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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했던 비염인데 알레르기가 다시 들끓어 올랐다. 가려운 눈을 비비니 열이 나고, 흐르는 콧물을 연신 닦아내느라 코밑이 허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절이 바뀌거나 기온차가 갑자기 커질 때면 으레 겪는 통과의례 같은 현상이다. 하늘이 높아졌고, 내가 사는 동네 근처 안양천의 코스모스들은 자신들이 안양천의 주인인 것 마냥 자리를 잡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옷장을 열어 연분홍 가디건을 꺼내 긴긴 여름 내내 고단했던 시간들을 가만히 덮는다. 사뭇 다른 날씨 덕에 자연스레 달력을 보게 된다. 달력을 한 장 더 넘길  때가 되었고, 그렇게 한 장을 넘겨보니 1의 자릿수를 벗어난 10의 자리 숫자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10월. 코 끝을 간지럽히는 비염과 함께 한 해의 2/3가 지났음을 알려준다.


내년이면 대학교 4학년이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벗기에 앞서 주위 친구들은 취업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펙을 쌓느라 바쁘다. 많은 친구들이 등 떠밀려 사회에 나오긴 했으나 아직 준비를 채 끝마치지 못해 취업의 문 앞에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졸업을 앞두고 마치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때 수능을 코앞에 두고 전전긍긍했던 그 시절의 압박감과 같은 비슷한 긴장감에 휩싸여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천국 가는 날짜를 안다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아마도 나는 그때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 안에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세상 떠날 때에 가지고 갈 수 없는, 돈, 명예 같은 것들에만 너무 목을 매고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과연 나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때에 준비가 되어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사무엘처럼,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이러한 의문에 '그렇다'는 답이 당장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강제일교회 설립자이자 구속사시리즈 저자이신 박윤식 원로목사님은 저자 서문 마지막에 항상 "천국 가는 나그네길에서"라는 어구를 넣으셨다. "우리의 인생은 길어야 7-80년이다, 그 나라 갈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이 세상은 그저 잠시 들렸다가는 여정이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나그네이다"라는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보고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천국을 머나먼 남의 일처럼 여기곤 했다. 헵시바에 해외에서 온 새친구가 있었다. 해외 지교회를 다닌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 교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뿐인 그 친구는 "평강제일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받고 자란 너희는 정말 행복자야."라고 말했고 너무나도 안일하게 살아왔던 내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귀한 말씀을 받고도 나는 더 깨어 살지 못하고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말씀 받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남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똑같이 살아가고 있었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에 앞서 연말정산을 하고, 대학교 4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회에 진출하기에 앞서 여러 가지의 스펙을 쌓는다. 이렇듯 천국 가는 여정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다가는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지도, 마지막 나팔 불 때 내 이름이 불리지도 않을 것이다. 10월, 가을 곡식이 익어가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의 삶도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아버지 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다. 마지막 추수 때에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계14:13-20)라는 음성에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 내가 어찌 게을러서 앉아 있을까 어서 가자 밭으로! 보내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찬송가 271장의 가사처럼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이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셔서 부르신 사람들 모두의 대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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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오래전 그때 그 시절, 영화가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더랬다. 당시에는 원하는 영화를 바로바로 볼 수 있는 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동네 상가에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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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行一致(언행일치). 내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처음 배웠던 사자성어로 기억한다. 교내 서예대회의 주제 글이었는데 선생님이 칠판에 써 주신 대로 심혈을 기울여 따라 ‘그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보니 머릿속에 완전 입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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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나를 살게 하는 것 _ 박남선 file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눈을 뜬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밀물처럼 우리의 뇌리와 마음에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는 것,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을 감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바로 근심과 걱정이다. 먼지보다 자그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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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처음 며칠은 시차가 맞지 않아 고생하기도 하고, 체류 기간이 길어져 몸이 현지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즈음이면 집 밥이 몹시 그리워지기도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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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聖誕節)=12월 25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의 의미. 'X-MAS'라고 쓰는 것은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XPIΣTOΣ의 첫 글자를 이용한 방법이다. 프랑스에서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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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살짜리 여자아이의 죽음이었다. 내 친구의 막내 동생이기도 했던 아이는 유...

 
2015-03-13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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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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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봉투가 없네, 마트 좀 다녀올래? 의자 옆에 바지랑 셔츠 다려놓았으니 넥타이랑 챙기고" 그는 그레이 컬러의 수트와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습니다. 마트에 갈 때는 어떤 타이가 어울릴까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가 가장 아끼는 타이를 집어 듭니다. 시...

 
2016-01-09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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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본(本)이 되어야... file

구속사 시리즈 10권을 통해 사관학교를 등록하고 환경과 여건에 맞는 많은 반들을 수강하고 있다. 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을 통해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아브라함의 생애, 복의 근원. 그것은, 본(本...

 
2018-03-03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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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거절 못하는 병 때문에 _ 정유진 file

아뿔싸, 또 코가 꿰었다! 평강 에세이 집필진을 해달란다. 안된다고 했어야 되는데. 글 쓰는 실력 없다고 거절했어야 되는데. 차마 말을 못하고 그냥 수락해버렸다. 매번 원고 마감일에 임박해서 안 되는 글 쓰느라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속으로 끙끙 앓다가 ...

 
2017-03-03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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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네 아이의 엄마 _ 이승옥 file

저는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이 한 문장만 읽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머머, 힘들겠다.’ ‘어떻게 키운데?’ ‘지금은 힘들어도 크고 나면 좋아.’ 그리고 위에 딸이 셋이고 막내가 아들이다 보니, 또 이렇게...

 
2017-04-25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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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인생의 한 분기점을 넘는다는 것 _ 맹지애 file

인생에는 몇 가지 큰 분기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예를 들면 수능, 취업, 결혼 등과 같은 중대한 사건들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큰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비로소 우리는 성장합니...

 
2015-11-22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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