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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일곱으로 맹세하라

7이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다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 가운데 7이란 숫자는 자주 사용되고 사람들에게 애용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6일간 세상을 창조하셨고, 제 7일은 안식일로 지켰으며,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의 벌을 내리는 등 7이란 숫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럼 7이란 숫자는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행운의 숫자로 지배하게 됐을까.

7이 왜 행운의 수인가?
샘좀 계통의 민족들은 7이란 수를 신성하게 여겼다. 애굽 사람들에게도 점차 4라는 수를 대신하여 7이 신성한 숫자로 간주되었고, 애굽의 마술과 의술에서도 7은 효험 있는 숫자로 간주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7은 신성한 수로 간주되어 종교의식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대 사람들은 7의 배수인 14, 21, 42, 70, 77 등도 중요한 숫자로 간주하였다. 구약 성경에서도 7이란 숫자는 여러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7의 어원
구약에서 숫자 '칠'은 히브리어 '쉐바'로, 여기에서 '쉬브임'(칠십)과 '샤부아'(일주일) 등의 단어가 파생됐다.
보통 '쉐바'는 일곱의 여성형으로서 단순한 히브리 기수로 사용하고 있지만, 상징적 용법들에 있어서 '쉐바'는 성경에서 어떤 신비한 암호말로 사용한다.
'맹세하다'(서약하면서 약속하다), '맹세하게 하다', '간청하다', '충성을 맹세하다' 등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샤바'도 숫자 7을 가리키는 쉐바에서 파생했다. 또한 쉐바의 자음 어근이 '만족하다', '포식하다', '가득하다', '충만하다' 등을 뜻하는 '사바'와 동일한 숫자 7은 풍성과 풍족, 충만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일곱과 맹세는 동일어이다
고대 히브리 성경 본문에는 맛소라 사본과 다르게 모음이 부착되지 않은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쉐바'(일곱)나 '샤바'(맹세하다) 모두 '사바'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고대에는 '일곱'이라는 숫자와 '맹세하다'는 동일하게 취급됐고, 창세기 21장 22-34절에서는 쉐바와 샤바 상호간의 어떤 관련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아브라함이 가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로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창21:30-31)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우물이 자신의 소유임을 맹세하라고 요구하고, 어린양 '일곱' 마리를 증표로 아비멜렉에게 줌으로써 '맹세'를 확증했다. 그 우물의 이름은 '브엘세바'로 '일곱 우물' 또는 '맹세 우물' 이었다.
'샤바'에 대한 함축성 있는 표현으로 "일곱으로 자신을 …하다"(to … seven oneself), 또는 "자신을 일곱 가지 것으로 묶다"(to bind oneself by seven things) 등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고대 세계에서 7의 수로써 협정에 조인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구약성경에서 맹세한다는 것은 맹세자가 어떤 약속 행위를 신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증거로 파할 수 없는 '신성한 말'을 주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래에도 그것을 계속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맹세와 언약
'서약하면서 약속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샤바'의 명사형은 '쉐부아'(맹세)이다. 맹세는 서로간의 약속과 협정하다는 의미에서는 언약(베리트)과 비슷하다. 하지만 '맹세'는 엄숙히 확언하는 구두적 진술 또는 서약이며, '언약'은 계약의 본질 그 자체이다. 즉 하나님이 자기가 '약속'(베리트)한 바를 이행할 것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맹세(쉐부아)를 행하신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제 7일, 제 7년, 희년을 안식하기로 하나님과 맹세, 곧 언약했다. 즉 제 7일 안식일은 하나님과 맺은 맹세의 날, 제 7년은 맹세의 년이다. 또한 하나님이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 일곱 배의 벌을 '맹세'하셨고, 안식년을 범한 이스라엘에게 70년 바벨론 포로를 맹세하셨고, 다니엘에게 칩십 이레의 환상을 통해 종말에 대해 맹세하셨고, 사도 요한을 통해 일곱 인, 일곱 대접, 일곱 나팔 재앙을 맹세하셨다. 곧 맹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절대적이고 확실하게 실행하는 행위이고, 7은 그 맹세가 신적 계시(신성)이며 완전함을 내포하고 있다.

참고 문헌:
o 엄원식의 <구약성서의 수신학> (대전,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84)
o 토를라이프 보만의 <히브리적 사고와 그리스적 사고의 비교> 허혁 역(서울, 분도출판사, 1993)
o Hward Eves의 <수학사> (고대 및 중세편), 이문영 역(서울, 경문사, 1991)
o <성서백과대사전 Vol.6> 민영진 편(서울, 성서교재간행사, 1981)
o 배재민의 <새로훈 형태의 구약연구> (서울, 총신대출판부, 1982)
o 존킹의 <수와 신비주의>, 김창국 역(서울, 열린책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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