는 궁정 난간에 머리를 내민 다윗처럼 마른 입맛을 다셔야 할 것이다.

보르도네는 바쎄바의 목욕을 '예수 세례'의 예형으로 보았다. 파란 옷을 걸친 시녀가 세례 요한의 임무를 맡았다. 무거운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따르는 시녀의 자세는 자칫 묘기에 가깝다.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 바쎄바와 물주전자를 높이 든시녀는 요단강에 몸을 담그고 두 손을 모은 예수와 그의 머리 우에 물을 끼얹는 세례자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보르도네는 목욕장면에다 샘터나 강물 대신 대리석 분수대를 설치했다. 바쎄바 주제의 그림에 세례반을 세워 두는 11세기 이후 회화적 관례를 따랐다. 노란 옷을 입은 시녀는 또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여러 제자 가운데 베드로의 발을 씻기는 예수의 독립 유형이 800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으니 보르도네가 물랐을 리 없다. 또는 신부에게 구애하거나 결혼 생활의 교훈을 설명하는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부의 발을 씻기는 신랑'의 주제 유형에서 소재를 빌려왔을 가능성도있다.

궁성 2층에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는 좁쌀 만한 이는 다윗이다. 그렇다면 소실점에 맞닿은 무지개 문을 향해 말을 달리는 군인은 바쎄바의 남편 우리야일 것이다. 다윗이 우리야에게 출전명령을 내린 것은 바쎄바와 정을 통하고 아기를 가진 다음의 일이지만 보르도네는 개의치 않았다. 바쎄바의 목욕 장면에서 여인의 알몸연기를 부각시키고 다윗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처리하는 것은 15세기 이후의 경향이다. 그림상단에는 건축군이 들어섰다. 그림 하단의 감각적인 목욕장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들이 '원근법적'으로 정렬했다. 만약 그림의 허리를 끊어서 둘로 나눈다면 손색 없는 건축 그림과 성서 그림이 한 점씩 나올 것이다.

화가는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가 1537~1547년 사이에 펴낸<건축의 다섯 가지 유형에 관한...규칙들>을 읽고 무대의 배경 건축을 다윗의 궁성 건축으로 빌려 왔다. 세를리오는 희극,비극,전원적 사튀로스 극을 구분해서 무대 장치의 배경으로 세울 수 있는 건축의 종류와 쓰임새를 모두 다르게 정리했지만, 보르도네는 극장,시청,로지아,원형 건축에다 기념주, 오벨리스크까지 알뜰하게 인용했다.

보르도네의 그림에서 상단의 건축 소재와 하단의 성서 주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수련 과정의 병아리 화가들이 보고 배우기에 적당하다. 문헌 기록을 읽고 그림 구성을 짜는 일, 그림의 인물 구성을 '예수 세례'나 '베드로의 발을 씻기는 예수'등 다른 성서적 사건과 유형적으로 관련짓는 일, 줄거리와 어울리는 건축을 배경 장치로 골라서 인용하는 일을 교과서 처럼 알기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 파리스 보르도네, <바쎄바의 목욕>, 1545년, 234x217cm,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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