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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5

여행가 앤 밀러는 1770년 카라바조의<유다>를 보고 감상 한 토막을 적어 두었다.

'나는 화가가 직접 모델을 세워 두고 그렸을 거라고 확실했다. 갑자기 진땀이 흐르고 욕지기가 치밀었다. 마치 눈앞에서 참수극이 펼쳐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목의 절개 자국, 버둥대는 몸뚱이, 잘린 동맥이 내뿜는 선혈...'

홀로페르네스가 깨어났다. 목을 스치는 차가운 느낌이 그의 잠든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의 목은 이미 어깨에 붙어 있지 않다. 붉은 휘장이 물결친다. 홀로페르네스의 사그라드는 눈이 유다를 올려다본다. 제 목을 잘라 내는 여인을 올려다보는 시선에 휘장의 붉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의 목에서 뿜어나오는 붉은 피의 색깔과 다르지 않다.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의 순간에 몸을 뒤트는 사내의 사지는 이미 생명 없는 고기 토막에 불과하다. 어지러이 구겨진 침대보는 단말마적 몸부림의 무심한 흔적이다. 하체와 상체 그리고 머리로 이어지는 나선형의 동세는 고통의 자취를 순차적으로 화석화한다.

륀트겐 사진을 관찰하면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원래 반 뼘쯤 위쪽에 그려졌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깨 위에 머리가 제대로 붙은 모습으로 그렸다가 고쳐 그린 것이다. 두 번째 머리는 칼날에 목뼈가 으스러져서 목의 거죽만 간신히 붙어 있다. 상체에 남아있는 목의 절개선과 머리의 높낮이를 어긋나게 그린 것은 사실적인 재현이다. 유다서의 기록이다.

'유다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맡에 있는 침대 기둥 쪽으로 가서 거기 걸려 있는 그의 칼을 집어내렸다. 그리고 침대로 다가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두 번 내리쳐서 그의 목을 잘라 버렸다.'

▶ 카라바조,<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다>의 부분 그림, 1592~1600년 무렵, 국립고대 미술관, 로마


극의 진행 순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뒤집은 것은 불시에 찾아든 죽음의 긴박함을 말한다. 두팔을 길게 내밀어 적장의 머리를 잘라 내는 유다의 포정에는 신앙의 의지와 결단의 두려움이 이율배반적으로 얽혀 있다. 젊은 과부는 이맛살을 모으고 이를 사리물었다. 터질 듯한 심리적 격정이 두근대며 부풀어 오른 젖가슴의 숨가뿐 약동으로 표현되었다.

아브라는 장막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유다의 뒷자리에 섰다. 목을 길게 빼고 참혹한 광경을 주시하는 하녀의 옆얼굴은 레오나르도의 그로테스크 두상에서 왔다. 곡식 자루 대신 치맛단을 그러쥔 것도 진행의 파행성을 뒷받침한다. 아브라와 유다와 홀로페르네스는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의 세 축이다. 세 사람의 팔을 줄거리의 진행에 맞추어 차례로 연결하면, 그림의 좌우를 가로지르는 긴밀한 사슬 구조를 이룬다. 팔의 자세가 말하는 의미는 모두 다르다. 비극의 계시와 실행과 완성이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의 파고를 타면서 보는 이의 감성을 공략한다.

▶ 카라바조,<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다>의 부분 그림, 1592~1600년 무렵, 국립고대 미술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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