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98

프리드리히 대제는 포츠담 상수시 궁정 회랑에 걸어 둘 작품을 사면서 그림 속의 여인이 베누스라고 생각했다. 옷을 벗고 목욕을 준비하는 여인이 베누스가 아니라 바쎄바로 밝혀진 것은 193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림에 다윗 왕이 모습이 빠져있어서 황제가 베누스의 목욕 장면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리치는 뒷배경의 베네치아 르네상스 빌라를 베로네세의 건축 구성에서 빌려왔다. 인물 구성의 축이 정면에서 45도 돌아간 것은 티치아노의<페사로 마돈나>에서 배웠다. 리치의 인물 구성을 시계 방향으로 되돌려 놓으면 훌륭한 좌우 대칭의 골격이 드러난다. 17세기 베네치아 화단을 풍미했던 테네브로소 전통이 리치의 경쾌한 붓길에 말끔히 씻겨나갔다. 그림에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한 세기 전 로마에서 밀려왔던 먹구름이 흩어지고 아드리아의 햇살이 베네치아로 코코의 풍광을 빛내기 시작한다.

리치는 다윗 왕이 그날 밤 저지른 죄악의 발단과 전개에 대해서 침묵한다. 그의 관심사는 아름다운 여체의 맵시 있는 재현이다. 시중드는 여인이 목욕물의 온도를 가늠하며 탕 속에 뿌릴 장미꽃을 준비하는 동안, 용머리가 토해 내는 세찬 물줄기를 응시하는 바쎄바의 얼굴이 수굿이 달아오른다. 로코코 미술에서 이 정도의 암시로는 노골적인 축에 끼지 못한다. 오른쪽 귀퉁이의 미소년은 거울을 들었다. 알몸의 여인이 들여다보는 거울은 향락과 허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는 자책과 반성의 의도도 없지 않다. 앞에 놓인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자신의 등 뒤에 물러나 있는 과거의 풍경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한점의 그림 안에 상반된 이중적 교훈을 담는 것도 로코코 화가답다. 다윗 왕이 파견한 사령은 그림 왼쪽 귀퉁이에 숨었다. 오른손에 연모의 사연을 담은 쪽지를 들었다. 사령의 역할을 가끔 남자가 맡는 일도 있지만, 라틴 성서에 '미시트 눈티아'라고 씌어 있으니 심부름꾼을 여성으로 재현한 리치의 해석이 옳다.

▶ 세바스티아노 리치,<바쎄바의 목욕>, 1725년 무렵, 109x142cm,달렘 미술관,베를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358 [성화읽기] 쿨름바흐의 동방박사의 경배 2009-02-22 4188
357 [성지순례] 성 베드로 성당 2006-03-30 4182
356 [성화읽기] 브뤼겔의 바벨탑 2006-07-02 4180
355 [성화읽기] 크라나흐의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의 휴식 2007-08-19 4177
354 [성지순례] 나사렛과 마리아 수태기념교회 2006-10-04 4176
» [성화읽기] 세바스티아노 리치의 밧세바 2009-02-08 4169
352 [성화읽기] 젠틸레스키의 다윗과 골리앗 2007-01-07 4157
351 [성지순례] 요르단 베다니 엘리야 승천 언덕 2006-08-31 4157
350 [성지순례] 팔복교회 2006-09-09 4150
349 [성화읽기] 보니파키우스와 이교도 게르만인들 2009-11-08 4149
348 [성화읽기] 구에르치노의 수산나의 목욕, 마드리드 2008-10-05 4142
347 [성지순례] 마라의 샘 2006-08-22 4130
346 [성화읽기] 자유로운 신세계 2011-02-13 4121
345 [성화읽기] 카라바조의 유다 2009-01-25 4121
344 [성화읽기] 레니의 베들레헴의 영아 살해 2008-04-21 4118
343 [성화읽기] 리피의 수태고지 2008-04-28 4117
342 [성화읽기] 뒤러의 동방박사의 경배 2007-12-23 4116
341 [성화읽기] 레니의 십자가 책형, 모데나 2007-11-04 4114
340 [성화읽기] 현대 기독교 미술과 건축 2010-06-27 4112
339 [성지순례] 소피아 대성당(Aya Sophia) 2006-07-10 4107
PYUNGKANG NEWS
교회일정표
2024 . 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찬양 HYMNS OF PRAISE
영상 PYUNGKANG MOVIE
152-896 서울시 구로구 오류로 8라길 50 평강제일교회 TEL.02.2625.1441
Copyright ⓒ2001-2015 pyungkang.com. All rights reserved.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