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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님, 도착하셨나요?”
“예, 저는 좀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어디쯤 오셨어요?”
“지금 두 정거장 정도 남았는데 혹시 시간 안에 도착 못하면 버스 못 떠나게 꽉 잡고 계세요”
“네 걱정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천천히 오시라고는 했지만 왠지 불안해진다. 출발 시간이 이제 10분 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두 정거장이면 고속터미널에서 환승하는데 5분, 이곳 남부터미널까지는… 휴대전화 앱을 켜고 시간을 조회해 보았다. 뭐 괜찮겠네. 정 안되면 기사 분께 양해를 구해야겠구먼.

8월 19일 금요일 밤 11시 30분.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남선교회 회원은 중산리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은 9월 2일부터 3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계획 중인 지리산 기도회의 사전 답사.
지리산을 마지막 가 본 것이 아마도 2007년 요셉 선교회의 현충일 구국 기도회로 기억한다.

아무튼, 가족들이 일 년 만에 한국에 나와서 두 달 넘게 함께 알콩달콩 지내다가 다시 들어간 후 기분도 좀 울적하고, 사업상 여러 가지 마음이 답답한 구석도 있고, 무엇보다 남선교회 총무로서 제대로 된 현장 경험도 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중요한 기도회 행사를 계획한다는 것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져 무작정 같이 간다고 한 것이다.

막상 떠나려고 보니 등산화, 등산복, 배낭, 뭐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었다. 근처 아웃도어 할인 매장에 들려 너무 튀지 않는 진청색으로 아래위 깔 맞추고 나니 지리산이 아니라 알프스도 거뜬할 것 같다. 오케이 이 느낌으로 천왕봉 가는 거야.

새벽 2시 45분. 버스가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탑승객들이 앞을 다투어 내리고 삼삼오오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라지만 지리산 자락의 새벽바람은 에어컨 옆에 서 있는 것 같이 서늘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40분. 국립공원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전세 버스로 오면 여기까지는 버스로 올라오겠군. 그나마 다행이다. 새벽이지만 40분 걷고 나니 벌써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송송 맺히기 시작한다. 등산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우리가 택한 코스는 장터목 대피소를 거쳐 천왕봉, 그리고 기도처를 들린 후 로타리 대피소를 지나 칼바위 쪽으로 내려오는 총 13 킬로미터의 등산로였다. 선발대인 만큼 시간 기록을 남기기 위해 타이머를 누르고 걸음을 내 디뎠다. 장터목 대피소까지의 예상 시간은 4시간.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동행한 집사님이 내게 묻는다. “총무님, 모세가 호렙산을 여덟 번이나 등반했잖아요. 근데 호렙산이 몇 미터죠?” 아 이런,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천 몇 백 미터 같은데 이천 초반인지 중반인지 헛갈렸다. (참고로 호렙산의 높이는 2,219 미터 이다)

지루한 돌 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장터목 대피소에 도달했다. 장터목 산장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백두대간의 전경은 웅장, 그 자체였다. 아직 천왕봉까지 1.7 킬로미터나 더 가야 했지만 전망대에 선 그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다 날아가는 듯 느껴졌다.

선발대인 만큼 대피소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고지이다 보니 샤워장은 당연히 없고 환경 보호를 위해 세면 시 비누나 치약도 일체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화장실이 재래식이다. 난감해진다. 9월 2일에는 금식기도하면서 올라와야겠구먼.

대피소부터 천왕봉 정상까지는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스틱을 사용하면서 등반을 이어갔다. 앞으로 정상은 오백 미터, 정상에서 기도처까지는 200미터 남짓.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정상에서 파노라마 사진 여러 컷 찍고 서둘러 기도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곳이 가장 난 코스이다. 길이 좁고 가파르며 제대로 된 정식 등산로가 아니기 때문에 나뭇가지도 많아 시야가 제한적이다. 기도회 당일 안전사고에 가장 조심해야 할 구간임에 틀림없다. 오케이. 이것도 잘 메모하고.

거의 10년 만에 찾은 기도처 앞에서 우리 일행 모두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그 땐 시간에 쫓겨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시간 제약 없이 기도할 수 있구나 생각하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기도처 안에 각자 자리를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엔 한 시간이고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 기도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릎이 아파졌다. 아. 이게 나의 한계인가… 모세는 돌 산인 호렙산에서 40일 ‘주야’ 금식기도를 두 번이나 했는데.

기도처를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에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마음속에 막힌 것이 뻥 뚫리는 속 시원한 기도를 드리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평소 기도의 연단이 부족한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게다가 하산하면서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쩔뚝거리면서 겨우 처음 등반을 시작한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금번 선발대로 다녀오면서 지리산 기도처는 정말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다시금 느꼈다. 먼저는 열 시간이 넘는 험한 산길을 오르고 내릴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준비가 아닐까. 모세가 여덟 차례 호렙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였을까. 그리고 그렇게 기도의 등정을 할 수 있기까지 평소에 얼마나 기도의 연단을 쌓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9월 지리산 기도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토요일 밤 10시경 서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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