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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키오의<예수 세례>는 프란체스카의 그림보다 스무 해 늦게 그려졌다. 나중에 그려졌다고 해서 더 나은 그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세례받는 예수는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이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관례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 상단 복판에서 성부의 두 손이 튀어나오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씀이 빛살의 형태로 뿌려지는 것은 동방 미술의 모범을 빌린 것이다. 또 요한이 왼손에 승리의 십자가를 들거나,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씌어진 두루마리를 쥔 것도 르네상스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예수 세례>의 부분 그림, 1451년 무렵, 국립미술관, 런던

이국의 정취를 자아내기 위해서 열대수를 심어 둔 것도 동시대 미술의 발빠른 유행을 따라잡지 못했다. 베로키오는 인체 비례에도 미숙함을 드러낸다. 두 다리를 엉거주춤 벌리고 두 손을 어색하게 모은 예수의 자세는 겸손한 순응의 느낌보다 물속에 담근 발이 행여 미끄러지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베로키오는 전경의 등장인물 못지않게 원경의 암벽구조와 요단 강의 흐름에 관심을 쏟았다. 풍경의 세부 묘사는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다. 이런 세심증은 붓을 언제 거두어야 할지 몰라서 비난을 들었다는 고대 화가 프로토게네스의 일화를 상기시킨다. 세례자 요한의 팔뚝에도 근육과 힘살 그리고 정맥선을 일일이 헤아릴수 있을 만큼 꼼꼼히 그려 넣고, 당시 피렌체의 주력 수출 종목이었던 줄무늬 비단 직물을 예수의 허리에 감아두었다. 심지어 프란체스카가 걷어 낸 금빛 후광까지 챙겨 두었다.

<예수 세례>의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차치하고, 소재 선택의 관점에서 본다면 베로키오는 중세의 언덕을 넘지 못했다. 그는 프란체스카의 이성적 접근보다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사무치게 하는 종교적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베로키오가 그린<예수 세례>를 제자 레오나르도가 고쳐 그린 일은 미술의 역사에서 잘 알려진 일화이다. 그림 왼쪽의 천사 둘이 레오나르도의 솜씨다.

레오나르도는 스승의 템페라 그림에 유화 물감을 덧칠해서 그렸다. 같은 재료를 마다하고 유화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스승과 제자는 동시에 공동작업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스승이 그리다가 치워 둔 템페라 작업을 아마 수개월이나 수년이 지난 다음에 레오나르도가 다시 손대어서 완성했다고 보아야 옳다. 천사말고도 예수가 발을 담근 부분에 동그랗게 이랑을 이루는 엷은 물어림, 그리고 오른쪽 먼 배경의 희미한 산악도 모두 레오나르도가 그렸다.

▶ 안드레아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예수 세례>, 1470년~1473년, 177x151cm,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바사리는 스승 베로키오가 레오나르도의 천사를 보고 그만 붓을 꺾었다고 한다. 자신의 솜씨로는 이처럼 지극한 신성의 아름다움을 그려 낼 수 없다는 자각에서 베로키오는 이후 붓을 들지 않고 조각에 전념했다는 것이다.
어린 제자의 천재적 재능이 스승과 겨루어 이기는 '경쟁'소재는 예술가의 전기에서 드물지 않다. 예컨대 치마부에가 그리다가 놓아 둔 그림에 제자 조토가 파리를 그려 넣었는데, 진짜 파리가 날아든 줄 착각하고 손을 몇 차례 휘둘러 쫒으려고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그림을 보고 길 가던 사람들이 허리를 숙여 공경을 표시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같은 일화의 줄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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